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당시 교육당국은 취업률로 직업계고를 평가하고 예산을 배정했다. 이에 직업계고는 전공과 무관하게 현장실습을 내보내곤 했다. 영화 <다음 소희> 속에서 소희의 담임교사 역시 “거기서 우리 학교 애들 안 받는다고 하면 어떡할래?”라며 힘들어하던 소희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내려 했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들이 ‘저임금 단순 노동’에 내몰리는 현실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06년 이후 16년만에 직업계고 현장실습 실태보고서를 내놨다. 통념과 달리 현장실습은 노동시장 진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고, 실습 업체 관계자들은 실습생을 인력 채용 과정에서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소모품’으로 대한다는 분석이다.
20일 인권위가 전북노동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해 12월 펴낸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 마련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사회적 통념과 달리 현장실습은 학생의 진로경험 질을 높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교육고용패널조사Ⅱ를 바탕으로 2017년 현장실습에 참여한 663명과 참여하지 않은 1198명 가운데 고교 졸업 1년 뒤 기업에 재직 중인 이들을 비교해본 결과 실습 참여 집단의 비정규직 비율(25.7%)과 평균 연봉(2433만2천원)은 비참여 집단(31.6%, 2577만원)과 견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반면 70명 미만 규모의 기업에서 일하는 비율은 실습 참여 학생(62.6%)이 비참여 학생(51.2%)보다 더 많았다. 면접에 응한 한 업체의 기업현장교사(현장실습생의 ‘멘토’ 역할을 하며 직무교육·안전관리 전담) ㄱ씨는 “요즘은 법이 강화돼 사람(일반 노동자)을 오너가 마음대로 사직 처리할 수가 없다”며 “현장실습(생)은 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인력을 ‘부담 없이’ 메울 수 있는 손쉬운 길이 현장실습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최근 4년 동안 반도체 공장에서의 현장실습이 4배 넘게 급증한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이 함께 분석한 결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한국PCB&반도체패키징산업협회에 소속된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참여한 학생은 2018년 175명에서 2019년 359명→2020년 586명→2021년 786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2021년 기준 반도체 관련 업체 63곳이 현장실습에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현장실습생을 가장 많이 받은 ㄴ사·ㄷ사 직원들의 최근 1년간 퇴사율은 32%, 36%로 전체 기업 평균 퇴사율(13.8%)에 견줘 2.5배 이상 높았다. 보고서는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인력 수급의 주요 통로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반올림이 반도체협회 소속 기업 304곳의 산업재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32곳에서 1581건의 산재 처리가 있었고 직업성 암과 희귀 질환 질병이 80건에 달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교육청의 사전점검은 기업규모·급여수준 등을 중심으로 이뤄질 뿐 실습 프로그램의 적절성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실제 ㄴ사의 사전점검 결과표를 보면 실습 ‘적합’ 판정을 내리며 “상시근로자수 3000명 이상인 중견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으로 많은 채용 니즈(수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오랫동안 일한 노동자들조차 작업장의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모르는데 이들에게 배우면서 일을 하는 현장실습생이 이를 인지하고 자신의 건강권을 지킬 기회를 얻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2017년 홍수연양과 이민호군의 잇따른 사망으로 교육부는 기존 조기취업 형태의 근로 중심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2021년 홍정운군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 특히 보고서는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도입하고도 교육당국은 취업률이 낮아지면 어김없이 규제를 완화해 노동력 공급을 장려했다”며 “특히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는 실습생 ‘보호’를 이유로 오히려 실습생의 노동자성을 부정해 노동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책임자인 강문식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한겨레>에 “앞으로도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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