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유치원 학부모들과 ‘만 5살 입학연령 하향’ 방안을 주제로 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출근도 미루고 이 자리에 온 것은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정책 제안 때문이다. 5살 아이는 유치원 텃밭에서 식물 하나 심을 때도 의견을 조율하고 투표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오늘) 이 자리가 부끄럽다. 졸속 행정을 철회하고 혼란에 대해 사과해 달라.” (만 4살 학부모 권영은씨)
‘만 5살 조기 입학’ 정책에 대한 학부모 등의 거센 반발로 정부가 ‘국민이 원하지 않을 경우 폐기도 가능하다’며 한 발 물러선 가운데,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이어 장상윤 교육부 차관까지 부랴부랴 뒤늦게 학부모 의견 수렴에 나섰다. 학부모들은 정부의 학제개편 추진안이 유아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3일 장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치원 학부모 9명을 만나 ‘학제 개편 관련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을 가졌다. 장 차관은 이 자리에서 입학 연령 하향은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검토된 것임을 거듭 강조한 뒤 “의견 수렴 과정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이 들어 지금은 아니다는 (정책 철회) 판단이 나오면 그것조차 받아들이겠다”고 몸을 낮췄다.
학부모들은 정부 정책이 유아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에서 만 3살·8살 두 아이를 키운다는 김성실씨는 “유치원 아이들은 책상에 15분 이상 앉아있기 힘들어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40분 이상 앉아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일찍 보내기 보단 연령에 맞는 양질을 교육을 하는 것이 훌륭한 인재양성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 2살·만 4살 아이를 둔 김정숙씨 역시 “놀이중심의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만들어서 시행한지 3년도 안 됐다. 누리과정에 투입한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까 걱정이다”며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에 있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40분 단위의 학습을 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기 사교육이 더욱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성실씨는 “저희 아이도 8살이 되기 전에 한글을 다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 한글이 안 되면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며 “입학 연령을 낮추면 조기교육이나 사교육에 더 일찍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3명의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학부모는 “한글을 학교에서 가르쳐주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수학 등 다른 과목은 읽고 이해를 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조기 입학하게 되면) 만 4살에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초등학교 아이들의 돌봄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질타도 이어졌다. 만 3살·8살·9살 아이를 키우는 서울 지역의 또 다른 학부모는 “정부는 돌봄 시간을 저녁 8시까지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지금도 오후 3시만 넘으면 아이들은 학원으로 빠진다. 그리고 저녁 6~7시까지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있다”며 “돌봄 선생님이 싫어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초등 돌봄 등 유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차관은 “초등 전일제나 방과후 돌봄 등을 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사교육비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나 여러 재원들이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아 발달단계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에는 “초등 저학년은 수업 중 보조교사를 반드시 배치해 학생을 살필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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