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세상속으로
홍성군 학생동아리 출범식
분위기 무겁지만 목소리 ‘낭랑’
“학벌 없는 세상으로 날고파” “우리 청소년들은 너무 오래 참아왔습니다. 입시의 덫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친구들과 경쟁하며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과 꿈을 잃고 살아 왔습니다.” 아직 차가운 봄바람이 불던 지난달 29일 토요일 오후, 충남 홍성군 축산회관 강당에는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를 촉구하는 홍성군 학생 동아리 ‘날개’의 출범식이 열렸다. 2007년 11월 ‘입시 폐지·대학 평준화 국민운동(edu4all.kr)’이 시작된 뒤, 어제도 오늘도 고통과 억압 속에 있는 당사자들인 고등학생이 주체가 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전국 최초의 일이다. 학생 대표 3명이 앳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어나갔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친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대학 간판보다는 우리의 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억압을 뚫고 나온 첫 날갯짓이기 때문일까, 학생들의 목소리는 낭랑했지만 강당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보면 바위가 깨지진 않겠지만 바위가 계란이 될 겁니다.” 참가자들이 잠시 함께 웃었다. 여학생 회장이 스치면서 말했다. “부모님이 반대해서 모르게 해요.” 부모뿐인가, 학교 당국은 물론 대부분 교사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날개’ 출범식도 본디 홍성고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불허 통고를 받았다. 홍성여고는 학교 게시판 이용도 불허했다. 우리네 학교는 학생들의 자발성, 능동성, 자율성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다. 시민 주체가 아닌 노예로 길렀던 일제 강점기 이래 이 땅의 학생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그 위에 대학 서열 체제는 성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낳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하는 지적 인종주의를 내면화하면서 시민 주체 형성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치다. “나서지 마,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 “누구에게서 사주 받았지?”, “공부 못하니까 이런 짓 하지?” 학생들은 이런 말들을 뒤로 하고 스스로 모였고 토론하며 공부했다. “우리는 이제 날아오릅니다. 입시 없는 세상, 학벌 없는 사회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무한 경쟁사회를 넘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의 그날까지 우리의 힘찬 비상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30여명에 지나지 않는 학생들, 시작은 미미하지만 내일은 창대할 수 있을까? 그들이 펼친 날개가 다른 지역으로, 다른 학교로 비상할 수 있을까? 대의는 그들 편이다. 그러나 우군을 찾기 어렵다. 아직 무엇을 할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 자신 항상 불안하다. 이 모두를 헤치고 첫 날개를 단 그들은 이미 창대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 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분위기 무겁지만 목소리 ‘낭랑’
“학벌 없는 세상으로 날고파” “우리 청소년들은 너무 오래 참아왔습니다. 입시의 덫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친구들과 경쟁하며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과 꿈을 잃고 살아 왔습니다.” 아직 차가운 봄바람이 불던 지난달 29일 토요일 오후, 충남 홍성군 축산회관 강당에는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를 촉구하는 홍성군 학생 동아리 ‘날개’의 출범식이 열렸다. 2007년 11월 ‘입시 폐지·대학 평준화 국민운동(edu4all.kr)’이 시작된 뒤, 어제도 오늘도 고통과 억압 속에 있는 당사자들인 고등학생이 주체가 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전국 최초의 일이다. 학생 대표 3명이 앳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어나갔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친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대학 간판보다는 우리의 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억압을 뚫고 나온 첫 날갯짓이기 때문일까, 학생들의 목소리는 낭랑했지만 강당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보면 바위가 깨지진 않겠지만 바위가 계란이 될 겁니다.” 참가자들이 잠시 함께 웃었다. 여학생 회장이 스치면서 말했다. “부모님이 반대해서 모르게 해요.” 부모뿐인가, 학교 당국은 물론 대부분 교사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날개’ 출범식도 본디 홍성고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불허 통고를 받았다. 홍성여고는 학교 게시판 이용도 불허했다. 우리네 학교는 학생들의 자발성, 능동성, 자율성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다. 시민 주체가 아닌 노예로 길렀던 일제 강점기 이래 이 땅의 학생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그 위에 대학 서열 체제는 성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을 낳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하는 지적 인종주의를 내면화하면서 시민 주체 형성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치다. “나서지 마,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 “누구에게서 사주 받았지?”, “공부 못하니까 이런 짓 하지?” 학생들은 이런 말들을 뒤로 하고 스스로 모였고 토론하며 공부했다. “우리는 이제 날아오릅니다. 입시 없는 세상, 학벌 없는 사회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무한 경쟁사회를 넘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의 그날까지 우리의 힘찬 비상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30여명에 지나지 않는 학생들, 시작은 미미하지만 내일은 창대할 수 있을까? 그들이 펼친 날개가 다른 지역으로, 다른 학교로 비상할 수 있을까? 대의는 그들 편이다. 그러나 우군을 찾기 어렵다. 아직 무엇을 할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 자신 항상 불안하다. 이 모두를 헤치고 첫 날개를 단 그들은 이미 창대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 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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