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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포항엔 소아암 의사가 없어요”…희원이의 640㎞ 치료길 [영상]

등록 2023-02-07 11:00수정 2023-02-13 14:20

서울로 가는 지역 암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① 대형병원 옆 환자방
지난해 12월9일 희원이가 경북 포항에서 서울의 병원을 향하는 기차를 타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지난해 12월9일 희원이가 경북 포항에서 서울의 병원을 향하는 기차를 타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큰 병 걸리면 서울로 가라.’ 해마다 비수도권에 사는, 국내 사망원인 1위 암 환자의 30%, 소아암 환자는 70%가량이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향한다. 체력이 약한 환자가 4~5시간씩 걸려 수백㎞를 통원하거나, 아예 병원 옆에 거처를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대형병원 인근에 하나둘씩 환자 숙소가 들어서더니 이제 고시원·고시텔·셰어하우스·요양병원이 밀집한 ‘환자촌’으로 자리잡았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부터 석달간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과 경기도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틈타 성업 중인 환자방 실태를 취재했다. 또 같은 기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치료받는 지역 암 환자와 보호자 46명을 인터뷰하고, 188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쳐 한국의 지역 의료 불평등 실태와 필수의료·의료전달체계 대책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달 5일 아침 6시 반, 열두살 희원이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낯선 천장, 낯선 냄새. 희원이는 “세정제와 소독약 냄새가 코로 들어오면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희원이와 엄마 김소영(가명·43)씨가 잠을 깬 곳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소아암 환자 셰어하우스다. 12㎡ 남짓 방 한칸이 모자의 서울 쉼터다. 방이 세개인 이곳에는 다른 두 환자 가족도 함께 묵는다. 혹여 옆방 투숙자가 깰세라 희원이와 엄마는 조용히 나설 채비를 한다. 마음은 급하다. 택시로 5㎞만 가면 서울아산병원인데, 교통체증으로 30분 넘게 걸린 적도 있다.

또래들이 이제 막 일어나 등교를 준비할 아침 7시 반. 희원이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난해 7월 진단받은 소아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를 위해서다. 백혈병 세포가 혈액을 통해 몸에 퍼지고 있다. “작년 7월부터 다리에 멍이 들고 통증이 심했어요. 체중도 갑자기 6㎏ 줄었고요. 감기가 2주간 안 떨어지더라고요. 처음엔 성장통인 줄 알았는데, 검사해보니 백혈구 수치가 높더라고요.” 한때 야구선수를 꿈꿨던 희원이와 엄마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순간이다.

지역 소아암 환자 70% 서울로

한해 신규 발생하는 소아암 환자는 약 1천여명, 그중 지역에 거주하는 소아암 환자의 70%(건강보험공단, 2017년)가 그렇듯 희원이도 진단 직후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2022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통계를 보면, 포항에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다. 비수도권 소아혈액 전문의는 대구(5명)·경남(6명)·부산(3명)·전남(3명)을 제외하곤 시·도별로 많아야 2명 수준이다. 서울(31명)과 경기도(10명)에 몰려 있다지만, 최근 수도권 종합병원 4곳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 진료를 중단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암은 항암 치료뿐 아니라 방사선, 수술도 굉장히 중요한데 관련 전문의들이 지방에는 거의 없다. 결국 서울이나 경기도로 온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만난 한 지역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는 “지역에 의료진이 오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고 했다. 전문의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소아암 환자 대부분은 일단 서울로 향한다. 당장 문제는 주거다. 복지재단이나 기업이 수도권에 4~5곳 정도 운영하는 저렴한 셰어하우스에 묵게 되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수용 인원이 적다. 아이와 부모는 대형병원 인근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고시텔, 레지던스, 원룸에 주로 머문다. ‘환자방’으로도 불리는 이들 숙소의 한달 숙박비는 최소 6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에 이른다.

왕복 640㎞ 치료길에 ‘풀썩’

희원이도 1주일에 4일 집중 항암 치료를 받는 시기엔 셰어하우스에 묵는다. 희원이는 항암제 계열 약물을 투여하는데, 오전에 병원 혈액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아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날엔 치료 일정이 밀린다. 혈액검사가 끝나면 각종 약물 투여, 진료 등으로 병원에서 하루 6~12시간을 보낸다. 이 때문에 많게는 한달에 16일, 적어도 4~5일은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

나머지 기간엔 포항-서울 통원치료를 받기도 한다. 걷기조차 힘든 희원이에게 한달에 다섯번 이상 왕복 640㎞ 여정이 이어진다. 지난해 12월9일 취재진은 희원이가 서울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 포항역-수서역-병원까지 4시간, 왕복 8시간이 넘게 걸렸다. 김씨는 약과 생필품이 든 무거운 여행용 가방과 함께 희원이를 챙겼다. 이날 희원이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내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부축을 받고 일어난 희원이가 불쑥 전날 밤 꿈 이야기를 꺼냈다. “운동하는 꿈을 꾸다가 깼어. 꿈에서라도 좋았어.”

