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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독일선 돈 없어 치료 못받는 일 없어요”

등록 2014-04-21 19:35수정 2014-05-30 10:50

파독 간호사 1세대로서 독일의 의료 현장을 두루 체험한 최영숙씨는 “한국도 사람과 복지가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 1세대로서 독일의 의료 현장을 두루 체험한 최영숙씨는 “한국도 사람과 복지가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광장]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기획 ‘한국 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1
독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정당명부식 투표제와 대타협으로 대표되는 독일 정치, 탄탄한 중소기업과 건강한 노사관계로 훌륭한 경제성적표를 이뤄온 독일 경제, 대학등록금·사교육·학교폭력이 없는 ‘3무’의 교육체계 등 각 분야에서 독일 시스템과 가치관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분단 경험과 인구, 수출주도형 경제모델 등 우리와 비슷한 배경을 지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에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독일 시스템을 직접 겪었거나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들을 베를린 등 현지에서 만나 이들의 증언을 통해 독일 사회를 조망하는 ‘한국 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기획을 온·오프라인에 걸쳐 10여차례 연재한다. 이와 함께 오는 6월28일부터 7월5일까지 독일의 복지·노사관계·통일의 현장을 체험하고 토론하는 ‘2014 베를린 사회포럼’도 진행한다.

공공보험을 통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 독일은 의료비 부담의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의료진의 처치를 받고 있다. 독일 지역의료보험조합 누리집
공공보험을 통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 독일은 의료비 부담의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의료진의 처치를 받고 있다. 독일 지역의료보험조합 누리집

파독간호사 최영숙씨가 본 의료체계
가장 큰 차이는 예방…검사비 없어
자기 소득서 보험료 많이 내는 대신
본인 부담금은 소득의 2% 안 넘어

간호사가 환자 씻기고 침대 정리도
인구대비 간호사 수 2배 이상 많아
간호사는 환자 집 정기방문해 처치

지난 2월 생활고에 짓눌려 스스로 세상을 등졌던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십수년 전 아버지의 암 투병에서 시작됐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진 빚은 이들 모녀의 삶을 옭아맸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던 큰딸도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우리 모두에게 세 모녀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병들면 가난해지고, 죽지 않더라도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곳에서는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은 없어요.” 1966년 독일에 온 1세대 파독 간호사 최영숙(70)씨의 말이다. 지난 12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최씨는 50여년간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또 간호사로서 일했던 경험으로 독일의 의료복지 환경과 병원 현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1981년까지 15년 동안 독일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방문간호사 개념인 ‘재가 간호사’로서 일했다.

■ 환자는 ‘상품’이 아니다 “저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단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드는 건 알고 있어요. 독일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최씨가 꼽는 독일과 한국 의료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방’, 그리고 예방을 위해 드는 ‘비용’이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으로 공공보험이 예방에서 치료까지 모든 것을 부담해요.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동네 프락시스(개인병원)에 가서 진찰하고, 좀더 세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검사 기계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내는 의료비는 1유로도 없어요.” 최씨는 십여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아 지금까지 석달에 한번씩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등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일할 때 들어간 의료보험과 현재 받고 있는 연금에서 공제되는 보험 덕분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는 돈을 내지 않는다. 독일도 물론 자기부담금이 있기는 하다. 입원하는 경우, 그리고 약값의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 경우도 자기 소득의 2%(장기 질병의 경우 1%)를 넘지 못한다. “월급이나 연금에서 의료보험료를 많이 떼는데 결국엔 이게 큰 도움이 돼요. 병원에 가면서 돈을 들고 가는 모습 자체가 낯설어요.”

