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얼굴과 이름, 근무지 등 신상을 공개해 양육비 지급 이행을 압박하는 사이트이다. 재작년 7월 열었다. 활동가는 여성단체와 양육비이행관리원 출신 등 모두 6명이지만 외부적으로 알려진 이는 구본창씨 한 명이다. 그는 사이트에서 제보 접수와 같은 외부 소통과,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일을 한다. 전 배우자의 직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엄마들의 보디가드가 되기도 한다.
그는 사이트 활동으로 16건의 고소를 당했다. 개인 정보 공개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5일 이 고소 중 6건에 대해 수원지방법원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배드 파더스의 신상정보 공개가 공익성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항소한다네요. 재판이 끝나면 필리핀에 가려고 했는데 좀 늦춰질 것 같아요.” 지난 21일 서울 사당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구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우리 나이로 50살이던 2012년 필리핀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서울에서 하던 입시학원을 정리하고 두 딸과 아내가 살고 있던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2년 뒤 더블유엘케이(WLK)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우리는 코피노를 사랑한다’의 영어 약자를 땄다. 코피노는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말한다. 코피노 맘과 자녀의 힘겨운 삶을 보고 그들을 버린 한국인 남편과 아빠를 찾아 양육비를 받아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수단은 인터넷 신상공개와 소송이었다. “그간 500~600명 코피노 엄마가 우리 단체를 통해 양육비를 받았어요. 소송은 한국 법원에서 연간 100명 정도 합니다. 승소율은 99%이지만 양육비 지급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는 비율은 30%대에 불과해요. 돈을 주지 않아도 한국법상 특별한 불이익이 없어서죠.”
그는 이 단체에서 자신이 하는 일은 주로 ‘주먹질’이라고 했다. “필리핀 교포들은 저를 깡패로 알아요. 제가 하는 일이 주먹질이니까요.” 더 들었다. “한국 아빠들이 건달을 보내 코피노 맘을 협박하는 일이 많아요. 단체 설립 초기에는 제가 직접 몸으로 코피노 맘을 보호했어요. 필리핀은 경찰을 불러도 안 옵니다. 부패해서 돈을 줘야 와요. 그런 상황에서 기도만 해선 안 되잖아요.”
그의 입 속을 보니 위는 틀니고 아래는 치아가 절반 정도 안 보인다. 코피노 생존권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운 결과란다. “칼싸움을 하다가 몸을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때 치아가 나갔어요. 법에 따라 해결하려면 아무것도 못 해요. 불법인 줄 알면서 신상공개를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필리핀 민다나오 이슬람 반군이 납치한 인질을 구출하는 일도 한다. 돈을 벌려고 2015년에 시작했다. “시민단체 활동 초기엔 한 달에 천만원씩 제 돈이 들어갔어요. 아내가 싫어했죠. 그래서 생각한 게 인질 구출 사업이었죠. 필리핀에는 싸움을 잘하거나 혹은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은 많지만 둘을 함께 잘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거든요. 제 페이스북에 구조 요청 문의가 오면 제가 아는 이슬람 성직자와 함께 나가 협상을 하고 그도 안 되면 제가 직접 구출을 합니다.”
더블유엘케이 후원 회원은 어느 정도냐고 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원금은 없어요. 필리핀 교포들은 제 일에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동포들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해 코피노 문제가 부각되면 관광객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코피노 맘에 대해 매춘 프레임을 씌운 탓도 있죠. 지금 더블유엘케이는 한국인과 필리핀 스태프 3명이 이끌어요. 사무실은 마닐라 북동쪽 케손시티에 있어요. 저는 주로 민다나오에 머물고요.”
2018년부터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해
400명 중 114명 지급 합의 이끌어
최근 명예훼손 재판 1심 무죄 판결
2014년 필리핀에 시민단체 만들어
코피노 맘 500여명 양육비 해결도
민다나오서 반군 인질 구출 사업도
“아내한테는 내가 나쁜 남편 1호죠”
그는 중학생 때 배운 유도가 7단이고 필리핀 무술 ‘칼리’의 고수이기도 하다. 칼리는 칼과 손을 쓰는 무술이다. “필리핀은 총이나 칼을 써요. 유도가 별로 쓸모가 없더군요. 칼리를 5~6년 배웠어요.” 아내는 몸을 내던지는 남편의 이런 행보를 당연히 싫어한다. “아내가 그래요. 당신 이름이 배드 파더스 1호에 올라야 한다고요. 하하.”
