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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거리 투쟁 40년 ‘사법 정의’ 미련 버리고 법 바꾸고자”

등록 2020-02-02 19:07수정 2020-02-03 02:43

[짬] 자전 에세이집 펴낸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제공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제공

<거리에 핀 정의>(북콤마).

‘노동자의 벗’으로 불리는 권영국 변호사가 최근 낸 자전 에세이집이다.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착실히 공부해 서울대를 들어간 청년이 대학 캠퍼스에서 피 흘리며 끌려가는 시위 학생을 보고 벼락같이 인생 항로를 바꾼 뒤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좇아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그는 거리 현장과 신문 사회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변호사였다. 이때만 네 차례 기소를 당했고 경찰 연행도 다섯 번이나 당했단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은 다 기각은 됐지만 세 번이나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단다. “검찰은 저를 공권력에 도전한 상습범으로 봤죠.” 정의당 후보로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한 권 변호사를 지난 29일 전화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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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핀 정의> 표지

그가 책에 간추린 변호 활동은 그대로 이명박 정권 이후의 사회사 자료다. 용산 철거민, 쌍용차해고자, 화물연대 구속노동자,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 세월호 피해 유족 등이 법적 정의를 외칠 때 그는 그들 옆에 있었다. 4년 전 촛불 항쟁 때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으로 광화문 거리를 누볐다. 현 정부 들어선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를 위한 특조위 간사로도 활동했다.

그의 회고는 검찰 등 한국의 법집행기관이 권력과 유착해 얼마나 구부러진 잣대를 들이댔는지도 잘 보여준다. ‘이명박 정권 검찰은 용산 농성 철거민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 결정조차 거부했다. 이명박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건에 검찰은 정권의 친위 부대를 자처했고, 법원은 정권과 이를 대리하던 검찰의 위세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검찰은 2015년 공무집행방해로 그를 기소하면서 ‘폭행을 당한 사실이 없다’는 경찰관 진술을 숨기고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았단다. 법원은 지난해 이 사건 1심에서 공소 기각 결정을 했다. “애초 기소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었죠.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할 때 그 권력이 어떻게 남용되는지 확인해주는 예이죠.”

그는 만 36살이던 1999년 사법시험에 붙었다. 법조인이 되기 전 이미 민주노조 운동을 하다 두 차례 해고당했고 두 차례에 걸쳐 3년 6개월 옥에 갇히기도 했다. 출소 뒤 3년 가까이 복직 싸움을 하다 역부족을 느끼고 사시 응시로 방향을 틀었단다. 사법연수원 이수 직후인 2002년 민주노총 초대 법률원장을 맡아 4년 활동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6년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사법 정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6년 전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무효확인 청구사건 판결이 나온 뒤부터란다. 해고 노동자들이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고법으로 환송한다는 판결이었다. “그날 쌍용차 해고자분들과 대법 법정에서 원심판결 파기 주문을 들었어요. 대법원 청사 회전문 바깥에는 기자들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었죠. 해고자분들이 나가지 못하고 회전문 앞에서 흐느끼는 걸 보면서 참담했죠. 이 판결로 사법 정의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현실정치를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말을 이었다. “법률가들은 재판으로 판결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판부가 누구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져요. 쌍용차 사건도 청와대와 사법부의 거래 대상이었죠. 그때는 몰랐어요. 그런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그리고 사회 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정치 영역이죠.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에는 가난 때문에 도시락도 없이 등교해야 했던 초등 시절의 쓰린 기억도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30년 이상 탄광에서 일한 광원이었단다. “대학 3학년 때 고향 선후배들과 함께 아버지가 일하던 문경 탄광 견학을 했어요. 조금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더군요. 아버지가 갱 안내를 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빛나 보였어요. 노동자의 경험이란 게 절대로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그때 했죠.”

