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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① 연희네 3남매와 함께한 닷새

등록 2005-12-20 19:41수정 2006-05-11 10:00

서울의 한 변두리 9평 반 지하방에서 연희네 식구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현관 신발장 위에 할아버지, 연희, 민우, 현희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서울의 한 변두리 9평 반 지하방에서 연희네 식구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현관 신발장 위에 할아버지, 연희, 민우, 현희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우리의아이들사회가키우자]
우릴 버려 밉기도 한데… 사랑한다 고맙다 말하고 싶기도…

얼마 전 방치돼 살던 아홉살 난 어린이가 개한테 물려 숨진 참혹한 사건은 어린이를 돌보는 우리 사회의 손길과 안전망이 얼마나 냉랭하고 허술한지를 드러내준다. 날씨조차 얼어붙었다. 어린이의 기본적 ‘권리’인,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오늘도 세상의 냉기와 싸우다 지쳐 시들고 있다. 위기에 빠진 우리 어린이들의 삶을 짚어본다. 첫번째 시리즈는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살피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색한다. 먼저, 기자가 닷새 동안 함께 지내며 들여다본 연희네 삼남매의 일상을 전한다.

“외로워도 울지않기” 연희 세남매는 다짐했다

네식구가 사는 반지하방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아빠는 오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왕따’ 당한 연희 방과후에도 집밖에 안나가
컴퓨터·TV가 유일한 낙

연희네와 함께 한 닷새
연희네와 함께 한 닷새
11살 연희(초등 6·가명)는 단발머리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얼마 전 잘랐다. 지난달 2박3일 수학여행 기간을 혼자 울며 집에서 보낸 뒤다. “머리에 서캐(이의 알)가 있잖아. 더러워. 따라 오기만 해봐!” 같은 반 친구의 따돌림 탓에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짝은 이미 바뀌었다.

4년전 빚에 쫓겨 엄마아빠 가출

기자가 찾아간 서울의 한 변두리 동네. 연희는 민우(초등 3·가명), 현희(초등 1·가명), 할아버지(69)와 함께 반 지하방에 살았다. 9평 남짓. 1년 전 한 방송사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에 소개된 덕에, 아이들도 방을 얻었다. 그러나 ‘엄마아빠 방’은 없었다. 사회복지관 기록은 “아버지는 2001년 카드빚 등 많은 빚을 지고 아동 어머니와 당시 두 살이던 여동생을 데리고 가출하였으며, 아동 부모는 그후 연락이 없고 …”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두 살이던 현희는 2004년 한 보육원에서 발견됐다. 연희는 “밤이 됐는데도 엄마 아빠는 안 오셨습니다.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이제 엄마 아빠는 오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복지관에 낸 글에 적었다. 연희의 담임 교사는 “아이들 셋이 다 작다”고, 할아버지는 “애들이 살이 안 찐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녀온 연희가 무언가 잔뜩 든 시커먼 비닐봉지를 툭 내려놓았다. 우유 11통, 스파게티 면과 소스.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남는 우유와 음식을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아이들은 점심 때 먹은 스파게티를 다시 먹었다. 할아버지가 소스를 냄비에 휘휘 저어 데운 뒤 밥그릇에 부어줬다. 아침에는 주로 할아버지가 우유에 초콜릿 가루를 탄 뒤 휘휘 저어 빨대를 꽂아줬다.

다음날 저녁에는 시래깃국이 밥상에 올랐다. 냉장고에는 꽝꽝 얼린 시래기가 30봉지가 넘었다. 민우는 “할아버지가 만든 음식은 무조건 맛있어요”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지겨워하니까 시래깃국, 콩나물국, 미역국을 번갈아 먹인다”고 했다. 민우가 하루 저녁에는 “고추장에 비벼주세요”라고 졸랐다. 그 다음날,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연희네로 ‘정부 양곡’이라고 찍힌 쌀이 동사무소에서 배달됐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방을 닦고 반 지하방 빨랫줄에 아이들 빨래를 널었다. 빨래는 아이들 방과 할아버지 방 빨랫줄에 빼곡했다. 할아버지는 “안식구가 있으면 좀 나은데,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야 되니 …” 힘겨운 숨을 토했다. 할머니는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꽁초에 불을 붙였다 피웠다, 다시 껐다를 되풀이했다. 3년 전 고관절 수술을 받은 할아버지는 “내가 죽고 나면 애들을 어떻게 할지 …” 하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찾아간 첫날부터 “안아주세요”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500원만”이라고 자주 졸랐고, 할아버지는 “내가 은행이냐?”며 모른 척 했다. 할아버지는 이날 “똑바로 앉아서 저녁 안 먹어?” 하고 매를 꺼냈다.

