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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단독] ‘호텔식 요양원’ 짓겠다던 나눔의집, 할머니들에 ‘장기거주 의뢰서’ 요구

등록 2020-09-21 04:59수정 2020-09-21 07:38

입소 보호·치료 권한 일체 위임 명시
조사단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볼모로”
‘호텔식 요양원’ 조사받는 와중에도
일반 재가노인 등 입소자 추가 모집

당국, 나눔의집 법인 감독 시늉만
“‘위안부’ 할머니들 입퇴소 기록 전무”
나눔의집 시설 운영진이 입소 할머니들의 보호자에게 보낸 장기거주의뢰서(왼쪽)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장에게 보낸 입소의뢰 요청서(가운데), 입소자 모집계획서. 여준민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 인권조사반 반장 제공
나눔의집 시설 운영진이 입소 할머니들의 보호자에게 보낸 장기거주의뢰서(왼쪽)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장에게 보낸 입소의뢰 요청서(가운데), 입소자 모집계획서. 여준민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 인권조사반 반장 제공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시설 운영진이 후원금 유용과 ‘호텔식 요양원’ 건립 의혹 등을 두고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던 지난 7월, 할머니들의 보호자에게 ‘장기거주의뢰서’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뢰서엔 ‘장기 입소 보호’와 치료 권한 일체를 시설에 위임하도록 명시했는데, 조사단에 참여한 이들은 “나눔의집을 일반적인 노인요양시설로 운영할 최소 인원을 유지하려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사실상 볼모로 잡아두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영진은 같은 기간에 일반 재가노인을 포함한 추가 입소자 모집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의 인권조사반 반장으로 조사에 참여한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20일 <한겨레>에 공개한 장기거주의뢰서엔, “보호자의 별도의 요청이 있기까지는 귀 기관(나눔의집)에서 장기 입소 보호와 위급시 의료기관 이용 등 적극적 치료 조치를 취하도록 귀 기관에 일체의 권한을 위임하겠음을 서약하며 장기 거주를 의뢰”한다고 적혀 있다. 운영진은 여기에 할머니 보호자들의 서명을 받으려고 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광주 인화학교 등 여러 사회복지시설을 조사한 경험이 있는 여 활동가는 “보통 시설엔 이런 의뢰서 양식 자체가 없다. 시설이 이걸 요구한 건 할머니들에게 위급상황이 생겨도 노인전문병원으로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나눔의집에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시설을 (노인요양시설로) 계속 유지·운영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나눔의집 시설 운영진은 7월16일 광주시 퇴촌면에 “만 65살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및 일반 재가노인 중 시설입소 희망 대상자에 대해 입소 의뢰를 요청한다”는 공문도 보냈다. 지난해 정원을 10명에서 20명으로 늘리고, 3월 광주시에서 법인 사업 종류를 ‘무료양로시설’에서 ‘노인양로·요양시설’로 승인받은 데 이어, 퇴촌면에 입소자를 모아달라는 요청까지 한 것이다. 모집 대상엔 ‘월남파병 전쟁 피해자’와 ‘65살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뿐만 아니라 일반 재가노인도 포함돼 있다. 여 활동가는 “가장 문제로 대두된 것이 (할머니들에게 갈 후원금을 유용한) 호텔식 요양원 건립이었는데 반성도 계획 수정도 없이 추진 속도를 냈다”며 “여전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안한 삶에는 관심이 없고 역사적 소명의식도 없이 무책임과 무지, 법인의 욕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 활동가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운영진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하게 하려고 할머니들을 물리적·정신적으로 괴롭혔다고도 전했다. “한 할머니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고 부종이 심해져 간호조무사가 ‘응급실에 가셔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신임 소장 등이 휠체어조차 못 들어가는 개인 차량으로 데려가 불교계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는 시설에 우호적인 발언이 담겼다”는 것이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간병인 등이 ‘갖다버린다’는 식으로 폭언을 하고 ‘이곳 아니면 갈 곳 없다’며 길들였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이런 심리적 위계관계를 이용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내부 고발에 나선 공익제보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운영진은 지난 11일 “원종선 간호조무사가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국고보조금이 들어오는 비급여 의료지원카드를 은닉하고 일체의 보고나 허락 없이 개인적으로 사용해왔다. 이 카드로 영양제를 구입해 봉사자와 동료 직원들에게 나눠 주는 등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주장하며 원 간호조무사를 업무상 횡령 및 배임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 의료지원카드는 할머니들의 약품, 의료보조기구, 생활의료용품 등만 구입할 수 있도록 사용처가 제한돼 있다. 또 공익제보자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가로수 확인 결과, 관련 물품 영수증은 모두 시설에 보관돼 있었다. ‘은닉’했다는 카드는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생활관에 있어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할 때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최근 간병인과 시설장도 해당 카드를 이용해 대금을 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진이 “(원 간호조무사가)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 영양제는 할머니들을 위한 영양제로, 의료진의 추천으로 구입했다는 기록이 직원들의 단체 채팅방에 남아 있었다.

여 활동가는 나눔의집 법인과 시설의 감독 의무가 있는 경기도와 광주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지원하는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사회복지법인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가 책임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라 여가부가 매년 10월 실태조사를 하게 돼 있는데 내부 고발 직원들에 따르면 할머니 안부 정도만 물은 뒤 시설장을 만나고 갔다고 한다. 광주시는 2015년, 2019년에는 아예 지도점검을 안 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발이 들어간 뒤인 올해 4월에야 처음 조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조사 이후 나눔의집 법인 이사와 감사진의 전원 해임을 경기도에 요구했다. 현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경기도의 행정처분만 남은 상태다. 여 활동가는 “나눔의집 법인과 시설은 그동안 이 시설에 몇분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입·퇴소하셨는지 기록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할머니들을 사실상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며 “축적해놓은 후원금 88억원으로 할머니들이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할머니 기록물을 정리해 남겨두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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