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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몽골소녀 ‘세나’의 외교관 꿈 꺾지말라

등록 2006-05-12 20:01수정 2006-05-12 20:06

몽골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방과후 프로그램인 ‘지구촌학교’에서 생일잔치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구촌학교 제공
몽골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방과후 프로그램인 ‘지구촌학교’에서 생일잔치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구촌학교 제공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⑥ 온세상의 자녀를 우리 품에
3개국어 능숙 전교 1등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 ‘현실의 벽’ 높기만
이곳서 태어나거나 자란 이주노동자 자녀 학습권 보장해야

서울 면목동의 한 실업계 고교 3학년인 몽골 소녀 세나(19·가명)는 늘 전교 1등이다. 모국어는 물론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 또한 누가 들어도 한국인으로 느낄 만큼 말한다. 그런 세나의 꿈은 정치외교학을 전공해 한국에서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6년 전 우리나라에 온 세나는 한동안 적응을 못해 방황했지만,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학교에 정을 붙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다.

그런데 수시모집에 대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세나에게 요즘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는 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고, 몽골에 돌아가 유학비자를 받아 오기엔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세나는 이국땅에서 좋은 친구들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언어와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 꿈을 이루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아예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아이로 크고도 강제로 ‘낯선’ 부모의 나라로 떠나야 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영광(7)군은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면 누구도 아이의 피부색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완벽한 한국 아이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의 아들인 영광이는 부모가 스리랑카로 가자고 하면 “엄마, 나 스리랑카로 안 가. 한국이 좋아. 여기 친구 많아”라며 울먹이곤 한다. 영광이는 경기교육청이 시범 운영 중인 이주아동 특별학급에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부모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언제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다.

다행히 법무부가 국내에 일정 기간 거주하며 적응한 어린이의 경우 부모까지 합법 체류를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교육부도 앞으로 학교에서 자녀를 추적해 불법체류 부모를 단속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협조하기로 했다. 영광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게 희망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이주아동 합법체류 보장 촉구연대’는 더 나아가 국내에서 태어나거나 3년 이상 체류한 어린이에겐 영주권을 줘야 한다는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토론회를 연 데 이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주 노동자 자녀들을 돌보는 단체들은 아이들에게 안정된 체류를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 교육과 세심한 생활지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학교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몽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온 바타(17·가명)는 중학교를 다니다 3년 전 그만두고 작은 인쇄소에 다니고 있다.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이 아니라, 학교를 더는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말이 익숙지 않아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한국 친구와 사귀다 사이가 나빠지면 혹시라도 자기가 사는 곳을 신고할까봐 친구 사귀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성적은 나빴고, 학교를 다니는 데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공부를 못해도, 숙제를 안 해 가도, 수업 시간에 졸아도, 바타를 야단치거나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바타는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여기는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 자녀의 경우 몽골에서 온 아이들이 거의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남아권 이주 노동자들은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취학 연령 아이들이 적은데다, 몽골인들은 ‘가족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인식이 깊어 대부분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위한 몽골어 통역사는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적인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공부까지 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한국말을 못하는 건 곧 소외와 학습권의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

이주 노동자 자녀를 위해 ‘지구촌학교’를 운영하는 이은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지역복지팀장은 “지역별로 이주아동센터 같은 곳을 만들어 여섯달만 집중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친 뒤 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쉽게 학교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일부 학교에서는 이주 노동자 자녀의 입학 신청을 받으면 “책상이 없다”며 거부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들이 입학했을 때 가르치는 일도 쉽지 않고, 다른 학부모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학교에 다니게 되더라도 이주 노동자 자녀들의 생활은 ‘지뢰밭’이다. 잘하는 게 있어도 그걸 표현하거나 칭찬받을 기회가 적고, 결국 바타처럼 무관심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도 이들에겐 큰 어려움이다.

이은하 팀장은 “대학에서도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성적을 매기는데, 성적이 가장 큰 스트레스인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건 학습권 침해나 마찬가지”라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아이들에게, 더구나 자아 정체성이 발달하는 시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교사들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일본 “특별학교서 일본어 먼저 가르쳐”
미국 “불법체류자 자녀도 당연히 교육”

우리나라보다 이주 노동자의 역사가 긴 다른 나라에선 그 자녀들의 교육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을까?

1990년부터 이주 노동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외국인 자녀가 일본어를 잘 못하거나 역사 과목처럼 일본인이 아니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과목은 특별 교사를 배정해 가르친다. 특히 이주 노동자가 많은 가나가와현에는 일본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특별학교가 있어 일반 학교로 보내기 전 일본어를 먼저 교육한다.

불법 체류자의 자녀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밖에 못하고 일본인 학생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재판을 통해 부모까지 특별체류 허가를 받기도 한다. 비자가 없더라도 각 지방자치단체에 외국인 등록을 하면 자녀들은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미국 연방법은 국내에 있는 모든 어린이가 학교에 다니도록 하고 있다. 1100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비영리기구인 ‘가톨릭 채리티’에서 이민자 지원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키트 당은 “불법 체류자가 아이를 입학시킬 때 학교에서 묻는 것은 아이의 이름과 나이, 이전 학교에서의 학년뿐”이라며 “아이들의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학교는 정부나 이민국에 절대로 신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이주 노동자 학부모를 위한 과정을 따로 두어, 자녀들이 받는 수업 내용을 알려주고 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돕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서로의 처지와 생각을 이해하게 돼 아이들의 교육 효과도 높아졌다고 분석되고 있다. 조혜정, 보스턴/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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