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양육비 미지급 관련 법제도가 부실해 아동의 생존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했다. 연합뉴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해 그들의 신상을 공개해온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이트 관계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주장해온 이들은 “양육비 문제의 공공성을 짚은 의미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지급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현행법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고소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창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아무개(57)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드파더스’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미지급 양육비 정보를 제보받아 이를 공개한다. 구씨는 해당 정보를 사이트 운영자에게 전달해 공개하도록 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구씨의 행위가 공익성을 띤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무죄 판결을 반기면서도 미지급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양육비 국가 대지급제’ 도입 등 본질적인 해결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일부 공개하거나 양육자와 비양육자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저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를 당했고 일부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양육비 문제를 개인 간의 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의 범주로 보고 이를 처벌하거나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제한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달 펴낸 ‘양육비 이행 강화 방안’ 현안분석 보고서에서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 불필요한 조세 지출의 예방, 부양 의무에 관한 사회규범의 수립이라는 점에서 양육비 이행은 공익 사안으로서의 충분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한국의 양육비 이행률은 매우 낮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 실태조사’를 보면 “양육비를 한번도 지급받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7명꼴이다. 처벌 수위도 미미하다.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을 위반했을 때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징역형까지 부과하는 데 견줘 한국에선 가장 강력한 처벌이 감치명령이다.
양육비 미지급 행위에 대해 운전면허 제재나 출국금지 처분을 뼈대로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 여러건 발의돼 있으나 경찰청, 법무부 등 관련 부처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1990년대부터 이미 양육비 이행 강화 방안의 하나로 운전면허증, 사업면허증, 전문직면허증 등 면허증 제재 조처를 하고 있다.
‘양육비 국가 대지급제’도 대안으로 제기된다. 이는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때 국가가 대신 지급해 우선 미성년 자녀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 채무자에게 비용을 징수하는 제도다.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는 “양육비 대지급제를 도입할 경우 일차적 책임과 징수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차원에서 (양육비 문제의) 공공적 성격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해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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