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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그를 죽인다고 가족 살아오는 것 아닌데…”

등록 2006-03-28 07:27수정 2006-03-28 17:13

자신의 가족 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씨를 용서하고 그를 양자로 삼겠다고 밝힌 고정원씨가 유씨의 교화에 애쓰고 있는 조성애 수녀와 함께 지난 2월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유치원 뜰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찬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자신의 가족 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씨를 용서하고 그를 양자로 삼겠다고 밝힌 고정원씨가 유씨의 교화에 애쓰고 있는 조성애 수녀와 함께 지난 2월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유치원 뜰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유영철에 ‘완전한 용서’ 손 내민 고정원씨
2년 반 전 그날, 고정원(64)씨는 집 거실과 계단을 뒤덮은 검붉은 핏자국을 닦아내고 있었다. 85살 노모와 환갑을 앞둔 아내, 4대 독자 아들의 피였다. 살해당한 세 가족의 유골을 뿌리고 돌아온 날,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핏자국을 걸레질하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조차 힘든 듯, 고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모·아내·4대 독자 희생…밤새 찢어죽이고 싶은 충동
“그도 좋은 환경 만났다면…” 용서하니 마음 홀가분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의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고씨는 2003년 10월9일 저녁 6시40분을 잊을 수가 없다. 아내의 차가 차고에 있는데도 초인종에 대답이 없어 담을 넘어 들어가보니, 거실이 피바다였다. 흉기로 잔혹하게 난자당한 아내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핏자국을 따라 2층으로 가보니 아들도 처참한 모습으로 숨져있었다. 1층 화장실 옆에선 노모의 시신을 발견했다. 아비규환이었다.

운영하던 작은 회사를 사건이 나기 몇해 전 정리한 고씨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의 환갑이 다가오자 선물이라도 하나 해줄 생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적은 돈이라도 벌어서 마련한 선물이 값질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물을 줄 기회도 주지 않고 아내는 변을 당했다. 사건 뒤 고씨는 20여년 전 아내와 서로 주고받았던 유서를 꺼내 보고 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유서엔 “여보, 나 죽기 싫어”라고 적혀있었다. 지금도 고씨는 아내의 선물을 사려고 벌어뒀던 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찢어죽이고 싶었다. 밤 12시만 되면 잠에서 깨어 뒤척였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강에서 삶을 마무리할 생각도 했다. 그러던 고씨가 가톨릭에 귀의해 세례를 받은 지 보름만에 유씨가 검거됐다.

“가족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고 한줌 재가 돼 내가 다 뿌렸는데, 다시 살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용서해주고 나도 세상을 뜨자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용서를 다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죽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동정도 싹텄다. 유씨가 교정위원인 조성애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 쓴 자신의 아이들 이야기, 자신은 죽더라도 애는 착하게 키우고 싶다는 말들을 접하며 “그도 아이들의 아빠이고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죽이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씨는 “영철이 편지를 보면 글·그림 솜씨가 굉장히 좋다”며 “좋은 부모 밑에서 제대로 교육 받았다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좋은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자신이 천하의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던 배경엔 부모의 가르침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배움을 짧았어도 법 없이 산다는 말을 들었고, 남에게 나쁜 짓하고 살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이 게 내 좌우명이 됐다”며 “부모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가톨릭에 귀의했어도 용서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딸들은 지금도 유씨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태도이고, 고씨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고씨는 다만 평온한 마음으로 오늘도 성경책을 자신의 글씨로 옮기고 또 옮길 뿐이다. 박용현 이순혁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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