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첫 ‘밑그림’이 나왔다.
앞으로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통해 ’노후소득 보장 강화’와 ’보험료율 인상을 통한 기금 재정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8년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2182만명, 수급자는 441만명이다.
지난 2007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기간 40년 기준으로 생애소득 대비 연금액 비중)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국민연금법 개정이 이뤄진 이후, 국민연금은 10년 동안 제도 개선 없이 현 체계를 유지해왔다.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연금제도 개혁도 2007년 기초노령연금법이 통과(2014년 기초연금으로 전환)된 이후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 국민연금 제도가 큰 틀에서 바뀐다면, 10년 만의 개혁이 이뤄지는 셈이다.
국민연금 개혁 왜 필요한가
국민연금 개혁은 지금 왜 필요할까? 국민연금은 현재 ‘3중고’에 놓여있다.
첫 번째는
노후소득 보장이라기에는 미미한 소득대체율이다. 2028년까지 40%로 점차 낮아지는 현행 소득대체율 기준으로, 2017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월 218만 원을 버는 A가 30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해도 나중에 받을 수 있는 연금 수령액은 월 67만 원에 그친다. 소득대체율을 높여 ‘더 받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을 약속한 바 있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다.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재정 안정성 문제가 심각한 데다가, 현재 세대가 더 많이 받을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은 커지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존재한다. 보험료율을 높여 ’더 내자’는 주장이 나오는 맥락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동전의 양면’이다. 더 많이 받으려면 더 많이 내야 한다.
세 번째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다. 여전히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민연금 수급자가 아니다.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청년 구직자 등은 국민연금에 가입조차 되어있지 않다.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한국의 노후소득보장 체계 전체적으로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다층체계가 구축되어 있는 듯 보인다. 법정 의무제도인 국민연금 제도가 있고, 65살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는 월 21만 원을 받는 ‘기초연금’ 제도가 있으며, 직장인들은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적용되지 않고, 퇴직연금 역시 전체 노동자의 53.4%밖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국민연금 개혁만이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적인 노후소득보장 체계에 대한 보다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 이유다. 17일 나온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위한 ‘밑그림’이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국민연금 정책자문안 내용 살펴보니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일종의 ‘건강 검진’을 실시한다.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살피는 재정계산을 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편방안도 논의한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3차례 재정계산이 진행됐다.
2018년에도 연금 전문가, 학자, 가입단체 추천위원들로 구성된 3개 위원회(재정추계위원회·제도발전위원회·기금운용발전위원회)에서 4차 재정계산과 제도 개선방안 등을 1년 남짓 논의했다.
보건복지부는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열어 그 논의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발표된 정책자문안은 ‘밑그림’으로서 논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일뿐, 정부가 국무회의와 국회에 제출할 최종안은 추후 마련될 예정이다.
우선, 국민연금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57년 적립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향후 70년 간의 출산율, 기대수명,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해 재정추계한 결과다. 2013년의 2060년보다 3년이 앞당겨졌다. 저출산으로 인해 연금 보험료를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인해 연금을 받아야할 인구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2088년 국민연금 가입자는 1019만명에 그치는 반면, 수급자는 1272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지금으로부터 70년 뒤인
2088년까지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한다는 재정 운영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따로 재정목표를 정해두지는 않았다. 목표 없이 그때그때 실행안만 짰던 셈이다. ‘적립배율 1배’란, 2088년 연초에 쌓여있는 적립기금이 그해 총지출액과 같도록 한다는 뜻이다. 적립기금을 계속 이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2020년 16.02%, 2030년 17.95%, 2040년 20.93%로 올려야만 한다.
이와 함께 연금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제도발전위원회 내부에서는 20년째 9%로 묶여있던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졌다. ‘마의 10%’ 벽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올리기 어려운 보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모든 위원이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는 의견이 두 갈래로 크게 엇갈렸다.
