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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들 사고력에 불 밝힐 ‘촛불’

등록 2008-06-15 14:51수정 2008-06-15 19:32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내가 초등 4학년 무렵이다. 70년대 초반 학교 반공교육이 극심할 땐데, 내 마음 속엔 약간의 의문이 일었다. 북한 공산당은 머리에 뿔 달린 괴물 같고, 선글라스 끼고 호시탐탐 염탐하는 스파이들이며, 자기들은 호의호식하면서 국민들은 강제 노동으로 못살게 굴고 굶겨 죽인다. 어린 내 생각에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은 원래 타고난 악당들일까? 참다못해 아버지께 여쭤봤다.

“북한 공산당은 원래 나쁜 사람들만 모아서 만드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나라 같이 좋은 방법이 있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그들은 자기네 방식이 옳다고 굳게 믿어서 그런 거지.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나름대로는 잘 하려고 애쓰는 거다. 남북한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이기려고 경쟁하는 거야. 여기선 우리가 훨씬 좋고 북한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선전하지? 북한도 똑같이 그런다. ” 아하! 그 말은 나의 의문점을 해소해 줌과 동시에 하나의 시각을 열어줬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북한 놈들은 무조건 나쁘다”는 단순 논리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무렵 유신이 선포되고 박정희 독재가 본격화됐다. 방송에서는 용비어천가를 읊어대는데, 아버지는 <동아일보>의 빈 광고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형제들의 정치의식 형성에 일조를 하셨다.

얼마 전 사촌동생이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부모들이 시국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는 아이들에게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 부모의 정치적인 견해나 종교에 대한 태도 등 모든 것이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게 아닐까. 너무 단정적으로 결과론적인 흑백을 나누기보다는, 이쪽은 무엇을 우선하고 어떤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또 다른 쪽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한두 가지라도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고 결론은 본인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른바 지나친 단순화(over-simplification)를 피하라는 거다. 결말이 뻔한 책은 너무 상투적이어서 재미없듯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결론은 아이들의 생각이 자랄 여지를 주지 않는다. 창의력을 측정하는 항목 중에 ‘종결에 대한 저항’이란 게 있다. 서둘러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끝을 열어두고 더 연장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다. 현실은 원래 복합적이며,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논리를 펴서 싸움을 하는 것임을 아이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도 그 싸움의 와중에 각자의 편에서 수단으로 복무할 수 있음을.

촛불집회에 나간 내 조카들도 그런 것들을 배웠으면 좋겠다. 또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열정과 단합에서 나오는 에너지, 하나가 된 집단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험했으면 좋겠다. 특히 꼭 배웠으면 하는 것은, 외적인 통제가 없어도 그렇게 거대한 집단이 자율적으로 모이고 표현하고 즐기며,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집단의 지혜로움이다.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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