다만 가끔 긴 대기시간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개인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갈 때 길게는 한달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지만, 보통 여러 곳을 소개받아 대기 기간이 짧은 곳으로 가요. 또 기본적으로 ‘예방’을 위한 진료가 일상화돼 있기 때문에 시급을 다투는 검사가 아닙니다. 위급 상황에서는 당연히 응급실에서 바로 처치를 받을 수 있어요.” 꼭 필요한 처치가 아니면 환자에게 추가검사를 권유하거나 보조적인 처방도 하지 않는다. 과잉진료는커녕 ‘섭섭할 정도’로 간단히 처방하기도 한다. “한번은 지인이 탈수 증상이 있어서 같이 응급실에 가 수액을 처방받았는데, 성분이 뭐냐고 물으니 물만 있다고 하더라고요. 난 포도당 수액도 좀 맞혔으면 좋겠는데, 병원에선 물만 있으면 된다고 딱 자르던데요.” 다만 의사가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규모가 큰 병원에 환자를 보내 검사를 의뢰하는 구조다. 이런 의료서비스의 주된 재원은 개인 월 소득의 15.5%(고용자 7.3%, 피고용자 8.2%)에 이르는 의료보험료다. 당장은 부담일 수 있지만, 평생 나라에서 건강관리를 받기 위한 ‘투자’로 판단한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빈곤층은 병원비 부담이 거의 없다.

독일 베를린의 적십자병원(DRK Kliniken Berlin) 산하 심리치료 클리닉 전경.
독일 베를린의 적십자병원(DRK Kliniken Berlin) 산하 심리치료 클리닉 전경.

■ 환자의 마음까지 보살핀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받는 의료서비스 이외에 의료인으로서 일했던 경험도 한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의 2012년 조사를 보면, 한국의 병원에서 입원 환자들이 하루에 간호사와 대면하는 시간은 환자의 42.1%가 10~30분, 29.8%가 10분 이하에 그쳤다. 간호사인 최씨의 눈으로 본 한국 병원은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많은 책임을 지우는 곳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입원실에 보호자용 침대가 있는 것도 생소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선 환자를 씻기는 것부터 침대 정리까지 간호사가 일상적인 관리를 다 합니다. 간호사도 자기가 돌보는 환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일하기 때문에 서로 웃으면서 일해요. 한국에서 입원을 하면 환자들은 치료비 부담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간병 부담까지 들잖아요. 결국 환자들도 이중 부담으로 마음이 더 무거운 거죠.”

한국 병원의 삭막한 현실은 의료인 인력난에서 기인한 부분도 크다. 독일은 인구 1000명당 간호사가 9.9명인 데 반해 한국은 4.2명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여기에 과도한 잡무까지 더해져 한국의 간호사들은 환자의 ‘마음’까지 보살필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독일 의료시스템은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가 지난해까지 일했던 ‘재가 간호사’ 시스템은 독일에서는 일상적인 의료문화다. 의사들이 위탁한 환자의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필요한 처치를 해주는 제도인데, 환자들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해 의사에게 전하고 병원 입퇴원 여부도 판단하고 건의한다. “환자가 아픈 것은 심리적 요인도 많아요. 그런 심리적 부담을 제거하려면 자기 집에 머물면서 치료받는 것이 가장 좋아요. (재가 간호사는) 그런 ‘전인간호’의 취지로 독일에서 많이 생겨난 제도입니다.”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통일 이후 새롭게 도입된 간병보험과 함께 의료보험, 연금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이 5대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런 복지사회에서 50여년간 살아온 최씨에게 한국은 어느새 낯선 곳이 됐다. “그래도 저의 모국어는 한국어고, 늘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 빠른 시간 안에 압축성장하면서, 그 속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놓친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도 겉모습보다는 사람과 복지 중심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베를린/글·사진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최영숙씨는 누구

최영숙씨는 1966년 경북대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전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그해 10월 독일로 건너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동생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다 독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져 독일행을 결정했다. 1981년까지 베를린의 병원에서 근무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독일 정부가 한국 간호사에게 체류 연장을 해주지 않고 한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할 때 서명운동을 통해 권리를 찾으며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을 깨쳤다고 한다. 이후 1978년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회원을 시작으로 여성운동 등 사회활동을 꾸준히 했다. 2000년부터는 다시 전공을 살려 지난해까지 방문간호사(재가 간호사)로 일했다. 현재 유럽 내 동포 모임인 ‘한민족 유럽연대’ 의장을 맡고 있으며, ‘연대하는 사회를 위한 분배’ 재단 여성분과위원회에서 활동중이다.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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