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논술·수능 입시 3중고
“방학 때도 하루 5시간 정도밖에 못잤는데, 개학하면 얼마나 더 잠을 줄여야 할지…. ”
서울 강북지역 고교에서 상위권인 ‘예비 고3’ 조아무개(17)군은 지난해 고2가 되자 본격적으로 불안에 시달렸다. 내신 챙기기 경쟁 때문이었다. ‘내신 부풀리기’ 논란 때문에 중간·기말 시험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1점 차로 등급이 갈리기 때문에 입시 관련 정보를 나누거나 노트를 빌리는 것은 말도 꺼내지 못할만큼 교실은 삭막해졌다. 특목고 다니던 몇 명이 전학 오자 신경전은 더욱 심해졌다. 논술 비중이 커진다고 해서 친구들과 독서토론팀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수능은 과목도, 출제방식도 내신과 달라서 다들 시간싸움이라고 하던데, 공부할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요.”
학생들의 어깨를, 대학입시 공부가 짓누르고 있다. 학벌 중시 풍토와 대학 서열화 구조 속에서 ‘상위권 대학·학과 진학 경쟁’에 얽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관문에 ‘내신, 수능, 논술’이 버티고 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다. 학생들의 살인적인 공부 부담을 덜어줄 뾰족수는 없을까?
논술·수능 비중낮춰 부담 먼저 해소
학생부 신뢰위해 객관적 평가 필수
학생부 중심 전형 확대해야=2008학년도 대입안의 핵심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아이들의 눈을 ‘학교 밖(학원, 과외)’에서 ‘학교 안’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 부풀리기를 막겠다며 ‘상대평가’를 도입함으로써, 아이들은 친구들과 끊임없는 경쟁 속에 놓였고 촛불시위를 하며 아우성쳤다. 단 한 차례 수능 대신 12차례의 중간·기말 시험으로 ‘기회’를 늘리되 부담은 줄이려 했으나, 아이들은 12차례의 ‘족쇄’로 느낀다.
그럼에도 큰 방향에서 대학들이 학생부 중심 전형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대의 지역균형 선발 전형처럼, 학생부를 주로 활용하는 전형을 주요 대학들부터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이나 논술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이 필요하다면, 그밖의 다른 전형요소들은 보조적으로 활용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 위해선 학생부의 신뢰도 확보가 필수요건이다.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교사의 수업권과 평가권을 보장하고 전문성을 높이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교사에게 책무성을 더 요구하자”고 말했다.
“논술, 일단 비중 낮추고 쉽게”=서울 ㅈ고 최아무개(17·2년)양은 “1학년 때 논술을 공부하려 애썼지만, 재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어 포기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로 쓰는, 논술에 꼭 필요한 교육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도 주요 대학들은 논술 비중을 대폭 강화하고, 논술을 자연계로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등급제로 바뀐 수능의 변별력 약화를 이유로 들었다. ‘내신 부담 완화’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논술이 가세한 것이다.
당장엔 논술의 반영 비중을 낮추되, 초·중·고교 논술 교육의 진도를 살펴 점차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는 “가르치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논술 평가를 고교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대학이 논술을 따로 치러 변별하려 들면 고교 교육은 그에 대비한 입시 위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대학들이 변별력 시비에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계동 한 논술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이 ‘논술 실전 문제’를 보고 글을 쓰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수능 등급, 더 줄여야”=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교 수업을 잘 받으면 풀 수 있게 수능을 출제한다’는 방침을 거듭 밝혀 왔다. 그러나 ‘내신 공부에 충실하면 수능 대비가 되리라’고 여기는 학생들은 드물다. 서울 강남 ㄷ고 양아무개(18·3년)군은 “내신 공부가 수능 대비의 기초가 된다”면서도 “문제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수능 공부는 따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능은, 정시 정원의 3배수를 뽑는 기준(서울대)이나 최저 학력기준(주요 대학들)이 되면서 학생들에게 다시 큰 부담이 됐다.
때문에 수능을 자격고사로 만들거나, 5단계의 ‘학력 성취도’ 시험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교사·학부모 단체들에서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고교 졸업장을 주는데, 따로 막대한 돈을 국가 수준의 시험을 치러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대학들은 수험생들의 전국 위치를 보여주는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면 입시 전형의 공정성·객관성 시비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양길석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기획연구부장은 “모집 단위나 계열별로 무슨 과목을 공부할지 미리 알려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