하루는 민우가 저녁에 나가더니 ‘종이학 접기’를 사왔다. 민우는 “행복해지라고 빌 거예요. 먹을 것 많아지고 할아버지도 50살이 됐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연희는 “할아버지 술 조금만 드세요”라고 했다. 민우와 현희는 할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커피 크림에 설탕을 타서 마셨다. 주방세제로 물거품을 만들어 불었다. 주말, 할아버지는 고구마와 감자를 삶았다.

연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좀처럼 방을 나가지 않았다. 동사무소에서 놔준 인터넷으로 ‘패기’, ‘포탄’, ‘극본’, ‘호통’의 뜻을 찾아 단어숙제를 했다. 민우와 현희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선생님 없을 때 숙제를 한다”고 했다. 동생들은 오후 3시께 ‘학원’으로 갔다. 아이들의 학원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이다. 복지관에 초등학교 6학년을 위한 방과후 교실은 없었다. 숙제가 끝나도 연희는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연희는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동방신기의 사진을 올리고, 미키유천 화보를 보며 음악을 들었다. 연희는 놀러온 한 살 위 동네 언니와도 함께 인터넷을 했다. 이 언니는 기자가 지켜본 닷새 동안, 연희가 학교 공부 뒤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복지관에 다녀온 동생들도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민우와 현희도 컴퓨터를 잘했다. 번갈아 차지하는 컴퓨터는 밤 11시가 다 돼서야 꺼졌다. 인터넷이 지겨우면,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켰다. 유선방송의 만화는 끝이 없었다.

일요일, 아이들은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늦은 오전 9시께 일어났지만,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켜는 시간은 훨씬 빨라졌다. 민우는 ‘주니어 네이버’에 가입하려고 부모님 주민번호 칸에 할아버지 이름과 주민번호를 쳐 넣었다. 부모님 메일주소 칸에는 누나 연희의 메일주소를 적었다. 할아버지는 “나는 컴퓨터 끌 줄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하루는 막내 현희가 오빠 민우의 머리를 쳐, 혀를 깨물은 민우가 피를 흘렸다. 할아버지는 “이놈의 새끼들, 와이리 분답노? 하루종일 켜놓으니 컴퓨터가 열을 받잖아. 별난기라. 다 데리고 가라고 해야지. 이래는 더 못 산다”고 역정을 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아이들 산만함이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막내 현희는 대변을 보고도 화장실 물을 내리지 않았다. 민우는 변기 옆 하수구에 오줌을 눴다. 민우는 커다란 붕어빵 봉지와 필통 봉지를 길바닥에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연희는 인터넷을 하고, 동생들은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나이 일흔을 앞둔 연희네 할아버지는 초등학생인 손녀·손자 3명과 같이 어울려 놀아주기는 힘들다.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연희는 인터넷을 하고, 동생들은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나이 일흔을 앞둔 연희네 할아버지는 초등학생인 손녀·손자 3명과 같이 어울려 놀아주기는 힘들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연희는 기자와 함께 하는 영어문제 풀기에 무척 신이 난 듯했다. “학생은 스튜던트(Student) 맞죠?” 연희는 기자와 ‘웃찾사’를 보다가 “어른이 되면 웃음이 많아져요?”라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이들은 평소 뭔가 묻고 답을 구할 상대가 없었다. 연희는 할아버지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민우는 낯선 기자에게 첫날부터 “안아주세요”라며 자꾸만 매달렸다. 할아버지는 “애들이 사람이 귀하니 반가워서 자꾸 치대요. 정을 못 받아 놓으니 …”라고 했다. 셋쨋날, 민우는 “선생님, 크리스마스 때까지 오세요, 네? 네?”라고 졸랐다.

“행복해지라고 빌 거예요”
먹을 것 많아지고
할아버지도 50살 됐으면…”

연희는 “제가요, 외로움을 많이 타서요, 사람들이랑 잘 못 놀면요 울어요. 그렇지, 민우야?”라고 했다. 연희가 동생들과 같이 적은 ‘약속장’ 5번은 “울지 않기(울면 동방신기 팬 아님)”다. 연희는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가장 많이 울었을 때’로 “많지만, 왕따 비슷한 것을 당했을 때”라고 적었다. 연희 담임 교사는 “늘 주눅이 들어 있어요. 기를 좀 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학교 앞 떡볶이 아줌마가 연희를 ‘우리학교에서 제일 조용한 애’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간혹 도움을 주는 이들이 찾아와도 그들은 늘 ‘가버리는’ 사람들이었기에, 아이들은 그냥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면 됐다.

