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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국 공교육의 롤모델, 박지성

등록 2009-08-18 14:47

세계 최고 구단 맨유 소속, 박지성  ⓒ 한겨레
세계 최고 구단 맨유 소속, 박지성 ⓒ 한겨레
[인물] [적성을 잘 살려 성공한 사람들] 우리 아이들도 ‘박지성’이 될 수 있다
2009년 5월 28일, 세계 최고 축구 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년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뤘다. 그리고 그 결승전에는 한국선수 아니, 아시아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 출전을 이루어낸 ‘박지성’이 있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그는 지난해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도 챔스 결승 출전명단에도 제외되는 굴욕을 말끔히 씻어냄과 동시에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쓰는 명예로운 하루를 보냈다.

세계최고 축구팀 맨유에서 지낸지도 어느덧 4년이다.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인들 모두에게 맨유하면 박지성이 떠오르겠지만, 축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나로서는, 4년전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한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박지성이 반니와 긱스와 함께 뛴다니. 아, 정말 거짓말 아니야? 이게 말이되는 건가?” 4년 전, 나와 우리 형은 기분 좋은 ‘황홀감’에 젖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게 돼, ‘유럽축구’ 또한 광팬이된 우리 가족은 ‘맨유’라는 팀의 위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인’이 그곳에서 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박지성이 호날두와 루니랑 함께 뛰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그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결과물’만으로도 박지성은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 분명하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최고의 자리에서도 노력할 뿐이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그저 키작아 무시받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이 뜨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때부터다. 그러나 그의 축구인생은 정말로 순탄치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고질적인 ‘작은 신장문제’로 많은 고생을 겪었다. 특히, 수원공고 시절 키가 하도 자라지 않아, 감독으로부터 축구하지 말고, 개인 체력훈련에만 매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로 힘들고 서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인데, 축구 공을 못 만지게 하는 것은 그에게 마치 죽으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사실 일반 사람이 이 정도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축구선수가 되고싶다는 그의 강한 열정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라 포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키 크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한 결과 그의 키는 결국 170cm를 갓 넘길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그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미는 대학교 축구팀은 아무 곳도 없었다. 모든 스카우터들은 그의 실력과 열정보다는 그저 외적인 체격이 걸림돌일 것이라는 것만 보였을거다. 대부분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 명지대는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어렵게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바로 올림픽대표 팀 발탁이다. 하지만 그가 올림픽대표팀에 발탁이 된 것 자체가 너무나도 의외였었는지, 메스컴에서 그런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심지어는 감독과 친해서 뽑혔다는 ‘감독친분설’까지 나돌았으니 말이다. 어린 나이에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쳐보이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잊혀가는듯 했다.

그런 박지성이 2002년 우연히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띠어 월드컵에 출전하고,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가서 ‘축구선수로서 가장 힘든 슬럼프’를 이겨내고 맨유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은 그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그에게 ‘듣보잡이 좀 하는구나’ 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으면 썼지, 좋게 써주는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김남일과 같이 있을 때 팬들이 자신보다는 김날일에게만 싸인을 요청한 ‘굴욕동영상’이 있을정도로, 그는 잘생긴 외모도 아니라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모든 것이 맨유에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의 스토리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과연 그가 이렇게 힘든 고난을 이겨내고 계속 도전 할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그의 부모님

박지성이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놀았는데, 그래도 동네에서 공 좀 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었지만, 축구를 할 때 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쳤고,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축구부에 들어간다고 했을때, 부모님은 반대했다. 부모님은 그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집안사정이 넉넉치 못했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어야 별 걱정없이 아들이 생계를 꾸려나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래 축구 꿈나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박지성  ⓒ 한겨레
미래 축구 꿈나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박지성 ⓒ 한겨레

그러나 박지성은 ‘축구가 미치도록 좋다는 일념’ 하나로 부모님께 끈질기게 조르고 또 졸랐다. 축구를 시켜주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평소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반항’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이내 허락했다. 그럼과 동시에 아버지는 어린 지성에게 말했다.

“네가 그토록 축구를 하고 싶어한다면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 다만 한번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네 입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어린 지성은 아버지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축구를 접하게 되면서, 어른들도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덜컥 해버렸다. 그런 그가 체격조건도 온전치 못하고, 성공가능성도 불투명한 ‘축구선수’ 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택할수 있었던 것은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적성’이 ‘축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할 때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도, 자신의 작은 체구도, 자신의 평평한 평발도 모두 극복할수 있을만큼 축구가 좋았고 그만큼 잘했다.

그는 그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이후로 부모님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축구를 하는 것이 즐거워서 시작했고 지금도 축구를 하는 것이 즐겁다. 한번도 축구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한 일이 없으니 아직까진 아버지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박지성은 단순했다. 어렸을때 동네에서 접하게 된 축구를 자주 했고, 거기서 자신이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걸 남들보다 비교적 빨리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강하게 확신했다. 축구선수가 될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과 시련도 이겨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적성을 토대로 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것이다.

확실한 적성을 바탕으로 만든 ‘꿈과 목표’, 모든것을 이겨낸 무기

그는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이고, 한국인 최초로 ‘FIFA컵(클럽월드컵)’ 우승경험을 했다.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아봤고, ‘월드컵 본선무대’를 두번이나 주전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주급으로 거의 1억을 받는다. 이 정도면 가히 축구선수로서는 세계적으로 성공했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는 한없이 겸손했다. 자신이 유명한 스타라고 거들먹 거리지도 않는다. 축구장 밖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내성적인 청년이다.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유명해지는건 싫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수많은 인기와 스포트라이트를 누려볼만도 한데, 그는 오직 축구에 열중하고 한없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할 뿐이다. 그만큼 그는 다른 스포츠 스타들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광고는 찍지만, 그의 명성만큼 외부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축구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그의 남다른 점도 오직 축구만 바라보고 노력하는 ‘굳건한 성실함’ 덕택이다.

