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자사고·일제고사 부활 예고…“사교육·불평등 더 키울 것”

등록 2022-03-23 04:59수정 2022-03-23 07:45

윤석열 정부 정책 전망 ⑧교육
윤 “고교 선택권 확대·수월성 추구”
시행령 재개정해 자사고 유지하면
‘학교간 서열화 용인’ 논란 거셀 듯

“주기적 학력 검증조사 실시” 공약
사실상 일제고사 “사교육 유발” 지적

정시비율 더 늘리면 고교교육 파행
지역학생 상위권 진학도 힘들어져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공약집에서 ‘공정’, ‘부모찬스 해소’를 강조했지만 앞으로 추진 가능성이 높은 정책들을 톺아보면 교육 불평등을 방치하고 나아가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적잖다. 문재인 정부가 전면 폐지를 예고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 부활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표집평가로 바꾼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도 이명박 정부 때의 일제고사(전수평가)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교육계에선 진단을 통한 학생 지원은 뒤로 밀리고 과열된 경쟁만 남긴 일제고사의 폐해가 부활해 교육 현장을 파행으로 끌고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윤 당선자가 겉으로는 ‘공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면서 임기 내내 진보 교육계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특권학교 비판’ 자사고·외고 ‘기사회생’

문재인 정부가 2025년을 목표로 해체하고자 했던 고교 서열화 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 당선자가 후보 시절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보낸 답변서에서 “고교평준화로 (학생들의 실력이) 하향평준화돼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교육 불신이 크다”며 “고교 교육과정의 다양화, 학생의 학교 선택권 확대, 평등성뿐만 아니라 수월성도 추구돼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역시 “학부모, 학생, 학교가 원하는 교육통로를 틀어막는다”며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당론으로 반대한 바 있다.

앞서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립 근거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이들 학교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기로 했다. 설립 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 서열을 만들고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조처였다. 외국어 인재를 기른다는 특수목적으로 지정된 외고에서 정작 어문계열 진학자는 30~40%에 불과하고, 국제고는 20% 미만에 그치는 점 등이 정부 결정을 뒷받침했다. 당시에도 시행 시점을 2025년으로 유예한 부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삭제된 시행령을 되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통령령인 탓에 윤석열 정부가 조항을 되살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조기 사교육을 유발하고 ‘특권학교’로 변질돼 교육 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근 발표된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각각 월 평균 53만5000원, 49만4000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반면 일반고 진학을 희망한 경우는 32만3000원에 그쳤다. 실제 고입 결과를 봐도 계층별 차이는 뚜렷하다. 서울교대 연구진이 실시한 ‘고교체제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연구’(2020) 보고서를 보면, 월 평균 소득이 700~1000만원인 가정의 학생은 3.5%가 특목고에 진학한 반면 100~300만원 가정의 학생은 1.4%에 그쳤다.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 경우 4.8%가 특목고에 진학했지만 고졸인 경우 1.1%에 불과했다.

지역 편중도 심하다. 전국 단위 자사고(10곳)의 2021학년도 입학생 출신 중학교를 분석해보니 용인 외대부고 91.9%, 민사고가 76.5%, 상산고 61.9% 순으로 서울·경기 ‘편중 현상’이 심했다. 경기 지역에서도 용인, 성남, 고양, 수원 등 사교육 과열지구 출신이 63.6%를 차지했고 서울에서도 강남구, 양천구, 송파구 등 사교육 과열지구와 국제중이 있는 강북구, 광진구 출신이 58.3%에 달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랬더니 학생 선발권을 쥐고 결국은 부잣집 자녀, 선행학습 많이 한 학생, 대입 실적을 낼 수 있는 학생들만 선발해 분리교육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진학이 부모의 소득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존치시킨다는 것은 결국 이 학교들이 ‘가진 자들의 학교’라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교 서열화 체제가 유지된 상태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도입되면 자사고·외고 쏠림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선택 과목에 대한 성취평가제(절대평가) 도입인데, 특목고 학생은 더 이상 내신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일반고의 내신 우위는 사라진다. 문재인 정부가 자사고 폐지와 고교학점제 도입 시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특목고를 존속시키면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일반고 학생들은 굉장히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여 누릴 수 있는 ‘동료효과’까지 감안하면 특목고 진학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셈”이라고 짚었다.