막내 현희가 하루는 학교 소식지를 갖고 왔다. 할아버지는 “이게 뭐야? 갖고 있어야 돼?”라고 물었다. 소식지에는 아이들 방학과 졸업식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제대로 챙기기는 어렵다. 연희는 “지난 소풍 때 현희가 말을 안 해서 (도시락을 준비 못해) 밥을 얻어 먹었어요”라고 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연희는 얼마 전 초경을 했다. 할아버지는 한숨을 지었다. “애가 뭐라 그러더라고요. 제가 딸내미를 길러본 적도 없고, 뭘 아나요? 옆집 할머니가 거 뭐죠(기자가 생리대라고 말해줬다), 예, 그걸 사왔더라고요. 집에 여자가 있어야 되는데 ….” 담당 사회복지사는 “할아버지가 연희 속옷 같은 것을 잘 챙겨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얼마 전 어린이용 브래지어 몇 벌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이제 뭘 아는지 속옷은 자기가 벗어서 세탁기에 살짝 집어 넣는다”고 전했다. 연희는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떴어”라며 거울을 쳐다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연희의 머리를 빗겨주지는 않았다.

어느 오후. “오늘 민우 학원 안 가면 안 돼? 할아버지!” 연희가 졸랐다. 민우는 “오늘은 학원가기 싫어, 안 가! 안 가!”라며 방을 빙빙 돌았다. 이날 끝내 민우는 복지관 방과후 교실에 빠지고 연희와 문방구에 갔다. 민우는 “누나 이거!” 하며 만능 전자게임 필통을 만지작거렸다. 1만원. 하지만 연희는 “내가 돈이 많이 없단 말이야!”라며 다른 필통을 내밀었다. 이날 민우는 누나가 고른 3200원짜리 빙빙게임 필통을 샀다. 민우의 생일 선물이었다. 연희는 “할아버지가 주는 생일선물은 없어요. 미역국을 끓여주세요”라고 했다. 울다 잠든 현희에게 오빠 민우가 베개를 받쳐줬다.

<b>엄마 아빠 없는 가족그림</b>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민우가 “우리 가족을 그릴 거예요”라며 그린 그림. 민우는 ‘행복한 가족’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그림 안에 엄마와 아빠는 없다. 그림 왼쪽이 누나 연희, 오른쪽이 할아버지, 가운데 위가 민우, 아래 작은 사람이 동생 현희다.
엄마 아빠 없는 가족그림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민우가 “우리 가족을 그릴 거예요”라며 그린 그림. 민우는 ‘행복한 가족’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그림 안에 엄마와 아빠는 없다. 그림 왼쪽이 누나 연희, 오른쪽이 할아버지, 가운데 위가 민우, 아래 작은 사람이 동생 현희다.


반지하방에 아이들이 그린 엄마와 아빠의 얼굴은 없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생일축하 카드도 없었다. 민우는 기자가 사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우리 가족을 그릴 거예요. 할아버지, 누나, 나, 현희.” 민우는 그림에 ‘행복한 가족’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동방신기’ 라고 말하는 연희
엄마 아빠 얘기는 잘 안꺼내

연희의 동네 언니는 “연희가 엄마 아빠 얘기는 잘 안 한다”고 했다. 연희는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에 “동방신기”라고 적었다. 할아버지는 “자기들 버리고 갔다고 그런지 애들이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아요. 길러야 정이 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연희가 엄마 얘기를 꺼낸 건, 저녁을 먹다가 “할아버지는 엄마보다 맛있게 해요. 엄마가 하면 맛 없는데 참고 억지로 먹었어요. 맨날 자기 맛있는 것만 사 먹고 …”라고 했을 때뿐이다. 민우 역시 불우이웃 캠프 얘기를 하다가 “엄마 아빠가 현희를 고아원에 버리고 가고 … 자기들끼리 쇼 했어요. 그래서 현희는 그때 못 갔어요”라고 말한 정도였다. 한번은 현희가 구석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았을 때, 연희가 “쟤, 가끔 저래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럴지 몰라요”라고 했다.

한번은 현희가 울면서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다고 애들이 놀렸나봐요”라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텔레비전 속에, 영어 책 속에만 있었다. 엄마는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널 왜 버려!”라고 달래는 텔레비전 만화 속에 있을 뿐이었다. 또 다른 텔레비전 만화에서는 “아이에게는 엄마 품이 최고인가봐요”라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아이들도 기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들과 헤어진 뒤, 연희가 복지관에 낸 생활수기를 열어봤다. “저는 어버이날 때 카네이션을 엄마 아빠한테 드리는 애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 왜 저를 버리고 가셨는지,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 엄마 아빠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도 싶고, 키워줘서 고맙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 저의 꿈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고 싶고 그리고 사랑받아 보고 싶은 것입니다. … 저는 제가 착하고 용기있게 살아간다면 엄마 아빠를 꼭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특별취재팀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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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 우편번호 121-750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어린이 특별취재팀

이메일 주소: chil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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