탄광촌 출신 1981년 서울대 입학
끌려가는 시위대 보고 ‘운동’ 투신
해고·투옥 고초…99년 사시 합격

용산·쌍용차·전교조·세월호…
정의·평등 좇아온 ‘노동자의 벗’
‘거리에 핀 정의’ 내고 정치 출사표

그의 부친은 여든살 때 진폐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광부 아버지’는 아들이 택한 고난의 길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88년 말 제가 파업 투쟁을 할 때 한 번 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제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병역특례로 방산업체에서 근무할 때라 경찰 정보과에서 연락해 겁을 준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아버지를 제 자취방에 모시고, 자기 전에 공장의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게 박탈당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제 말을 듣고는 부친이 ‘너 괜찮겠냐’고 해요. 그 말에 ‘괜찮습니다’라고 했죠. 그 뒤로는 저를 걱정했지 비난하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구속되고 회사 간부가 회유하려고 아버지를 찾아가 꽤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해요. 그때도 아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제안을 거절하셨죠.”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이가 누군지 묻자 “사람이 아니라 피 흘리는 현실과의 만남”이라고 답했다. “현실을 통해 사고가 뒤집혀진 거죠.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서 선배가 피 흘리며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그동안 주입식으로 받은 교육에 대한 믿음이 깨졌어요. 국정교과서로 배운 게 우리 현실과 완전히 다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었죠. 저는 고교를 다닐 때까지 정말 쑥맥이었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지금 저는 스님이 벽을 보고 참선하다 도를 깨쳤다는 이야기를 이해합니다. 대학 1학년 때 제가 겪은 일이니까요.”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그에게 입법의 권한을 주면 가장 먼저 만들고 싶은 법이다. “노동안전이 중요한데, 산재 사망이 줄지 않고 있어요.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과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법안도 만들고 싶어요.”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제공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제공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미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경제 성장에도 사회적 양극화는 훨씬 심각해지고 있어요. 이는 사회 통합을 해치는 결정적 문제이죠. 이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아요. 피라미드 꼭짓점의 일부만 부유하고 행복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꼭대기에 가려고 피 말리게 경쟁합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사회를 수평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삶의 질 개선은 어려워요. 노동 안에서도 대기업 정규 및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 및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사이에 위계가 있어요. 건널 수 없는 차별의 단절이 있죠. 노동에서 평등을 지향하는 입법 활동을 하고 싶어요.”

검찰 개혁 문제를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에 대해선 이전부터 갑갑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검찰이 수사와 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수사를 하고 싶은 것만 해요. 수사하고 싶지 않으면 고소인한테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해요. 수사 기관이 수사로 증거를 찾아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데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니 말이 안 나왔죠. 이상한 논리로 증거가 부족하다, 혐의가 없다고 하면서 명백한 사건을 손놓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만드는 것은 맞다고 봐요. 하지만 저는 경찰도 믿지 않아요. 후속 입법을 통해 일반인 유착과 같은 경찰 병폐를 막는 방안을 찾아야죠.”

그는 인터뷰 끝에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포철공고 재학 시절 성당을 다니다 알게 되었고 연애는 대학 때 시작했단다. 남편의 사시 준비도 아내가 직장을 다니며 뒷바라지했단다. “사시를 보기 전에 손위 처남이 같이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그때 아내가 ‘당신한테 사업은 영 안 맞을 것 같다, 차라리 공부가 낫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한테 3년의 시간을 주었죠.” 아내는 남편이 사법연수원 이수 뒤 ‘돈벌이’를 포기하고 바로 민주노총 법률원에 합류할 때도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동의해줬단다. ‘어휴, 이 화상아! 내가 당신을 어찌 말리겠노. 당신 알아서 해라.’

정치는 어떨까? “끝까지 반대했어요. 지금도 말리고 싶어합니다. 거리의 변호사로서 지금과 같이 사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고 보람 있다면서요. 제가 설득했죠. 정치판이 흙탕물이라고 방치하면 거기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이겠냐고요. 정치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구조를 결정하는 곳이잖아요. 지금은 아내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저를 돕고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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