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영 동아방송예술대 엔터테인먼트경영과 교수가 지난 13일 오후 디자인센터 315호에서 전공심화 과정으로 ‘문화예술마케팅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상마케팅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 제공
AI 하이테크 시대를 맞아 전문대학이 변화하고 있다. 커리큘럼에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로봇, 3D 프린팅, 블록체인 등을 포함시키고, 메타버스를 접목한 강의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전공심화 과정을 개설해 첨단산업 분야 전문지식 교육을 통한 학사학위 취득은 물론 취업 기회를 넓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창의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들어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결합해 창의적인 제작활동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문대학이 기술과 직업 실무 중심 교육을 통해 중견 직업인 배출을 목표로 설립된 만큼, 이 시대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른 ‘뉴칼라’ 양성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뉴칼라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와 구분되는 IT 보안,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프로그램 개발자 등 새로운 직업 계층을 의미한다. AI를 통한 창조-생산-거래가 가능한 융·복합형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문대학의 생생한 현장을 둘러봤다.
지난 13일 동아방송예술대 오후 전공심화 과정으로 ‘문화예술마케팅학과’를 선택한 동아방송예술대 학생들이 강보영 엔터테인먼트경영과 교수의 영상마케팅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듣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 제공
“AI, 챗GPT, 메타버스 어렵지 않아요”
“2년 전까지만 해도 메타버스가 AI 하이테크 시대를 주도할 키워드로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지금 그 열기가 조금 시들해진 것 같죠. 왜 그럴까요?”
지난 13일 오후 디자인센터 315호에서 진행된 강보영 동아방송예술대 엔터테인먼트경영과 교수가 영상마케팅커뮤니케이션 수업 시작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이 강의는 엔터테인먼트경영과, 패션스타일리스트과, 광고제작과 전문학사 3년 과정을 마친 학생 중에서 빅데이터·AI·메타버스 같은 첨단지식 습득을 위해 2022년 개설된 전공심화 과정 ‘문화예술마케팅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듣는다. 한 학생이 답했다. “여러 한계에 봉착해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요. 콘텐츠와 HMD(머리 착용 디스플레이) 등 XR기기 등 기술개발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주춤한 측면이 있어요. 3D 콘텐츠 제작에 상당한 비용(노동력)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AI가 3D 콘텐츠를 만들면 제작비가 확실히 줄겠죠? 여러분이 AI를 활용해 3D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면 메타버스 산업 발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AI와 공연·콘서트·이벤트 기획, 홍보·마케팅, 연예콘텐츠 제작과의 결합은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강 교수는 “공연, 패션, 게임, 콘텐츠, 심지어 메타버스까지 인간이 누리는 즐거움의 영역은 모두 엔터테인먼트에 속한다”며 “빅데이터, AI, 챗GPT 등을 활용해 각종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융합한 콘텐츠가 주류인 시대인 만큼 학생들도 해당 지식에 기반을 둔 기획안을 만들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접목해 ‘패션-게임-블록체인’ ‘공연-IoT-가상현실-블록체인’ 등을 융합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어야 명실상부한 엔터테인먼트 융·복합 콘텐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의 이런 소신은 부임 전 패션 분야 메타버스 스타트업 대표로 재직했던 경험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그의 수업에서는 AI를 접목한 콘텐츠 기획안 작성은 물론 3D 광고, 가상인간, 영상숏폼 만들기 등의 실습이 기업 현장과 똑같이 진행된다. 정시예(23) 학생은 “수업에서 배운 AI, 챗GPT 등을 활용해 공연과 콘서트 행사를 기획해 무대에 적용하고 있는데, 업계뿐 아니라 관객들의 평이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강 교수의 수업을 계기로 방송, 영화, 음악, 광고·홍보, 마케팅 등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융합콘텐츠의 필요성과 발전방향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식견을 갖게 됐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더불어 사회진출에 대한 자신감, 취업 성공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양다혜(24) 학생은 “메타버스가 마케팅과 광고와 밀접하고, 문화마케팅으로 무한확장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며 “광고를 넘어 유능한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정은(23) 학생은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어 패션스타일리스트과에 진학했는데, 전공심화 과정을 하면서 가상현실과 패션의 접목 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며 “3D패션, 가상패션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보영 동아방송예술대 엔터테인먼트경영과 교수가 지난 13일 오후 디자인센터 315호에서 전공심화 과정으로 ‘문화예술마케팅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상마케팅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기획자가 기발한 상상력과 융·복합 문화 콘텐츠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AI와 챗GPT 기술을 갖고 있다면 콘텐츠 생산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알게 됐고, 더 나아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더 큰 꿈을 갖게 된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김은혜(23) 학생은 “제주도 출신이라 공연 문화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문화 소외계층의 문화 향유를 늘릴 방안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싶어졌다”며 “가상현실 등을 활용해 지방이나 소도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친구들은 AI와 메타버스 등 하이테크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소윤(23) 학생은 “호기심에 신청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유익하다”며 “학사학위를 딴 뒤 대학원에 진학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광고제작과 출신의 이은준(26) 학생은 “광고제작에 3D, 메타버스 접목 등 활용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 유익했다”며 “대학원에서 좀더 공부한 다음에 취업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방송예술대는 지난해 SKT 이프렌드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메타버스 캠퍼스를 구축했다. 최용혁 총장은 “디마(DIMA)종합촬영소에 메타버스 전용 스튜디오와 프로그램 제작실을 구비해 실제 수업에 활용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자유롭게 3D 콘텐츠를 기획·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며 “학생들이 디마TV채널에서 메타버스 콘텐츠를 라이브로 송출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이며, 내년부터는 여러 기업들과 함께 첨단 3D VFX 관련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강민(24) 학생이 팀원들과 함께 동서울대 창의 페이커스페이스에서 한이음 ICT멘토링 공모전에 출품할 실내 자율주행 택배 서비스 차량을 만들고 있다. 김미영 기자
‘상상을 현실로’…창의 메이커스페이스
지난 14일 찾아간 동서울대는 학생 중심의 테마별 다양한 창의·융합적 교육활동 환경을 구축해 다른 전문대와의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019년 개관한 300평 규모의 창의 메이커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3D 프린팅&모델링, Craft(가죽·목공예), IoT개발(사물인터넷), AI/Bigdata(인공지능), Creative(1인 방송) 등의 테마존으로 구성된 이곳에서는 다양한 비교과 교육과 활동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AI 하이테크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떠올랐다.
