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교실분리한 문제학생 누가 맡나…예산·인력 없는 ‘생활지도 고시’

등록 2023-10-04 05:00수정 2023-10-04 09:07

생활지도 고시 시행 한달째…실효성 체감 못 해
문제학생 지도 책임 두고 구성원 간 현장 갈등만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년차 교사를 추모하는 집회가 7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년차 교사를 추모하는 집회가 7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역의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 ㄱ씨는 지난달 중순께 학교장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았다. 지난달 1일 시행된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에 따라 교사는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 밖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됐는데, 앞으로 분리된 학생을 상담실에서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ㄱ씨는 “상담과 훈육은 같은 게 아니다. 분리된 학생이 상담실에 오게 되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상담실이 아이들에게는 ‘혼나는 장소’로 인식될 것”이라고 교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교장 역시 “대안이 마땅치 않다. 그럼 이 학생을 어디에 맡겨야 하냐”며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결국 ㄱ씨는 교장의 ‘절충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 분리 공간’으로 상담실뿐 아니라 교무실, 빈 교실 등을 돌아가며 활용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ㄱ씨는 걱정이 앞선다. 혼자 근무하는 공간에 교실에서 쫓겨나듯 나온 학생이 흥분한 상태로 올 수 있는 데다, 장기적으로는 비교과 교사인 자신이 결국 이 일을 전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ㄱ씨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육부에서 학생 분리가 가능하다는 근거만 만들어놓고 분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할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다 보니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각자 고유 업무가 있는데 누가 떠맡으려고 하겠느냐”고 짚었다.

지난달 1일 학생 생활지도 고시가 일선 학교에 적용된 뒤, 학교 현장에선 ㄱ씨와 같은 고민이 커지고 있다. 민감한 조처인 만큼 교장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학교 관리자와 교사 사이 갈등이 증폭하는가 하면, 수업시수가 적은 비교과 교사에게 이 일이 떠맡겨지면서 교과 교사와 비교과 교사 간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개별 학교들이 학칙 개정을 통해 생활지도 고시를 적용하라는 것은 학교가 그 부담을 떠안으라는 의미”라며 “분리된 학생들을 맡는 건 (교사들이 돌아가며 책임지는) 순번제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교과 교사들의 수업시수 등 영향으로 비교과 교사에게 이 업무가 돌아갈 것”이라며 “실제 지금도 보건·상담·사서교사 등이 학교 관리자로부터 해당 업무를 요청받고 있다”고 했다.

시행 한달을 맞는 학생 생활지도 고시는 다른 학생의 교육활동을 방해한 학생들을 교사가 강제 분리할 권한을 주는 대신, 구체적으로 이 학생을 분리시킬 장소나 시간, 학습지원 방법 등은 해당 학교들이 학칙을 통해 개별적으로 정하도록(12조 6항)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수업 중 소지할 수 있는 물품 종류(9항)도 개별 학교가 판단하도록 했다. 학교는 올해 말까지 생활지도 고시에 따라 학칙을 정비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교가 학칙을 고칠 때까지 특례 운영기간을 둔 상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고시의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다.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최민재 전국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은 “학생 분리나 휴대폰 등 소지품 분리 등은 이미 학칙으로 두고 있는 학교가 많아 크게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학생이 법령과 학칙에 위반되는 문제행동을 하거나 자신 또는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등의 상황에서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있도록 한 고시 내용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부장 ㄴ씨는 “위급한 사안이라도 물리적 제지에 나섰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사례가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시와 학칙을 믿고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있는 교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단체들은 고시를 학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고시에도, 고시 해설서에도 인력과 재정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학교 현장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교육 당국이 핵심 인력과 예산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민재 위원장도 “안전한 학생 분리를 위해서는 별도의 공간과 인력이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서울 도심서 터져나온 ‘퇴진’ 구호…“윤정부 해도 해도 너무한다” 1.

서울 도심서 터져나온 ‘퇴진’ 구호…“윤정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윤 정부 헛발질에 불안”…청년·대학생 ‘대통령 퇴진’ 촉구 2.

“윤 정부 헛발질에 불안”…청년·대학생 ‘대통령 퇴진’ 촉구

‘가을 태풍’ 끄라톤 북상중…다음주 한반도 영향 가능성 3.

‘가을 태풍’ 끄라톤 북상중…다음주 한반도 영향 가능성

딥페이크 처벌법 통과…서지현 “또 자축하는 국회, 정신 차려” 4.

딥페이크 처벌법 통과…서지현 “또 자축하는 국회, 정신 차려”

윤 정부, 체코에 ‘원전 대출’ 카드 내밀었지만… 5.

윤 정부, 체코에 ‘원전 대출’ 카드 내밀었지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