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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배우자 재혼했다고 유족연금 뺏는 건 위헌 소지”

등록 2019-12-16 04:59수정 2019-12-16 15:33

사실혼 이유로 연금수급권 뺏고 환수
여성계는 사실상 ‘재혼금지법’ 비판
2심 재판부 “배우자 기여 고려 안해”
‘재혼금지조항’ 위헌법률심판 제청

유족연금을 받던 배우자가 재혼할 경우 수급권을 박탈하는 ‘구 공무원연금법 59조’(현 공무원연금법 57조)에 대해 법원이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공무원연금뿐 아니라 국민연금과 군인연금 등도 재혼한 배우자의 유족연금 수령을 막고 있어 해당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날 경우 국내 연금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ㄱ씨는 1992년 군무원이었던 남편이 순직한 뒤 유족연금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던 2017년 12월 ㄱ씨는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연금 수급권 상실 알림과 함께 그동안 지급된 유족연금 3800만원을 환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단은 ㄱ씨가 다른 남성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점을 문제삼았다. 구 공무원연금법 59조 1항2호는 ‘재혼한 때(사실혼 포함) 퇴직유족연금의 수급권리를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공단을 상대로 유족연금 환수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ㄱ씨는 곧장 항소했고, 2심 재판부에 “(해당 조항은) 재혼한 유족의 재산권과 혼인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요청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노태악)은 해당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ㄱ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연금 수급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족연금 중 공무원이 낸 기여금은 상당 부분 배우자와의 공동 협업으로 납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며 “(해당 조항은) 배우자가 연금 형성에 기여한 정도와 관계없이 배우자가 재혼하면 연금 수급권을 영구적으로 박탈해 배우자의 기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배우자의 유족연금수급권은 사망한 공무원과의 관계에 종속된 권한이 아닌, 배우자 고유의 재산권 성격도 갖는데 혼인의 자유를 행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을 영원히 박탈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을 갖춘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해당 조항은 그동안 여성계에서도 ‘재혼금지법’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결혼을 통해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됐던 과거 상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꼬집으며, 현 시대의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남성 배우자가 숨지고 유족인 여성 배우자가 재혼하면 숨진 배우자와 관련한 재산권이 소멸되고, 그 여성에 대한 부양의무도 새로운 배우자에게 이전된다는 봉건적 인식이 전제된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과 이혼한 배우자가 받는 ‘분할연금’은 배우자가 재혼할 경우에도 연금 수급권을 박탈하지 않아,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연세대 이종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우리 헌법 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해,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연금 수급권을 받아온 배우자가 새로운 혼인을 한다고 해 재산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별개로,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등은 지난해 8월 재혼한 배우자도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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