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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여보, 이젠 ‘끝나는 날’이 있어…‘양심 반하는 전쟁’ 거부의 날

등록 2020-11-21 11:47수정 2020-11-21 14:30

[토요판] 커버스토리
대체복무교육 1기생들 인터뷰

80년 기다려 얻은 대체복무 36개월
25~37살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세탁·시설관리 업무 모두 필요한 일
양심 반하지 않는 일이란 사실 중요”
대체복무 1기인 장경진(사진 왼쪽부터), 김수훈, 오승헌, 백종현 대원이 지난 11일 대체복무교육센터의 한 생활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대체복무 1기인 장경진(사진 왼쪽부터), 김수훈, 오승헌, 백종현 대원이 지난 11일 대체복무교육센터의 한 생활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1939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 비밀문서에는 조선인 여호와의증인 30명의 수감 기록이 남아 있다. 2000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매년 수백명씩 감옥에 가는 나라는 유엔 회원국 중 한국뿐이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기까지, 징역형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월이 80년이다.

대체복무제도가 시작됐지만, 대체할 복무의 범위와 기간을 두고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놓고 ‘양심’이 무엇인지, 병역거부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한 날 선 질문들도 여전하다.

지난 11일 <한겨레>가 만난 대체복무교육 1기생들은 대체복무의 첫발을 뗀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을 잘 알고 있었다. 3주 교육의 마지막 일정을 함께하며 그들이 겪어온 지난 시간, 사상 첫 교육의 내용과 진행, 차근차근 넘어가야 할 고민들을 보고 들었다. 지난 10월26일 대체복무교육이 시작된 이래 내부의 모습이 공개되긴 처음이다. 

지난 11일 대체복무 3주 교육의 마지막 수업을 마친 직후 대체복무요원 네명을 대전교도소 대체복무교육센터의 생활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튿날인 12일 종합평가를 끝으로 13일 대전교도소와 목포교도소로 배치(남은 35개월 복무)됐다. 인터뷰 내내 이들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묻어났다. 대체복무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고 신중히 골랐다.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수훈 스물다섯살이고요. 2년제 대학 나와서 회사에서 잠깐 일하고 일용직으로 살면서 재판(1기 대체복무요원들은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았다)을 받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오승헌 저는 서른일곱살이에요. 2013년부터 재판을 받았고요. 올해 초에 (2심에서) 파기 환송 확정판결을 받았어요.

장경진 제가 재판을 받은 건 2014년 9월부터예요. 서른셋,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고요.

백종현 일용직부터 통역일까지 불러주는 대로 다니면서 동생 둘을 건사하며 살아온 서른살입니다.

―3주 교육이 사실상 끝났어요. 여러 감정이 들 텐데요.

장경진 스물셋에 결혼해서 곧바로 아이가 태어났고, 아내랑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게 처음이에요. 3주 동안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죠.

오승헌 재판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감정들, 막상 겪을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마음속 상처들을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한테도 보살핌이 필요했구나’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예순세명 모두 더 형제처럼 느껴져요. ‘언제부터 재판했나’ ‘어땠나’ 서로 묻고 답하고. 사연 없는 대원은 없으니까요. 고생한 기간이 최소 몇년씩이고.

대체복무 수업을 듣는 대원들의 모습.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동안 진행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대체복무 수업을 듣는 대원들의 모습.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동안 진행됐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바깥 사람들도 그리울 거 같아요.

장경진 막내가 이제 세살인데,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말을 배우니까 더 예쁘고.

그에게 “교육 들어오는 날, 아이가 뭐라고 하던가”라고 물었다. 한참 말이 없다가 하늘을 보며 눈을 끔벅거린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말을 잘, 잘 못해요….” 더듬거릴 때마다 고인 눈물이 넘친다. 장 대원은 한의사다. 군 복무를 했다면 4주 훈련 뒤 총을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것조차 거부했다. 장 대원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63명 모두 63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힘겹게 버텨왔다. 질문을 바꿔, 교육에서 불편하거나 불만스러웠던 점을 물었다.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다.

김수훈 오히려 관리하는 쪽(교도관)에서는 미흡해 보였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떤 점이요?

김수훈 첫날 ‘점검’을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해본 사람도 없고. 어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이런 건 불편하기보다는…. 잘하고 싶은데 서로 간에 준비가 안 돼 있었달까….

오승헌 일상에서도 복무관리관들이 군대처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가끔 “군대 같은 분위기 이런 거 만들 필요 없다”는 말을 복무관들이 먼저 했거든요. 우리가 의도치 않게 그런 (군대) 분위기로 흘러가면, 저기(교정당국)는 다르게 하려고 하는구나 느낀 적도 있죠. 고마웠습니다.

밤 9시30분 ‘점검’이 시작된다. 군대로 치면 ‘점호’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밤 9시30분 ‘점검’이 시작된다. 군대로 치면 ‘점호’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오늘 배운 게 세탁 업무, 시설관리 업무인데. 어땠어요? 복무의 종류가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오승헌 어떤 세제를 넣고, 몇분 세탁을 하고 이런 게 핵심은 아니잖아요.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중요한 일입니다. 일의 경중이나 난이도보다는 그 자체가 양심에 반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장경진 복무 초기니까 우리가 먼저 열심히 모범적으로 복무를 하고 나면 후배님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업무만 아니라 36개월 복무는 징벌적 성격이 있을 정도로 길다는 지적도 나와요.

오승헌 결혼한 아내가 입소하기 전 얘기했어요. “드디어 ‘끝나는 날’을 셀 수 있게 됐어, 여보.” 병역거부를 결심한 20대 초반 이후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체적으로 ‘끝’이라고 쓸 수 있는 날짜를 떠올린 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끝나겠지, 그런 막연한 희망만 있었죠. 이제 ‘끝나는 날, 모든 기다림이 마무리되는 날이 언제인지 내가 아는구나’, 그것만으로도….

백종현 대체복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면, 복무기간 동안 우리가 잘하는 게 더 중요하겠죠.

―달력에 ‘끝’이라고 써놨나 봐요.

김수훈 아직 2023년도 달력이 안 나와서(일동 웃음).

장경진 세월 얘기를 하면 저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스물셋에 결혼했으니 10년 됐네요. 아이 얘기를 다 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대체복무 간 아빠가 여행 간 줄 알아요. 여전히 엄마 말도 잘 안 듣고. 얼마 전 전화했더니 “아빠 없으니까 혼내는 사람 없어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3년간 가족은 더 끈끈해지겠죠. 아이들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장 대원은 또 울먹인다.

김수훈 동생도 대체복무를 준비하고 있는데, (나이 드신) 부모님만 계셔서 그건 좀 걱정이 되네요.

인터뷰 중인 생활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한 대원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종교행사 시작을 알렸다. 네명과 인터뷰하기에 한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밤 10시. 대원 모두 취침할 무렵, 기자는 대전교도소를 나서면서 꼬깃꼬깃해진 쪽지를 폈다. 인터뷰 내내 유난히 말이 없던 백종현 대원이 취침 직전 급하게 기자를 찾아 건넨 손편지였다.

“가족들, 특히 동생 은지와 희원이에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대전/하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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