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 광장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차이나타운(중국인 거리) 패루’. 관광안내문에는 패루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쉽다. 나윤정 객원기자
인천 중구에 자리한 개항장은 1883년 인천항(옛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일본, 청나라 등 여러 국가의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곳으로 근대 문물의 길목이자 외교·무역·상업의 각축장이었다. 이곳 일대에 들어선 개항장 문화지구는 개항 이후 140여 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천 중구에 자리한 개항장 문화지구는 청소년들의 역사·문화 교육 명소로도 손꼽힌다. 나윤정 객원기자
이곳엔 개항시대 한국 최초 근대 건축물과 조형물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어 개항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짜장면박물관, 대불호텔전시관, 생활사전시관, 개항박물관,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등 다양한 박물관과 전시관을 만날 수 있어 청소년들의 역사·문화 교육 명소로도 손꼽힌다. 지난 10월25일 개항장 문화지구 내 박물관, 전시관 등을 찾아 이용 설명문이나 안내문에 어렵고 낯선 표현이 있는지 살펴봤다.
인천 중구 북성동에 있는 짜장면박물관. 원래 ‘자장면’이 표준어였으나 짜장면이 널리 쓰이면서 국립국어원은 2011년 짜장면과 자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다.
먼저 개항장 문화지구 입구 인천역 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개항장 역사교육 스탬프 투어(도장 찍기 여행)’ 안내문을 챙겼다. 안내문을 펼쳐보니 역사교육 여행의 첫 행선지로 인천역 광장에 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차이나타운(중국인 거리) 패루’를 소개했다.
다만 패루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패루(牌樓)는 예전 중국에서 큰 거리에 길을 가로질러 세우던 시설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차이나타운 입구를 알리는 공통적인 상징물이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경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다. 초등학생 손자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이승우씨는 “한자를 꽤 아는 세대는 안내문에 쓰인 패루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만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만큼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안내문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패루를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서면 사연 많은 우리의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그리고 그 시작에 짜장면이 있다. 북성동 행정복지센터 쪽으로 접어드니 ‘짜장면박물관’이 눈에 띄었다. 이름 그대로 짜장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박물관은 총 6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짜장면의 역사는 인천항이 개항한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산둥 지방 출신의 중국인(화교)들이 인천에 자리를 잡으며 요기를 달래기 위해 개발한 국수다. ‘자장면’은 산둥 지방의 서민 국수인 ‘자장미엔’(炸醬麵)에서 온 말로, 고기와 야채를 중국 된장인 ‘자장’에 볶은 것에 면을 넣어서 비벼 먹는 중국 요리를 가리킨다.
이들을 상대로 손수레 노점상(거리 가게)이 하나둘 생기면서 짜장면의 보급도 시작됐고 1950년대 이후 지금의 짜장면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 표준어였으나 짜장면이 널리 쓰이면서 국립국어원은 2011년 짜장면과 자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다. 짜장면이 중국에서 온 말이라면 ‘짬뽕’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인천 역사자료관이 출간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에 따르면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화교들은 중국식 우동에 오징어, 새우, 굴 등 해산물을 넣어 ‘찬폰’(ちゃんぽん)을 만들었다. 이들이 인천항에 모이면서 매운맛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가 추가된 한국식 짬뽕이 탄생했다. 지금은 외래어라는 인식이 사라져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국립국어원은 짬뽕을 ‘초마면’으로 순화해 쓸 것을 권한다.
1888년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전시관 한편에는 당시 커피를 ‘양탕국’으로 부른 배경설명이 잘 소개되어 있다. 나윤정 객원기자
짜장면박물관을 뒤로 하고 걷다 보면 대불호텔전시관, 생활사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대불호텔은 188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당시 ‘양탕국’으로 불린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공된 곳으로 유명하다. 대불호텔전시관 한편에선 양탕국에 대해 ‘서양의 문화를 대표하는 음료인 커피는 가배, 가배차, 가비차, 양탕국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찍부터 우리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고 친절하게 소개했다.
생활사전시관에선 1960~70년대 서민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다. 당시 주거시설에 대한 설명문 중에서 ‘적산가옥’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전시관 쪽은 적산가옥에 대해 구체적 설명 없이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들이 1960년대, 1970년대에는 그대로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생활사전시관에 있는 ‘적산가옥’ 설명문에는 낯선 용어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나윤정 객원기자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적산’은 ‘적의 재산’, 혹은 ‘적들이 만든’이라는 뜻으로, 적산가옥은 말 그대로 ‘적들이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근대 및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을 뜻한다. 이렇게 낯선 용어를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순화어가 없다고 굳이 어려운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어려운 말 뒤에 각주를 붙여 설명해주거나 더 많은 정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보무늬(QR코드)를 활용하는 방안도 효과적일 수 있겠다.
글·사진 나윤정 객원기자
감수: 서은아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