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적 확대에만 치우쳐 왔던 학교 급식의 ‘질’은 수준 이하다. 학교에서 살다시피하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급식을 먹을 권리는 ‘생존권’이나 마찬가지다. 사진은 학생들이 직접 올린 학교 급식의 사례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커버스토리 /
건더기 없는 자장…닭고기 빠진 닭찜…
밥 먹은 뒤 매점 들러 군것질 다반사
“학교에서 세끼 해결 학생들 어쩌라고” 이명박 정부가 지난 15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으로 0교시에 심야 자율학습까지 허용됐다. 이제 학생들은 심한 경우 아침 7시 안팎부터 밤 10시 안팎까지 무려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 자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먹는 것은 세 끼 전부에다 간식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지경이다. 성장이 가장 왕성할 나이, 그래서 돌아서면 배가 고픈 학생들의 먹는 문제를 우리 학교들은 과연 해결할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 것일까? 쌀밥, 자장소스, 달걀국, 만두강정, 포기김치, 과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발표되던 날 서울의 한 고교 식당 앞에 붙어 있던 ‘오늘의 식단’은 얼핏 근사해 보였다. 학생들과 똑같이 식판을 들고 배식대에 섰다. 새까만 자장소스가 밥 위에 얹어졌다. 고기, 감자, 양파 등의 ‘건더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달걀국’은 색이 탁했다. 기대했던 만두강정은 동네 가게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냉동만두에 설탕옷을 입힌 것이었는데, 밥 반찬으로는 달았다. 과일은 제철과일이 아니라 통조림 파인애플 두 조각이었다. 옆에 앉은 여학생 셋은 “맛있냐”는 질문에 맥없이 잔반을 모아 국그릇에 쓸어 넣었다. ‘잔반 없는 날’이라는 표어가 무색하게도 학생들은 자장과 만두, 김치를 거의 다 버리는 것 같았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입에 맞는 게 없어 파인애플을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며 “급식 먹고 매점 들러 군것질하고 교실로 가는 게 ‘코스’처럼 돼 버렸다”고 했다.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의 고교생 회원 91명에게 학교 급식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결과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은 19명뿐이었다. 급식에 ‘불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은 50명(54%)이었다. 식단·가격·위생·식사환경·기타 등으로 나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물었더니 29명(31%)이 셋 이상을 꼽았다. 2006년 교육부가 조사한 학생들의 급식만족도는 평균 55점이었다.
학교 급식의 심각한 문제는 식사의 질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일딩’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학생은 “얼마 전에 메추리알이랑 고기를 같이 조린 게 나왔는데 고기가 덜 익어서 피가 살짝 묻어 있었고 비린내도 났다”며 “‘매운닭찜’에는 닭고기가 없고 떡이랑 소면뿐이다”고 했다. 서울의 한 학교에 다니는 ㅇ양은 “햄 반찬에 햄이 들어간 국, 깍두기에 무무침까지 하루에 먹은 게 햄이랑 무밖에 없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당일 식단표는 ‘강낭콩밥, 부대찌개, 삼치엿장조림, 새송이햄볶음, 미나리무생채, 깍두기’라는 메뉴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었지만 말이다. 이는 식재료의 질이 낮은 탓이다. 특히 위탁급식은 식재료를 사는 데 쓰는 비용을 쪼개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더 심하다. 서울교육청이 낸 자료를 보면 직영급식을 하는 초등학교는 급식비의 94.7%를 식재료비로 쓰지만, 위탁급식을 하는 중·고교는 고작 55.7%만 쓴다. 급식업체가 중국산 김치, 수입산 쇠고기 등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1~7월, 위탁급식을 하는 학교의 88.2%가 수입 쇠고기를 썼다.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는 12.5%만 수입산 쇠고기, 72.5%는 국내산 쇠고기를 썼다. 지난해 5월 현재 서울에 있는 고교의 92.7%가 위탁급식을 한다. 학생들이 ‘머리카락’과 ‘파리’를 식판에서 마주치는 일도 흔하다. 인천의 한 학교가 지난해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밥이나 반찬 또는 국에서 이물질이 나온 적이 있냐’는 물음에 1079명 가운데 440명(37%)이 ‘그렇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발견한 이물질의 종류는 머리카락, 작은 벌레, 비닐, 돌, 파리, 고무줄, 종이 등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학생들은 늘 배가 고프다. 도시락 급식을 하는 서울의 한 고교는 점심시간에 교사가 교문을 지킨다. 학교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다. 교문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최아무개씨는 “오후 수업 쉬는 시간에는 지키는 교사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최씨는 하루에 200여개 정도의 주먹밥과 햄버거를 판다고 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생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급식은 ‘삶의 질’ 문제다. ‘급식 보이콧’을 벌이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장면과 탕수육을 배달해 먹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엄마들이 급식 검수하면서 인스턴트 식품이 너무 많이 나오고 식당의 위생도 좋지 않다며 급식평가서를 안 좋게 쓰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급식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뾰족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먹는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놓기만 하면 학력은 저절로 오르는 것일까? “와서 먹어보고 그런 계획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한 학생의 푸념은 어른들의 ‘책상 행정’을 부끄럽게 만든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밥 먹은 뒤 매점 들러 군것질 다반사
