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교육개혁 핵심정책으로 정당 공천이 금지된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신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방식의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도지사와 교육감 협력을 강화해 행정 비효율을 줄이고, 직선제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학교 현장 문제와 연관이 크지 않은 선거제도 개편을 업무보고에 넣은 건 이례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러닝메이트제 추진에 나선 것을 두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교육부가 되레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업무계획을 대통령실에 보고했다. 교육부는 올해를 ‘교육개혁의 원년’으로 꼽고 학생 및 가정맞춤, 지역맞춤, 산업·사회맞춤 등 4대 개혁 분야와 10대 핵심정책을 제시했다. 유아교육과 어린이집 보육 통합(유보통합), 늘봄학교(초등전일제) 도입, 대학규제 완화 등과 함께 ‘러닝메이트법’(지방교육자치법·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입법 추진이 핵심정책에 포함됐다. 이 부총리는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러닝메이트제 추진에 대해 “앞으로 교육부의 고등(대학)교육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많이 이양할 텐데, 고등교육과 (교육감이 담당하는) 유·초등교육이 연계되기 때문에 시·도지사와 교육감 협력이 중요해진다”며 행정 ‘비효율성’을 줄이고 특히 ‘교육의 정치화’, ‘깜깜이 선거’ 등 직선제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는 갑작스러운 교육감 직선제 폐지 추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교육감 후보 정보가 부족하다거나 선거비용 부담 등 부작용을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 아예 제도를 없애자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부는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우려가 있다며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반대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지난 정부에선 직선제 (유지에) 찬성하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교육부가 (폐지 쪽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러닝메이트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해 7월 김선교·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러닝메이트제 도입안을 담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 모두 각 정당 공천을 받은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러한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유권자는 시·도지사 선거만 참여하고, 당선된 시·도지사가 선거 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인물이 자동으로 교육감이 된다. 사실상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셈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5일 <한겨레>에 “러닝메이트제를 실시하면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호흡을 맞춰 교육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입법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러닝메이트제에 반대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향후 관련 법안이 제출돼도) 민주당이 국회 교육위 다수인 한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 교육위 위원 16명 중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의원은 10명으로 과반이 넘는다. 강 의원은 “2010년 이후 진보교육감이 약진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서) 이를 만회하려는 생각인 듯하다”며 “(직선제 폐지는) 정파적 입장을 떠나 교육 자체를 후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러닝메이트제가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적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현행 직선제에서는 교육감 후보에 대한 정당 공천이 금지돼 있다. 김성천 교수는 “러닝메이트제 도입 땐 교육감이 시·도지사 눈치를 보거나 정당에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소신 있게 교육 정책을 펼치는 구조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이 정당정치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는 과거 무상급식 도입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은 반대했지만 교육감이 소신껏 의견을 내 관철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주호 부총리가 언급하듯 시·도지사와 교육감 협력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더라도 교육적으로 옳은 정책을 펼쳐온 흐름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1950년대부터 1991년까지 대통령이 임명했던 시·도 교육감은 간접선거(1992~2006년)를 거쳐 2007년부터 주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등 자치제도 발달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까닭에 2018년 3월 박춘란 당시 전 교육부 차관은 국회에 나와 “교육감 선임이 주민직선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면에서 정당 기반인 시·도지사에게 교육감 임명권을 부여하는 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러닝메이트제 반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만19살 이상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교육감 직선제 찬성 비율이 42.6%, 반대가 27.8%로 나타났다. 학부모로 좁히면 초중고 학부모의 50.9%가 직선제에 찬성했다. 지난해 7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가 1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현행 직선제 유지 의견이 36.6%로 가장 높았고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방안은 3.63%로 선호도가 가장 낮았다.
러닝메이트제가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행 교육감 직선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후보자 및 정책 정보가 부족하고 유권자 관심도 낮아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며, 선거비용 부담이 커 출마에 상당한 진입장벽도 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이런 부작용은 얼마든지 제도를 개선해 극복할 수 있고, 직선제 폐지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계에서는 ‘완전 선거 공영제’를 대안으로 꼽기도 한다. 선거운동 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고, 티브이(TV) 토론과 유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맡기는 방식이다.
이유진 장현은 송채경화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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