소아암을 겪고 있는 희원(12)이가 지난달 4일 저녁 서울 천호동의 셰어하우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희원이는 다음날 병원 진료를 위해 이곳에서 묵었다. 조윤상 피디
소아암을 겪고 있는 희원(12)이가 지난달 4일 저녁 서울 천호동의 셰어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희원이는 다음날 병원 진료를 위해 이곳에서 묵었다. 조윤상 피디

지역 암 환자, 가족·친구 ‘이산’ 이중고

얇고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위에 모자를 덮어쓴 희원이는 ‘포항 집’과 ‘가족’,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유독 자주 꺼냈다. “동생은 특히 엄마를 좋아할 나이잖아요.” 희원이는 포항에 남겨진 막냇동생을 걱정했다. 여섯살 막내는 소아 희귀질환을, 열네살 첫째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아빠와 외할머니가 돌봐주지만, 남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공백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제가 희원이와 처음 서울로 갔을 때, 막내가 2~3일은 울었다고 들었어요. 그 뒤에도 ‘엄마 가지 마’ 하고 울더라고요.”(김씨)

그럼에도 김씨는 차라리 서울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백혈병은 감염에 취약해 가족들도 마냥 편하게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희원이 열이 섭씨 38도까지 솟아 밤에 포항에서 서울의 응급실로 내달렸다. 최근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때마다 김씨는 마음을 졸였다. “응급 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니까, 긴장돼서 제 몸이 힘들더라고요. 저는 포항에서 나고 자랐는데, 여기 사는 게 불편하고 아쉬운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프니까,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서울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앞서 김씨는 첫째와 막내를 데리고도 자주 서울 큰 병원을 찾아야 했다.

희원이네처럼 암 환자가 있는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해 11월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형준(가명·4)이네도 그랬다. 충북 청주에 사는 형준이는 지난해 9월 소아암을 진단받은 뒤 엄마 홍이현(가명·37)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모자는 병원 인근에 원룸을 구해 머물고 있다. 청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빠는 주말마다 형준이를 보러 온다. 두살배기 둘째는 서울 인근에 사는 외할머니가 돌보고 있다. 홍씨는 “오롯이 형준이만 신경 쓰기에도 벅차다”며 “남은 가족 걱정은 접어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만난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가족·친구와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면서 우울감과 사회적 단절을 겪고 있었다. 울산에 살다 2021년 소아암을 진단받고 1년간 서울에서 치료를 받은 지혁(가명·14)이는 곧 복학을 앞뒀지만 기쁘지 않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이제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타지에서 보낸 1년은 사춘기 아이들이 서먹해질 법한 기간이다. 지혁이 엄마는 내성적인 아들이 위축될까봐 걱정스럽다. “위로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서울로 떠난 뒤 점점 잊혀지니까 연락이 끊겼던 거죠. 지혁이도 서운할 거예요.” 지혁이는 요즘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친구들 다 필요 없어.”

중증 질환일수록 서울-지역 의료격차

의사와 병원을 찾아 서울로 떠밀려 올라오는 건 소아암 환자뿐만이 아니다. 암을 비롯해 중증 질환일수록 지역 의료자원이 부족하다. 정춘숙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는 서울 123명, 경기도 61명인 반면, 광주·울산·세종·충북·충남·전남·전북·경북·제주는 10명 이내였다. 중증 질환을 주로 치료하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심장혈관 흉부외과(폐·식도·심장 등 관련) 전문의의 경우, 전체 198명 중 서울 38명, 경기도 42명에 견줘 대구(9명)·대전(7명)·울산(4명)·세종(1명)·강원(7명)·충북(6명)·충남(5명)·전북(8명)·전남(8명)·제주(6명)는 10명 미만이었다. 지역 암 환자들이 서울 암 환자보다 더 무거운 투병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지역 의료격차’의 현주소다. 

● 자문 주신 분들(가나다순)

강정훈 국립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권정혜 세종충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

김세현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영애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부센터장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임정수 국립암센터 국가암사업관리본부장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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