“학교에서 세끼 해결 학생들 어쩌라고” 이명박 정부가 지난 15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으로 0교시에 심야 자율학습까지 허용됐다. 이제 학생들은 심한 경우 아침 7시 안팎부터 밤 10시 안팎까지 무려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 자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먹는 것은 세 끼 전부에다 간식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지경이다. 성장이 가장 왕성할 나이, 그래서 돌아서면 배가 고픈 학생들의 먹는 문제를 우리 학교들은 과연 해결할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 것일까? 쌀밥, 자장소스, 달걀국, 만두강정, 포기김치, 과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발표되던 날 서울의 한 고교 식당 앞에 붙어 있던 ‘오늘의 식단’은 얼핏 근사해 보였다. 학생들과 똑같이 식판을 들고 배식대에 섰다. 새까만 자장소스가 밥 위에 얹어졌다. 고기, 감자, 양파 등의 ‘건더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달걀국’은 색이 탁했다. 기대했던 만두강정은 동네 가게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냉동만두에 설탕옷을 입힌 것이었는데, 밥 반찬으로는 달았다. 과일은 제철과일이 아니라 통조림 파인애플 두 조각이었다. 옆에 앉은 여학생 셋은 “맛있냐”는 질문에 맥없이 잔반을 모아 국그릇에 쓸어 넣었다. ‘잔반 없는 날’이라는 표어가 무색하게도 학생들은 자장과 만두, 김치를 거의 다 버리는 것 같았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입에 맞는 게 없어 파인애플을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며 “급식 먹고 매점 들러 군것질하고 교실로 가는 게 ‘코스’처럼 돼 버렸다”고 했다.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의 고교생 회원 91명에게 학교 급식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결과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은 19명뿐이었다. 급식에 ‘불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은 50명(54%)이었다. 식단·가격·위생·식사환경·기타 등으로 나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물었더니 29명(31%)이 셋 이상을 꼽았다. 2006년 교육부가 조사한 학생들의 급식만족도는 평균 55점이었다.
학교 급식의 심각한 문제는 식사의 질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일딩’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학생은 “얼마 전에 메추리알이랑 고기를 같이 조린 게 나왔는데 고기가 덜 익어서 피가 살짝 묻어 있었고 비린내도 났다”며 “‘매운닭찜’에는 닭고기가 없고 떡이랑 소면뿐이다”고 했다. 서울의 한 학교에 다니는 ㅇ양은 “햄 반찬에 햄이 들어간 국, 깍두기에 무무침까지 하루에 먹은 게 햄이랑 무밖에 없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당일 식단표는 ‘강낭콩밥, 부대찌개, 삼치엿장조림, 새송이햄볶음, 미나리무생채, 깍두기’라는 메뉴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었지만 말이다. 이는 식재료의 질이 낮은 탓이다. 특히 위탁급식은 식재료를 사는 데 쓰는 비용을 쪼개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더 심하다. 서울교육청이 낸 자료를 보면 직영급식을 하는 초등학교는 급식비의 94.7%를 식재료비로 쓰지만, 위탁급식을 하는 중·고교는 고작 55.7%만 쓴다. 급식업체가 중국산 김치, 수입산 쇠고기 등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1~7월, 위탁급식을 하는 학교의 88.2%가 수입 쇠고기를 썼다.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는 12.5%만 수입산 쇠고기, 72.5%는 국내산 쇠고기를 썼다. 지난해 5월 현재 서울에 있는 고교의 92.7%가 위탁급식을 한다. 학생들이 ‘머리카락’과 ‘파리’를 식판에서 마주치는 일도 흔하다. 인천의 한 학교가 지난해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밥이나 반찬 또는 국에서 이물질이 나온 적이 있냐’는 물음에 1079명 가운데 440명(37%)이 ‘그렇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발견한 이물질의 종류는 머리카락, 작은 벌레, 비닐, 돌, 파리, 고무줄, 종이 등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학생들은 늘 배가 고프다. 도시락 급식을 하는 서울의 한 고교는 점심시간에 교사가 교문을 지킨다. 학교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다. 교문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최아무개씨는 “오후 수업 쉬는 시간에는 지키는 교사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최씨는 하루에 200여개 정도의 주먹밥과 햄버거를 판다고 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생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급식은 ‘삶의 질’ 문제다. ‘급식 보이콧’을 벌이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장면과 탕수육을 배달해 먹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엄마들이 급식 검수하면서 인스턴트 식품이 너무 많이 나오고 식당의 위생도 좋지 않다며 급식평가서를 안 좋게 쓰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급식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뾰족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먹는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놓기만 하면 학력은 저절로 오르는 것일까? “와서 먹어보고 그런 계획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한 학생의 푸념은 어른들의 ‘책상 행정’을 부끄럽게 만든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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