이날도 창의 메이커스페이스는 3D 프린팅으로 자신의 작품을 출력하는 학생들, 나무로 도마와 간판을 만들거나 가죽으로 가방과 지갑을 디자인해 제작하는 학생들, 인공지능을 결합한 제품을 제작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이강민(24) 학생(전자공학부)은 “한이음 ICT멘토링 공모전에 출품할 실내 자율주행 택배 서비스 차량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 학교에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 코딩교육과 아울러 드론, 스마트팜 모형 등 사물인터넷의 원리로 작동되는 IoT 디바이스 제작 및 체험을 할 수 있는 창작, 개발 공간이 있다는 점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창의 메이커스페이스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올해도 동서울대는 메타버스게임디자인과 신설과 맞물려 2016년 개관한 VR교육센터를 확장·이전하고 메타버스교육센터로 개명한 뒤 게임 크리에이트 스튜디오를 오픈하는 등 발빠른 대응으로 주목받았다. 김준호 전기공학과 교수(메타버스교육센터 책임교수)는 “비상탈출(항공서비스학과), 사격훈련(경호스포츠과) 등의 실제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다른 대학 학생들은 물론 고등학생들이 체험하러 견학오기도 하는데, 다들 부러워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을 연구해온 1세대 메타버스 전문가다. 2021년부터 세계 최초 메타버스 공유대학 플랫폼 ‘메타버시티’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기술고문을 맡고 있는데, ‘메타버스 강의’에 꽂힌 이유는 이른바 일반대학 졸업생보다 뛰어난 지식과 실무 역량을 갖춘 제자들을 키워내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그는 즐겁고 재밌게 배울 때 학생들의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학습 효과도 극대화 돼 머릿속에 더 오래 확실히 남는다고 믿는다.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14일 컴퓨터실 8201호에서 전기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기캐드 수업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14일 오후 컴퓨터실 8201호에서 진행된 김 교수의 전기캐드 수업 역시 메타버스 공간에서 진행됐다. 학생들이 강의실 컴퓨터로 ‘메타버시티’에 접속, 가상공간 속 동서울대 전기공학과 ‘전기도면종합설계’ 강의실에 자신의 캐릭터를 입장시켜 수업을 듣는 방식이었다. 김 교수는 “전기회로 설계, 프로그래밍처럼 실습을 동반하는 수업이 아니면 가상공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메타버스 내 수업은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좋은 것은 물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수업과 다른 점은 김 교수 캐릭터인 ‘미리내맨’이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동안 학생들이 춤을 추거나, 교탁에 올라가는 등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웃음꽃이 만발했다.
이성현(23) 학생은 “메타버스 강의는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에서는 교수님,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뛰어놀 수 있어서 교수님과의 관계가 한층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서명국(24) 학생은 “수업 중 실시간 채팅방에서 질문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든 강의 자료와 수업 동영상을 열람하고 내려받을 수 있어 수업 내용을 환벽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14일 컴퓨터실 8201호에서 전기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기캐드 수업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14일 컴퓨터실 8201호에서 전기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기캐드 수업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김 교수는 “메타버스 기반의 수업을 접한 학생들은 전공 교과뿐 아니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VR·AR, 인공지능, 로봇, 증강현실, 3D 프린팅, 블록체인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일상에서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로 최적화돼 있다”며 “동서울대뿐 아니라 많은 전문대학들이 이런 추세에 부응해 적극적으로 커리큘럼에 혁신을 시도하고 있으니 기업들이 주목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메타버스 공유대학 플랫폼 ‘메타버시티’에는 60여 개 전문대학이 참여해 25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강의실과 캠퍼스로 활용하고 있다. 2025년까지 메타버시티 강의실 안에서 HMD 기반의 가상실습 구축, 참여 대학들의 ‘디지털 혁신대학’으로의 전환이 목표다. 전문대학의 변화와 혁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