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한 어린이가 보육교사의 품에 안긴 채 현관 밖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데리러오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 모두 밤샘 근무를 하는 원아들은 귀가하지 못하고 어린이집에서 잠을 청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사회정책부에서 복지와 여성 분야를 담당하는 박수지 기자입니다. 저만 알아볼 수 있는 불친절한 기사를 써서 넘겨 직접 기사를 고치는 부장과 팀장을 ‘멘탈 붕괴’에 빠뜨리는 소질이 있지만 이 지면에서만큼은 독자들에게 100% 친절한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지난 8~10일 사흘간 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집단휴가를 쓴다는 소식에 마음 졸인 학부모님들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불편을 겪은 분들도 계시고요. 어떻게 교사들이 집단휴가를 쓰게 됐는지 그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가정어린이집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전국 4만3000여개 어린이집 가운데 가정어린이집은 2만4000여개로 절반이 넘습니다. 가정형 시설에서 최대 20명까지 영유아를 보육하는 시설을 가정어린이집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1층 베란다 유리에 알록달록한 스티커를 붙인 어린이집을 생각하면 됩니다.
7000~9000여개(추정) 가정어린이집 원장들이 소속된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한가연)는 지난 주말 “보육료는 4년째 동결됐는데 내년도 보육료는 3% 인상에 그쳐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교사 인건비를 부담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집단휴가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원장들을 믿지 못하겠다면 교사들에게 직접 인건비 제공을 해달라고 한가연은 요구했습니다.
사실 어린이집 파업은 아이들을 볼모로 한다는 점 때문에 크게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보건복지부도 만약 등원 거부를 하면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한가연은 등원 거부는 하지 않되 학부모들에게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사흘간 등원을 자제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절충형 파업’을 택했습니다. 김옥심 한가연 회장은 “집단휴가로 인해 학부모들이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가정어린이집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집단휴가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가정어린이집이 다른 국공립어린이집이나 대형 민간어린이집보다 운영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국공립어린이집은 교사 인건비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정 비율 직접 지원받습니다. 반면 민간어린이집은 기본보조금과 보육료에서 인건비를 충당합니다. 그나마 등원하는 영유아가 많다면 한두 명이 결석 좀 한다고 해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민간 가정어린이집 원장들은 당장 아이 한 명이라도 장기간 결석하면 타격이 큽니다. 한 명분의 보육료 수입은 사라지지만, 아이를 3명 보던 교사가 2명을 본다고 해서 월급을 3분의 2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일부 혼란은 있었지만 어린이집 운영에 큰 차질은 없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보육료 현실을 알렸다는 점에서 한가연의 목표는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장들의 모임인 한가연이 보육료 인상 요구에 교사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서울의 한 가정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는 “학부모들에겐 일일이 양해를 구한다고 해놓고 정작 교사들은 휴가신청서를 쓰고서도 출근해 다른 잡무를 봤다”며 “사실을 모르는 학부모들한테 죄송했다”고 말했습니다. 경남의 한 가정어린이집 교사도 “보육료 지원을 더 얻어내기 위해 교사들을 정부 상대로 ‘쇼’하는 데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명자 전국보육교사총연합회 회장은 “다른 교사들이 원장 반 아이들까지 돌보게 돼 업무가 가중되고 아이들도 혼란스러운데, 이러한 보육 환경 개선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원장들이 교사 처우 개선을 얘기하는 건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자기 얘기를 못하는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 문제입니다. 정부는 보육료를 현실화하지 못하자 어린이집 단체에서 요구하는 규제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지침에 어린이집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규제 완화를 일부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규제 완화 내용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복지부와 보육 정책을 직접 대화하는 법정단체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의 요구사항엔 2016년 3월부터 전면금지하기로 한‘정원 내 초과보육 허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영세한 어린이집 도와준다는 핑계로 일부 규제가 풀리면서 정작 대형 어린이집만 좋은 일 시키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무상보육을 하면서 보육료와 교사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못해 정부가 어린이집에 해줄 수 있는 게 규제 완화뿐이라면 결국 또 ‘이래서 무상보육은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건 아닐까요. 저도 계속 지켜보고 다음번 기사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박수지 사회정책부 기자 suji@hani.co.kr
박수지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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