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2022년 2학기 방역·학사 운영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만 5살 초등학교 입학’에 이어, 이번엔 ‘외국어고등학교 폐지’도 철회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오락가락 졸속 행정으로 교육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핵심적인 교육정책 두 가지를 충분한 사전 검토도 없이 발표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교육부는 외국어고 학부모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연 지난 5일 “(외고 폐지는) 향후 정책연구, 토론회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사회적 논의를 충실히 거쳐 연말까지 고교체제 개편 방안(시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외국어 전문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어고의 경우, 외국어 교과특성화학교 등 미래사회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발전적인 방향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어고 폐지는 교과특성화학교 전환 등 여러 검토 방안 중 하나일 뿐,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업무보고 전 사전 브리핑에서 “외국어고는 존치하기보다 폐지 또는 (일반고로) 전환해 외국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교과 과정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성부 교육부 당시 대변인 역시 지난 1일 정례브리핑에서 “외고의 경우 미래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폐지 또는 외국어교과 특성화학교 등으로 전환을 검토한다”며 외고 폐지 방침을 재확인한 바 있다.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가 5일 국회 앞에서 외고 폐지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2025년 3월부터 자사고·외국어·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기로 했으나, 고교 다양화를 내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들 학교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해왔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에 ‘다양한 학교유형 고교체제 개편 검토'를 언급하면서, 이들 학교를 유지할 거라는 전망에 무게가 쏠려있었다. 박 부총리는 ‘만 5살 초등학교 입학’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는 물론 ‘예고’에도 없던 외고 폐지 방침을 발표한 셈이다.
사실 외고는 수년간 지속돼 온 우수 학생 이과 쏠림 현상과 저조해지는 대입 실적으로 인해 줄곧 하락세를 보여왔다. 7일 종로학원 자료를 보면, 서울에 있는 6개 외고와 1개 국제고의 2018학년도 이후 5개년도 일반전형 경쟁률은 1.63대 1→1.88대 1→1.69대 1→1.3대 1→1.3대 1로 낮아지는 추세였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2025년 무렵이면 교육 시장의 논리에 의해 외고 정도는 자연적으로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부총리의 갑작스런 외고 폐지 발표가 외고와 학부모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오히려 외고 폐지 추진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고 학부모 220여명은 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년지대계인 교육 정책을 졸속으로 발표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도 지난 1일 입장문을 내어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에서 헌법상 국민에게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와 자유, 교육의 다양성, 학생의 교육선택권 보장 등을 강조했음에도 토론이나 공청회 한번없이 일방적으로 교육 정책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외고와 자사고 존폐 등 교육 현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대책없이 발표했다 번복하는 졸속 교육행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7일 “구체적인 대안이나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에 대해 아무런 보완책도 없이 한줄 문장을 툭 던져 혼란을 초래했다”며 “만 5살 입학 문제가 일단락되고 나면, 외고 폐지뿐 아니라 자사고 존치 문제도 반대 운동 등 큰 사회적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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