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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징계권’ 삭제 추진…“회초리를 사랑이라 포장하지 마세요”

등록 2020-08-05 04:59수정 2020-08-05 07:10

“네가 잘못해서 혼난 거야”
거듭된 학대·폭력에 도움 청해도
경찰은 “네 잘못”이라며 외면하고
법원선 “교육 목적” 들어 인정 안해

민법 ‘징계권’에 체벌 포함 인식 탓
학대 부모, 훈육 주장·회피도 빈번

“학대와 체벌, 구분 불가능”
‘사랑의 매’ 필요성 내세운다지만
특정 행동 즉각적 통제 목적 불과
훈육효과 없고 ‘학대’와 다름없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네가 잘못해서 혼난 거야.”

14살이던 ㄱ군에게 경찰은 그렇게 말했다. ㄱ군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잦은 신체적·정서적 학대와 폭력적인 가정 분위기 때문에 가출을 반복했다. 그날은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ㄱ군과, ㄱ군을 집에 들이지 않으려는 어머니가 실랑이를 벌인 날이었다. ㄱ군은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어머니가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쾅! 쾅! 무거운 현관문이 몇차례나 ㄱ군의 손을 찧었다. ㄱ군한테 질세라 어머니가 문을 세게 밀어 닫으려 한 것이다. 얼마나 많이 찧었던지 ㄱ군의 손은 피투성이가 됐다.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간 ㄱ군에게 경찰은 “가출을 한 것이 잘못이다. 네가 자주 가출을 해 엄마가 힘들어 그랬을 테니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해라”라고 했다. 어머니의 폭력이 경찰에겐 ㄱ군이 응당 받아야 하는 ‘벌’이었던 것이다. ㄱ군은 결국 16살에 집을 영영 나왔다.

8살 ㄴ군도 자신이 당한 일을 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ㄴ군의 의붓아버지는 ㄴ군이 차 안에 구토를 했다는 이유로 발로 걷어차 ㄴ군을 쓰러뜨렸다. 귀가가 늦으면 허벅지에 멍이 들도록 회초리로 때렸고,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던 날에는 책상 모서리로 머리를 밀쳐 ㄴ군의 눈 아래가 찢기고 멍이 들었다. ㄴ군의 사건을 살펴본 판사는 2017년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아동학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행 아동복지법 5조2항은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지만, 법원은 ‘친권자는 보호·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민법의 915조 징계권을 더 주요하게 봤다.

지구상에서 법으로 친권자의 징계권을 보장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을 빼면 찾기 어렵다. 특히 한국에선 이 징계권에 체벌이 포함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부모는 자녀를 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관대한 탓이다. 그렇다보니 가벼운 체벌은 ‘사랑의 매’라며 용인될뿐더러,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8년 아동학대 범죄는 2만4천여건에 이르렀고, 가해자의 73.5%가 친부모(친부 43.7%, 친모 29.8%)였다.

그럼에도 학대 신고를 당한 부모는 ‘훈육’ 목적이었다며 빠져나가려 하고, 경찰이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학대를 모르는 체하거나 불인정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탈가정 청소년 자립 지원 활동을 하며 많은 학대 경험을 상담한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상임활동가는 “관련 기관에 어렵게 보호를 요청했는데도 징계권 앞에서 좌절한 아동·청소년들을 보면, 법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학대를 부추기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아동·법률 전문가들은 1958년 민법 제정 때부터 유지되고 있는 징계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부모는 자녀에게 권리·권한을 행사하는 주체고, 자녀는 온전한 인간이 아닌 부모의 보호·양육을 받는 객체거나 소유물이라는 낡은 시각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방치된다”며 “이런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배경엔 민법의 징계권이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제한적인 체벌은 자녀를 바르게 훈육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단이라며 징계권 삭제를 반대한다. 하지만 김재원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교실)는 “학대와 체벌은 구분할 수 없다”며 “체벌은 부모가 바람직한 훈육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동의 특정 행동을 즉각적으로 중지시킬 목적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그 결과 아동은 책임감을 형성하고 자기조절 능력을 학습하는 대신 수치심과 모멸감만 얻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반복적인 체벌은 아동기의 도덕관념 내재화와 자존감 형성을 저해하고, 청소년·성인기의 공격적인 성향을 증대시키는 등 학대와 똑같이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 소아청소년과학회의 2018년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효과적인 훈육 정책 성명서’가 소개한 연구도 김 교수가 설명한 체벌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한 연구진이 2014년 서른세 가족의 일상생활을 녹음해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을 살펴본 결과, 아동 통제를 위해 체벌을 활용한 열다섯 가족에서 부모가 말로 훈육하다가 체벌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평균 30초였다. 체벌을 당한 아동의 73%는 10분 안에 부모가 문제 삼은 행동을 다시 했다. 많은 체벌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에 불과하며, 효과 또한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아동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고우현 매니저는 “징계권 삭제로 아동 역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때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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