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대면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금이 가장 적기예요. 학급당 학생 수 20명,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대목에서 특히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학급당 학생 수 20명 법’(20명 교실 법)으로 요약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개정안은 국회에서 각종 이해관계에 얽혀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라는 수치를 못 박는 대신 ‘적정 학생 수’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바뀌어 통과됐다.
대선을 100여일 앞둔 지금, 20명 교실 법은 이탄희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내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추진 중인 안건이다. 이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 앞서 국회에서 ‘학급당 학생 수 20명 대선 공약 추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과밀학급 해소가 20명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추진될 수 있도록, 학급당 학생 수 20명을 반드시 당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왜 20명일까. 학생 수가 적어진 교실이 미래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지난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을 꾸준히 주장해온 이 의원에게 물었다.
이 의원은 20명 교실 법을 실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교육 불평등의 완화를 꼽는다. “원래 교육 격차 위기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공부방 계급론’이라는 담론이 강화되고 있잖아요. 어릴 적 부모로부터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성인이 된 뒤 계급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인데요. 그게 회복이 안 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았어요.”
교육 불평등 완화를 위한 여러 방안 중에 유독 20명에 ‘꽂힌’ 건 우연한 계기였다. 국회 교육위 소속인 이 의원은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6개월 되던 시점 즈음, 의정활동의 하나로 학교급별 등교일 수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일선 학교는 거의 절반도 등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경기과학고, 서울과학고 같은 곳은 (그 시점까지) 학교에 가지 못한 날이 없었어요.” 그 차이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찾아보니, 이들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가 평균 15명 안팎이었다는 것이다.
전국 과학고 대부분은 전교생이 300명이 되지 않고, 학급당 학생 수도 20명을 넘지 않는다. 대부분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초·중·고와 달리 과학고는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을 넘지 못하도록,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학교의 절반 수준이다 보니 비슷한 크기의 교실에서 한칸씩 띄어 앉는 수준의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지난해 10월 교육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매일 등교 가능한 기준으로 내세운 전교생 3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도 부합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공교육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며 “빨리 상향 평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후 교육 현장에 나갈 때마다 학급당 학생 수 문제를 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 교사, 학부모들도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내로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단순히 방역 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전인격 교육을 실현하는 데도 꼭 필요한 방안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교육 정책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 의원은 20명 교실 법을 주장하는 근거로 세가지를 꼽는다. 첫째,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의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이다. 이미 과학고에서 효과를 입증한 20명 상한제를 일반 학교에도 평등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20명은 유럽 교육 선진국의 학급당 학생 수와 근접한 수치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유럽 22개국의 초등학교, 중학교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각각 19.4명, 20.8명이다. 한국의 경우 각각 23명, 26.1명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주체들로부터 가장 광범위한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학급당 적정 학생 수가 20명”이라는 점을 꼽는다. 이탄희 의원실에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학급당 적정 학생 수에 대해 20명 혹은 그 이하라고 대답한 비율이 77%였다고 한다.
확신이 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를 명시한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곧장 벽에 부딪혔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교사 수급 문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장기적인 유휴 인력 문제, 예산 부족 등을 들며 반대 입장을 냈다. 일부에서는 미국, 일본 등 교육 선진국에서도 대도시의 경우 오이시디 평균보다 과밀하다며 한국이 특별히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렇게 반박한다.
“중학교의 경우 우리나라 학급당 학생 수가 오이시디 전체 30개 국가 중에서 24위예요. 평균치 자체가 굉장히 높다는 거고요. 그리고 한국의 특징은 과밀 학급의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굉장히 높아요. 그러니까 교육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별 차이 없다는 말은 틀린 거죠.”
그는 기재부나 교육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재정을 투여할 여력이 없어서’ 이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한국판 뉴딜로 교육 분야에 배치된 예산 일부를 20명 교실 실현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총 18조5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를 추진 중이다. 공간 혁신, 에너지 절약과 학생 건강을 고려한 제로에너지 그린 학교,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스마트 교실, 지역사회와 연결된 학교시설 복합화 등을 사업 방향으로 내세운다. 이 의원은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교실 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래형으로 교실 구조를 바꾸면서, 그 기회를 활용해 ‘학급당 학생 수 20명’ 기준에 필요한 교실 수를 확보할 수도 있는 거죠.”
납득하기 어려운 반대에 부딪힐 때는 “외롭다”는 마음도 들었다. 직접 표를 던지는 세대가 아닌 아이들 문제라 자꾸만 뒤로 밀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였을 때 가장 혜택을 받는 사람은 아이들인데, 아이들은 당장 현실에서 유권자가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니 (교육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그렇고, 제도권 내에서 자꾸 뒤 순위로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좀 더 뚜렷해졌다. 이 의원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은 “안전하고 따뜻한 학교”다. 20명 교실 법은 학생들 사이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큰 몫을 하겠지만, 학교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울타리로서 역할을 지금보다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보편적 안전을 위해서는 성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없어야 하고, 이번에 여수해양과학고 홍정운군처럼 현장실습하다가 사망하는 아이도 없어야 해요. 그런 학교를 위해서는 선생님이 아이 한명, 한명을 봐줄 수 있는 에너지가 확보돼야 하는 것이고요.”
1년 전 이 의원이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음을 체감한다고 한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20명 교실 법이 대선 교육 공약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라는 건 대한민국 미래에 대해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시기잖아요. 지금 얘기를 안 하면, 또 몇년 동안 이 얘기를 못 할 수도 있어요. 지금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예요. 학급당 학생 수 20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당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명시적으로 국민에게 약속을 해야 하는 때인 거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