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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전문계고 ‘상위권대 문턱’ 낮춰주세요

등록 2008-05-18 16:29

4년제 대학에 가고자 하는 전문계 고교생이 부닥치는 현실의 벽이 높다. 인문계 고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봉규 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4년제 대학에 가고자 하는 전문계 고교생이 부닥치는 현실의 벽이 높다. 인문계 고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특별전형 자격기준 엄격한데다
직업탐구영역 모의고사도 뜸해
“실습 때문 수능준비 못해 답답”
“전문계고에서 대학 쉽게 간다고요? 우린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인천의 한 상업계열 전문계고에 다니는 김아무개(17)양은 수능을 180여일 앞둔 요즘 시름이 깊다. 가고자 하는 대학을 정했지만 상업계열 졸업자는 동일계열인 상경계열에만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알게 된 뒤의 일이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 수능 준비만 하기도 빠듯한데 4교시 내내 컴퓨터 실습을 해야 하는 상황도 답답하다. “전문계고를 선택해 왔으면서 영문과를 지망하는 거나 인문계고랑 똑같은 수업을 바라는 게 모순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대학 가는 게 중요한 저한테는 모든 게 너무 속상해요.”

4년제 대학 진학을 바라는 전문계고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크다. 전문계고 졸업자들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 41.9%에서 지난해 71.5%로 30% 가까이 증가한 반면 4년제 대학 진학률은 26.2%에서 34.5%로 10% 느는 데 그친 이유다.

2002년 교육부는 2004학년도 입시부터 정원 외 3% 안팎으로 전문계고 출신자 특별전형을 실시하도록 권고했다. 제7차 교육과정이 수능시험에 처음 적용된 2005학년도 입시부터는 전문계고 학생들이 배우는 농업·공업·상업계열의 교과목을 인문계고교의 사회나 과학 교과목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직업탐구영역을 개설해 이들의 불리함을 최소화했다. 4년제 대학 진학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전문계고 기피 현상을 막아보려는 정부 정책의 하나였다.

그러나 전문계고 학생들은 여전히 높은 대학의 문턱과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우선 학생들은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대학에 갈 수 없다. 전문계고 특별전형이 따로 있지만 인문계고 학생들이 지원하는 다른 전형과 똑같은 수준의 수능성적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특히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이 그렇다. 지난해 고려대가 실시한 전문계고 특별전형의 자격기준은 ‘언어·수리·외국어 모두 2등급 이내’였다. 농어촌 특별전형의 ‘3개 영역 평균 2등급’이라는 자격기준보다 더 엄격했다.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을 합해 193명을 뽑겠다고 했던 전문계고 특별전형에 고작 7명이 지원했다. 연세대와 서강대도 지원자가 모집인원보다 적었다.

전문계 고교에서 3학년 진학반을 맡고 있는 권아무개(36) 교사는 “2008학년도부터 전문계고 특별전형 모집인원을 정원 외 5%로 늘린다고 해서 입시요강을 뒤져봤더니 아이들이 정말로 가고 싶어 하는 4년제 대학의 문턱은 여전히 높더라”며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대학 수업을 쫓아올 수 있을 거라는 대학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노력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접근조차 막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전문계고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데 수능 성적이 결정적이지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능 대비를 할 수 없다. 전문계 고교에 다니는 3학년 조아무개(18)양은 “2학년이 될 때 진학반이 생기지만 정규 수업 시간에는 취업반 아이들과 똑같은 수업을 한다”며 “학교 수업을 아예 안 듣고 수능 공부에 올인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게 맞는 건가 싶어 혼란스럽다”고 했다.

전문계고 학생들의 4년제 대학 진학을 돕고자 개설된 수능의 직업탐구영역을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아무개(17)양은 “고3이 된 지금까지 모의고사에서 직업탐구영역을 딱 한번 봤다”며 “전문계고 특별전형으로 가려면 직업탐구영역을 잘 봐야 하는데 시험 난이도나 백분위를 알 수가 없으니 막막하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교육청, 경기교육청, 인천교육청이 번갈아 출제하는 3월, 4월, 7월의 전국연합학력평가시험에는 직업탐구영역이 출제되지 않는다. 단지 10월에만 서울교육청이 직업탐구영역을 출제한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에는 농업이나 수산업, 해양을 담당하는 교사가 없어서 전국에 있는 담당교사들을 섭외해야 출제가 가능하다”며 “17과목이나 되는 직업탐구영역 출제를 위해 과목당 5명씩 모두 100명 가까운 교사들을 모아야 하는데 일선 교육청에서 이만한 행정력을 동원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하는 6월과 9월의 대수능모의평가에는 직업탐구영역이 출제되며 이를 합하면 전문계 고교의 고3 수험생들은 모두 세 번의 직업탐구영역 응시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계고 학생들은 왜 이런 악조건에도 대학을 가고자 하는 걸까. 이영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두면 4년제 대졸자 임금은 150에 육박한다”며 “고졸자와 대졸자의 사회적 대우가 다른 상황에서 전문계 고교 학생들의 대학 진학열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인천의 한 전문계 고교 3학년 부장교사는 “사회가 전문계 고교 졸업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는 취업과 진학 모두 무력할 수밖에 없다”며 “전문계 고교가 놓인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취업과 진학 사이에 명확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때”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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