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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들도 ‘치료 거부’로 성장을 증명했다

등록 2023-03-20 16:43수정 2023-03-21 02:33

연재 I 장애 & 비장애 함께 살기
Quar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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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 그게 말이 쉽지, 공부 안 하고 핸드폰만 보는 딸에게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일쑤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참을 인(忍)자를 그리며 사춘기 자식을 먼저 키운 선배들의 조언을 따르려 애쓴다.

“저것은 내 딸이 아니여. 모르는 아이여” 후하~ 호흡을 하며 주문을 왼다.

딸에게 엄마 주도 하의 공부를 시키지 않는 이유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거라~”와 같은 이상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딸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세속적인 이유에서다.

친정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특훈을 받았다. 그 시작은 전과(지금의 참고서)를 매일 두 페이지씩 암기하는 것. 어떤 날도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했던 우리반 반장이 함께 놀자며 집에 찾아왔던 날도. ‘전과 두 장 외워 엄마에게 테스트받기’라는 과제가 끝나지 않아 그를 돌려 보냈다.

내가 아직 어렸던 시절, 그러니까 엄마 말을 잘 듣는 나이까진 이런 교육방식이 통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늘 전교 1등이었다. 그러다 점점 머리가 커지고 사춘기가 왔다. 엄마는 더 이상 중학생이 된 내 공부를 봐줄 수 없었고 내 안엔 그동안 억눌린 스트레스와 반항심이 가득. 사춘기의 난, 복수를 감행했다. 보란 듯 철저하게 공부에서 손을 놔버린 것이다. 물론 고3 때 정신차려 간신히 대학은 갔지만 이 경험은 내가 딸을 교육하는 데 아주 큰 교훈이 됐다.

문제는 아들이다. 아니, 아들을 대하는 내 태도다. 딸과 쌍둥이인 아들은 자폐성 장애인이다. 딸에겐 억지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서 아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치료 스케줄을 소화하도록 했다. 딸과는 정반대의 양육 태도, 교육 태도를 고집한 것이다.

아들은 힘들어했지만 어쨌든 내가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치료실에 가 잠을 잘지언정 모든 수업을 빠지지 않고 소화했다. 그런데 엄마 말 잘 듣던 아들도 점점 머리가 커지고 사춘기가 오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웬걸. 내가 엄마의 ‘억압’에 대한 복수 방법으로 공부에서 손을 놓는 것을 택했듯, 아들도 모든 치료 수업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복수와 자신의 성장을 당당히 증명해냈다.

그때야 아차 싶었던 나는 단지 장애라는 이유로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했던 것을 자책했다. 아들은 장애인이기에 앞서 사람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딸과 똑같은, 그냥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는데…. 부끄럽고 미안했다. 호된 값을 치른 후 지금 아들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만한 수준의 치료 수업을 받고 있다. 아들 마음도 편해졌고 내 마음도 한결 편하다.

프로이트가 말했다. 모든 억압당한 것들은 나중에 더 추악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고. 나는 힘겹게 몸으로 체득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을 프로이트는 이미 알고 있었다니. 핸드폰을 보는 딸에게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아들 치료에 욕심이 나려고 할 때마다, 기억하고 명심할 일이다. 자식은 부모의 강제성(억압)으론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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