위원회는 2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패키지 안을 내놨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다시 높여 노후소득보장 체계 안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가)안과, 재정안정화를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재 수준을 유지하되 기초연금 강화, 퇴직연금 연금화 등 다층체계를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하자는 (나)안이다.
현재 소득대체율은 45%로 해마다 0.5%포인트씩 인하해 2028년에는 40%가 되도록 설계돼있다.
두 패키지 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안은 ‘노후 소득보장 강화’에 중점을 둔 안이다.
2028년까지 40%로 점차 낮아지는 소득대체율 인하를 중단하고 2018년 45%을 2019년에도 그대로 유지하자고 제안한다. 대신에 보험료율은 2019년부터 2%포인트 올려서 11%를 내자고 했다. 2034년 보험료율은 12.31%로 올라간다.
(가)안은 재정안정화 로드맵에서 약간의 우회로를 선택했다. 70년 뒤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하는 장기 전망 아래에서 다시 30년을 기준으로 한 재정 안정화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5년마다 보험료율을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만약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험료율이 18%를 넘어서게 되면, 보험료가 아닌 정부 일반재정을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적립하여 일부를 쓰고 일부를 기금으로 운영하는 ‘부분 적립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기금이 소진된다면 해마다 필요한 급여를 세금이나 가입자에게 징수한 기여금으로 충당하는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취지다. 독일, 미국, 영국 등 외국에서는 대부분 적립기금 없이 급여 재원을 조달하는 ‘부과 방식’으로 연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나)안은 ‘미래 세대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재정 안정화’에 중점을 둔 안이다.
노후소득 보장은 기초연금 급여 수준을 높이고 퇴직연금 일시금을 연금화 하는 방식 등으로 한국형 다층연금체계를 구축하는 대신에,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시키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보험료율을 2019년부터 10년간 최대 13.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자는 제안이다. 2019~2029년이 1단계다. 2030년 이후로는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는 대신에, 기대수명 연장 등을 감안해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2033년 65살, 2038년 66살, 2043년 67살까지 높이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2단계 방안도 제시되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효된 8월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주공3단지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모여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제도발전위원회는 또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국민연금 이외에 기초연금 문제도 검토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연계 감액 폐지, 급여 수준 물가연동,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수급자 포괄 여부 등의 핵심 쟁점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에
‘기초연금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위원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했다. 기초연금의 성격을 ‘보편적인 제도’로 확대하고 기초연금 지급액을 얼마까지 인상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인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위원회는 제안했다. 기초연금은 현재 65살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25만원 지급되고 있다. 2021년까지 30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다층노후소득보장 체계 구축을 위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을 포괄해 논의하는
‘(가칭) 노후소득보장위원회’ 설치도 제안되었다.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보건복지부 소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소관이어서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 만 60살로 되어있는 국민연금 가입 상한 연령을 65살로 높여, 수급 연령(2033년 65살)과 일치시키는 방안도 제안되었다.
위원회는 유족연금 지급률을 현행 40~60%에서 일괄 60%로 인상하고, 이혼시 분할연금 수급을 허용한 최소 혼인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할 것을 제안했다. 둘째 아이 출산부터 12개월씩 부과하도록 돼있는 출산 크레딧(연금 기간을 늘려주는 것)을 첫째 아이부터 12개월씩 부과하고 6개월만 인정되던 군 복무기간의 크레딧도 전체 복무기간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민들의 기금 소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연금 지급보장 책임을 구체적인 문구로 못박아두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현행법의 ‘국가는 연금 급여가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돼있는 책임 문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국민들의 불안이 줄어들지 않으면 ‘추상적 보장 책임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왼쪽)이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는 정책자문안을 바탕으로 여론을 모은 뒤에 오는 9월 말까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마련한 뒤에 10월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김상균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정책자문안은 앞으로 논의할 국민연금 개혁의 첫 단계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책자문안 일부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들끓자 보건복지부는 “정책자문안일 뿐 정부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공청회 인사말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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