그래도 코피노 맘 보호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른들도 배고픔은 참기 힘들어요. 더구나 어린아이들에게 배고픔은 너무 잔인한 현실이죠. 한국에선 실감하기 힘들겠지만 필리핀에서 기아는 일상입니다. 굶는 코피노가 많아요.”
구본창씨가 재작년 9월 출범한 양육비해결총연합회(대표 이영) 회원 및 자문 변호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회 회원은 6천여 명이다. 구본창씨 제공
그는 사이트 개설 1년 전에 배드 파더스 운영진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단다. “양육비 이행 문제를 도저히 풀기 어려워 신상이라도 공개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했죠. 법적인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해코지를 막아달라고요. 처음엔 거절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한국도 판결 뒤 70% 가까이 양육비 지급이 안 되더군요. 충격을 받았죠. 코피노 보호를 위해선 한국의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가 양육비 미지급 제보를 접수해 넘기면 다른 활동가들이 검증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그간 3500명의 제보가 접수돼 400명 신상이 공개됐으며 이 중 114명의 정보가 삭제됐다. 30% 가까이 양육비 지급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양육비 문제에 국가가 더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 인력이 100명이 조금 넘어요. 소송도 대행해주죠. 하지만 신청부터 양육비를 받는 마지막 단계까지 2년이 걸려요. 인력이 부족해서죠. 2년 동안 상대는 재산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요.”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겐 운전면허 정지와 같은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행법에 양육비 지급에 대한 강제력이 없어 판결이 나와도 휴짓조각에 불과해요. 구치소에 30일 감치하는 제도가 있지만 경찰이 제대로 집행하지 않아 있으나 마나입니다. 양육비는 아동 생존권 문제인데 우리는 이를 개인 간 단순 채권 채무 정도로 봐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간주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주고 구상권을 행사하는 대지급이 궁극적인 해결책이지만 예산 때문에 쉽지 않아요. 다른 나라들이 다 하는 운전면허나 여권 제한과 같은 조처를 우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운전면허 제한조차 경찰청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아이들은 표가 없잖아요. 그래서 정치권도 관심이 없어요. 엄마들도 육아와 생계를 병행하느라 바빠 목소리를 내기 힘들고요.”
구본창씨가 민다나오에서 필리핀 정부군과 찍은 사진이다. 구본창씨 제공
그가 보기에 부모 이혼으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명예를 이야기하는 건 위선이자 논리적 모순이다. “전두환 때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 학생들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했잖아요. 배드 파더스에 대한 명예훼손 주장과 비슷한 논리죠. 고 문익환 목사가 1989년 방북하면서 한 말을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해요. 우리는 잘못된 법을 깨면서 법을 바꿔왔다고 하셨죠.”
사이트에 얼굴 사진이 올라온 지 꽤 됐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이유가 뭘까? 돈이 정말 없어서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해요. 사이트에 얼굴을 올릴 때는 (신상공개 요청자가) 큰 부담을 안고 합니다. 전 배우자가 정말 돈이 없다면 올리지 않아요. 양육비를 달라고 하면 다 형편이 안 된다고 말해요. 제 생각에는 돈을 쓰는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필리핀에서 더블유엘케이 활동으로 수십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단다. “저희 활동에 필리핀 경찰은 협조적입니다. 양육비를 못 받은 코피노 맘으로부터 한국 건달의 폭력을 막아준 정당방어로 인정합니다. 쌍방폭행이 아니고요. 경찰이 조사한 뒤 다음 행선지로 저를 데려다 주기도 해요.”
코피노 맘의 고통과 함께하고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소송으로 양육비를 받은 코피노 맘이 저를 일부러 찾아와 5천페소(약 13만원)를 주면서 다른 코피노 맘에게 한국 음식을 사주라고 해요. 그 돈이면 필리핀 경비 1명 월급입니다. 거기선 큰돈이죠. 코피노 맘들은 한국 배우자가 있을 때 한국 음식점에 많이 다녀 우리 음식을 좋아해요. 그런데 배우자가 사라지면 생활이 어려워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도움을 청하는 코피노 맘이 오면 단체 활동가들이 한국 음식점에 꼭 같이 갑니다. 그 코피노 맘도 저희가 한국 음식을 사준 게 많이 고마웠던 모양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