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별 학습태도와 학습지도
가수공연 티켓 끊어준
어머니의 믿음도 한몫
어머니의 믿음도 한몫
대개의 학생과 학부모는 서울대 합격생들한테 크게 두 가지를 기대한다. 놀라운 효과를 내는 공부 방법을 전수해 주거나, 아니면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한 휴먼스토리를 들려주거나.
올해 서울대 인문학부에 입학한 조원진(19)군은 고교 1학년 때 50점이었던 수학 점수를 교과서를 들이판 끝에 최종 수능에서 90점까지 끌어올린 ‘학습비법’이 있다. 게다가 원진군은 고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상처를 극복한 인간미도 있다. 그러나 박재원 비유와 상징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은 그가 서울대에 합격한 비법을 완전히 다른 곳에서 찾는다. 바로 ‘자존감’이다.
■ 고3 때도 놓지 않은 사회활동으로 존재감을 느끼다= 그는 법대에도 진학할 수 있는 성적으로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철학을 전공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돈 잘 버는 경영학과에 진학하려고 마음먹었던 게 사실이죠. 그런데 이기적인 삶보다 이타적인 삶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됐어요.” 그를 ‘각성’시킨 것은 또래 친구들과의 독서토론 모임이었다. 고3 때도 꾸준히 유지했던 이 모임은 고1 때 마음이 통하던 친구와 결성해 다섯 명이서 한 달에 두 번 진행했다. 처음에는 언어영역 점수를 올리고픈 마음이 컸다. “중학교 때는 책을 많이 안 읽었어요. 그러니 고1 때 모의고사 수능 언어영역이 엉망으로 나왔죠.”
점수를 올리겠다는 얕은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사회학, 정치학, 철학 책을 넘나들다 보니 사회를 보는 안목도 생기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부활동의 기회를 찾아 나선 그는 ‘청소년의회’ 활동에도 참여했고 고3 때는 ‘한겨레 학생 기자단’으로도 일했다. 박 소장은 “사람들은 타인을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고 이는 곧 자아존중감을 키우는 효과를 낸다”고 했다.
■ 어머니의 지지와 지인들의 지원으로 자신감을 얻다= 지난해 1월23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에릭 클랩튼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당시 원진군의 속은 타들어 갔다. “수험생한테는 1시간이 아까울 때였죠. 비싼 표도 문제였어요. 이래저래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가수고 마지막 내한공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괴로웠죠.”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께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가장 좋은 좌석의 티켓을 예매하고 공연 당일에는 손수 운전해 공연장까지 ‘모셔다’ 줬다. 자녀가 원하고 바라는 일을 흔히 ‘쓸데없는 일’로 깎아내리는 부모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박 소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 특히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받는 평가는 사람의 자존감과 직결된다”며 “자녀가 원하고 바라는 일을 자녀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지원해 줄 때 자녀의 자존감이 커진다”고 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는 지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같은 고교를 나와 서울대에 다니는 한 선배를 알게 된 원진군은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면 항상 전화를 걸어 일종의 상담을 요청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넘게 꼬박 통화를 하면서 선배가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들이 힘이 많이 됐어요.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는 게 참 좋았죠.” 신뢰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믿어 주는 것만큼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박 소장은 “원진군은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데 이런 믿음은 관계를 맺는 데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이는 또다시 자존감을 강화시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진군의 높은 자존감이 서울대에 합격할 수준의 좋은 성적을 얻게 한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박 소장은 “자존감이 높은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자존감과 학업성취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학계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수시 지역균형선발에 나란히 합격한 유기한(19)군과 유지한(19)군 형제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봉사활동을 다니며 고교 3년 동안에만 130시간의 봉사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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