단순히 축구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점 때문에 나는 박지성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모토는 ‘박지성처럼 사는것’이다.

기자는 “박지성이 다른 일을 했어도, 그의 성실함과 노력 때문이라도 필히 성공할것이다.” 라는 주위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성실함은 그가 ‘축구’를 미치도록 사랑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축구를 하지 않고, 앉아서 공부를 했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농구를 했으면 성공했을까? 노래를 했으면? 모두 아니다. 그는 오직 자신이 죽도록 좋아했던 축구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게 가능했다.

박지성 기적, 생각만 바꾼다면 얼마든지 가능

다른 유럽 리그 보다도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인들은 꿈에도 못꾸는 리그였다. 한마디로 남미와 유럽, ‘그들만의 자축 리그’ 였다. 그러나 4년 전, 박지성이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최고팀에 온 이후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박지성이 오기 전까지 아시아인들에게는 ‘높은 장벽의 프리미어리그 문턱’이 박지성이 쌓아놓은 좋은 이미지 덕택에 많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올해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박지성 포함 4명이다.

그만큼 대단한 선수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우나, 한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제2의 박지성이 나올수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

솔직히 말해서 꼭 축구뿐만이 아니라도,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김연아, 박태환, 반기문, 비 등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은 물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적어도 2000년대에 우리나라 12년교육과정을 경험한 주니어들 사이에서는 힘들 것 같다. 정말 박지성처럼 개인이 확실한 적성을 가지고 노력한 몇몇 소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적성’ 그런 것 다 깡그리 무시한다. 무조건 ‘잘먹고 잘 사는것’이라는 ‘가치관’에 맞쳐 모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있다. 사실 ‘공부’도 ‘공부’가 아니다. 그냥 ‘국제중’ 가기 위한, ‘특목고’ 가기 위한, ‘명문대’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공부’일 뿐이다. 더 적나라하게 ‘돈벌려고, 먹고살기’ 위해 간다.

내 주위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대학에서 방황하고 있거나 대학진학 때문에 힘들어한다. 어떤 친구는 음악을 좋아해 가수가 되고 싶어했고, 춤을 좋아해 비보이가 되고싶어했고, 피아노가 좋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고, 그림을 좋아해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거의 모두 지금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에 가기위해서, 그런 자신의 ‘꿈과 적성’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아니 무시할수 밖에 없게 ‘부모와 사회’ 가 강요한다. 설령 그 꿈도 대학을 나와야만 가능하다고 믿게 되버려, 원래의 꿈과는 사뭇 다른 꿈으로 변질된다.

이제는 더이상 이런 ‘비극적인 스토리’ 를 보기는 싫다. 이런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경우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가 박지성처럼 세계적으로 되라는 것이 아니고, 꼭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야지만 성공한 삶도 아니다. 박지성 역시 그런 목적에서 축구를 시작한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꿈을 꾸고, 그것으로 밀고 나갈수 있도록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청소년들이 대학에 못가도, 돈 좀 못벌어도, 공무원이 못돼도 행복하게 살수 있다. 적어도 원치않는 직업을 가진 이후에 ‘회의’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되어야 더 성공할수 있고, 돈도 더 많이 벌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박지성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원했던 것처럼 평범한 공무원이 되라는 강요에 못이겨, 지금 공무원이 됐다고 한다면, 아마도 평생 후회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부모님이 아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것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도록, 키크는데 좋다는 개구리를 보양식으로 갖다줄만큼 정성을 보여주며 지원했기 때문에 지금의 박지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인 것’ 보다는 먼저 ‘꿈’을 보게해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게 있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이 매번 말한것처럼 교육을 못받아 가난이 되물림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이 경쟁력이라면서, 경쟁만 강조하는게 오히려 아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 아십니까? 지금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걸 아십니까? 광주에서는 한달에 한명꼴로 죽고있다는 것 아십니까? 그게 다 개인탓입니까? 단순한 ‘우울중’ 때문입니까? 바로 아이들이 뛰어놀 나이에 뛰놀지 못하고,학원에 가야하는게 문제인 겁니다. 많은 걸 경험해야할 청소년 시기에 백날 교실에 앉아 비자발적으로 공부하며, 자신의 ‘적성과 꿈’을 잃어가는게 문제인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 청소년들이 왜 어린나이에 ‘현실’을 따져야 합니까. 왜 ‘대학’ 때문에 모든 걸 버려야 합니까. 그래 ‘먹고살려고’ , ‘대학가야 먹고 사는길이 열리니까’ 아마도 그런거겠지...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할거야.....

그러나 자신의 자식들에게 지금 ‘현실적인 것’을 보게하고 ‘아이들의 꿈’을 외면한다면, 나중에 자식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치우쳐 허우적거리면서 살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아이들의 꿈’에 신경써주고, ‘현실적인’을 부분을 나중에 따지게 한다면, 아이들이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흥분하면서 박지성 얘기를 꺼낸것은 바로 ‘적성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지성처럼 적성을 살린 청소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핀란드처럼 국가가 교육을 통해 적성을 키우는, 그래서 성공한 경우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박효영 hyobal22@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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