결국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소수의 특목고로 몰리고 대다수의 일반고는 위축돼 전체적인 공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학생·학부모들은 특목고에 가기 위해 더욱 사교육에 매진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뜩이나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사교육비 시장이 더욱 자극될 거라는 우려도 이 때문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경쟁교육 고통 해소를 위한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경쟁교육 고통 해소를 위한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줄세우기 아니라지만…“일제고사 망령 떠올라”

윤 당선자는 지난달 14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학업 성취도와 격차 파악을 위해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전반적인 학력 저하, 계층·지역별 학력 격차 해소가 명분이다. “평가와 줄 세우기가 아니”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교육계에서는 이명박 정부때의 ‘일제고사’ 망령이 떠오른다는 반응이다. 1986년 표집방식으로 시작된 학업성취도평가는 김영삼 정부가 전체 학생으로 변경했으나 김대중 정부가 표집방식으로 환원한 바 있다. 이를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다시 전수방식으로 바꿨다. 전수평가와 성적공개, 이와 연동한 예산 지원 등은 ‘경쟁을 위한 경쟁’을 유발했다. 일제고사를 대비한 모의고사가 성행하고, 일제고사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의 수업시수를 축소하는 파행도 잇따랐다. 2010년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는 일제고사를 앞두고 밤 9시까지 초등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시키고 일부 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에게 상품권을 지급하는 노골적인 ‘성적 줄세우기’가 벌어졌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조사된 결과가 학생들의 실제 ‘학력’을 반영한 것이냐다. 수치상으로 높아져 보일 순 있어도 일시적으로 지필고사 대비에 매달려 얻어낸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먼저 일제고사에서 초등학생을 제외시켰고 문재인 정부는 전수평가를 표집평가로 바꿔 일제고사를 폐지시켰다.

전문가들은 학기 초 대다수의 학교에서 기초학력 진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제고사 부활 명분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교육부 설명을 종합하면 학기 초 학습결손 진단을 위해 교사의 관찰·상담, 교사별 진단도구, 기초학력진단·보정시스템과 인공지능(AI) 학습진단시스템인 교육방송의 ‘단추’ 등이 활용되고 있다. 송경원 위원은 “진단한 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할 수 있겠지만 진단 자체를 안 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과거처럼 진단 결과가 개인별·학교별로 공개된다면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해 사교육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력 진단보다 교육 여건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7일 낸 성명서에서 “진단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이라며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 학생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도록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시 비율 추가 확대…“지역 학생 대입 통로 더 좁아질 것”

윤 당선자가 공약집에 적시한 ‘정시 비율 확대’도 향후 각종 논란을 예고하는 ‘뇌관’이다. 고교학점제와의 ‘엇박자’는 물론이고, 고교 교육 파행, 지역별 교육 불평등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은 “윤 당선자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문재인 정부의 문제인것처럼 세워놓고 (이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정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미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렸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60%까지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수시 전형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최저학력기준까지 감안하면 정시 비율이 현행보다 더 늘어나면 대입에서 수능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성천 교수는 “정시 40%인 현재도 학생들이 3월부터 코로나를 핑계로 가정학습을 신청하고 학원에서 수능 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동아리 등 정상적인 교내 비교과 활동이 상당히 약화되고 토론수업 등 교육과정 혁신 흐름도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시가 늘어날수록 사교육으로 수능 대비가 쉽잖은 농어촌 등 지역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 진학에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2019학년도 서울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서울 지역 고교 출신은 42.8%, 경기 지역 고교 출신은 27.2%로 70%에 달했고 나머지 7개 시와 8개 도를 합쳐도 30%에 불과했다. 2019년 전국 고교 졸업생 가운데 서울·경기 지역 비중은 서울 17%, 경기 25.4% 등 42.4%에 불과했다. 2022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출신 지역을 봐도 정시 합격생의 44.4%가 서울이었다. 수시는 31.4%로 정시에 견줘서는 13%포인트 낮았다. 정시 신입생 가운데 재수생·삼수생 비율은 58.6%에 달하는데 재수생 비율을 유추할 수 있는 대학 진학률이 지난해 서울 강남구(53.1%), 서초구(49.3%)에서 가장 낮았고 일반고(80.3%)에 견줘 전국 단위 자사고(66.9%)나 광역 자사고(60.5%)가 더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시=불공정, 정시=공정’이라는 공식은 일차원적인 접근임을 알 수 있다.

특목고 유지, 고교학점제, 정시 확대 등은 각 요소가 충돌할 여지가 있어 이를 조율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 아래 교육당국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요소에 견줘 고교학점제에 대한 윤 당선자의 입장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김성천 교수는 “고교학점제를 진보-보수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학생들의 진로·적성에 맞는 개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무턱대고 배척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짚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고교학점제과 정시 확대 등 현안에 대한 교육계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1.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윤 퇴진 집회’에 경찰 이례적 ‘완전진압복’…“과잉진압 준비” 비판 2.

‘윤 퇴진 집회’에 경찰 이례적 ‘완전진압복’…“과잉진압 준비” 비판

오늘까지 포근한 날씨 즐기세요…17일부터 기온 뚝, 강한 바람 3.

오늘까지 포근한 날씨 즐기세요…17일부터 기온 뚝, 강한 바람

이재명 선고 나오자 지지자 기절하기도…구급대도 출동 4.

이재명 선고 나오자 지지자 기절하기도…구급대도 출동

찬성 272명 vs 반대 이준석…‘딥페이크 위장수사 확대’ 국회 표결 5.

찬성 272명 vs 반대 이준석…‘딥페이크 위장수사 확대’ 국회 표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