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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험 잘 보면 다 해줄게’…‘관리자 부모’ 효과는 없다

등록 2023-11-27 16:43수정 2023-11-28 02:34

연재 ㅣ 장애 & 비장애 함께 살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류승연 |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방에서 아들(자폐성 장애인)과 놀고 있는데 남편이 공부 중인 비장애인 딸을 거실로 불렀다. 한참을 둘이 얘기 나누길래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그러면 아빠가 이번에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튀어 나갔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기말고사를 앞둔 딸에게 남편이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딸이 주요 과목에서 목표 점수를 달성하면 남편이 ‘램프의 요정’으로 변신해 사달라는 걸 다 사준다고 했단다.

한 발 늦었다. 내가 반대하면 부모로서의 남편 권위를 딸 앞에서 부정하게 되는 셈. 울며 겨자 먹기로 개입해 목표 점수와 보상을 현실적인 것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아직 중학교 2학년이다. 물질적 보상을 통한 동기부여는 정말 필요한 딱 한 번의 어느 날(고등학생 때)을 위해 아껴둘 요량이었는데 마음이 급했던 남편이 너무 빨리 카드를 내밀어 버렸다.

나는 외적 동기부여가 주는 효과가 얼마나 얄팍하며 지속성이 없는지 잘 알고 있다. 학창 시절 수없이 경험해 봤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친정 엄마는 야식 먹는 딸의 행동수정을 위해 내가 살을 빼면 100만원을 용돈으로 주겠다 공언했다. 당연히 나는 1㎏도 빼지 못했다. ‘친정 엄마’나 ‘100만원’은 내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살을 빼고자 했던 어떤 시기엔 알아서 야식을 끊고 식단을 조절했다. 남편이 만류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다. 강력한 내적 동기가 행동을 이끈 덕이다.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을 쌍둥이로 키우면서 내가 늘 염두에 두는 것이 바로 이 내적 동기의 확립이다. 내적 동기만이 근본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어떤 교육적 성취를 담보한다.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외적 동기부여가 난무한다. 그편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행동수정)를 위해 어떤 조건을 제시해 어떤 보상이나 어떤 처벌을 내린다’는 방정식은 명쾌하기 때문에 쉽게 느껴진다. 즉각적인 결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내적 동기를 끌어내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결과를 담보할 수도 없으니 조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중도 포기를 외치고 빠르고 쉬운 외적 동기부여로 갈아타 버리곤 한다.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외적 동기부여 제공은 철저한 관리자 모드(보호자 입장)라는 것을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너를 편하게 관리하기 위한 ‘나’를 위한 방법론이다. 반면 내적 동기부여 제공은 당사자 중심이다.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다르다. 외부에서 안으로 다가가느냐 안에서 밖으로 이끌어내느냐. 미성년인 자녀를 양육하는 입장이라면, 미성년인 학생을 교육하는 입장이라면, 적어도 그 차이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알고서 선택하는 건 각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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