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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밥상은 당신의 얼굴이다

등록 2010-01-17 16:25수정 2010-01-17 16:34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7. 민주주의는 경제 ‘프렌들리’한 제도일까?-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는다면
18. 행복한 밥상, 먹거리에 담긴 인문 정신
19. 다윈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면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디자인하우스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뿌리와 이파리

1872년, 메이지(明治) 일왕은 앞장서서 쇠고기를 먹었다. 일본인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까지 일본 사람들에게 고기는 치기 어린 불한당들이나 먹던 음식이었다. 육식을 못하게 하는 불교가 뿌리내린 지 이미 천 년, 일본인들에게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왜 메이지 일황은 쇠고기를 먹었을까?

서양인들의 큰 키, 그네들의 앞선 기술과 과학에 견주면 동양의 것들은 모두 하찮아 보였다. 일본 지식인들은 서양만큼 강해지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고 외쳤다. 먼저 먹거리부터 서양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허우대도 커지고 힘도 세지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육식은 ‘문명개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쇠고기야말로 개화(開化)의 약국이며 문명의 양약(良藥)이다!”


하지만 입맛을 바꾸기가 어디 쉽던가. 사람들은 좀처럼 고기에 입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음식이 샤브샤브이다. 일본의 전골 요리에 생선 대신 고기를 넣었다. 그러곤 된장과 간장으로 양념을 한다. 서양인들의 음식 재료로 일본 요리를 만든 셈이다.

돈가스는 원래 커틀릿이란 영국 요리에서 왔다. 돈가스란 돼지고기(豚)로 만든 커틀릿이란 뜻이다. 돈가스로 바뀐 커틀릿은 밥에 어울리는 반찬이 되었다. 나이프와 포크를 쓸 필요가 없이 젓가락질하기 좋게끔 썰어져 나올뿐더러, 머스터드소스로 간까지 배어 있다.

이처럼 서양요리는 일본에서 양식(洋食)으로 다시 태어났다. 양식은 서양의 음식이지만 정작 서구에는 없는 일본식 요리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음식은 온전한 모습 그대로 다른 나라에 뿌리내리는 법이 없다.

우리의 식탁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집과 입맛은 유럽이나 미국인들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먹거리만큼은 여전히 ‘조선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김치에 밥이 있어야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었다고 여긴다.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한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를 알면,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몸에 밴 입맛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점을 볼 때, 이 말은 옳다. 그렇다면 음식을 살펴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밥상을 찬찬히 살펴보자. 상차림에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는 배가 고플 때만 먹지 않는다. 끼니때가 되면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없는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br>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디자인하우스<br>
<돈가스의 탄생><br>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뿌리와 이파리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디자인하우스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뿌리와 이파리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먹기 싫은데 왜 먹으려 할까? 디저트도 마찬가지다. 디저트는 식사가 끝나고 나오는 음식이다. 이미 배가 부른데 왜 또 먹으려 하는가? 허기야말로 최고의 반찬이다. 배고플 때만 먹고 텅 빈 속을 채울 만큼에서 식사를 그친다면 탈이 날 까닭이 없다. 채식주의자 헬렌 니어링의 말이다.

우리의 괴상한 식습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먹거리는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신선하고 영양분도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조리’한답시고 음식 재료들을 망쳐놓는다. 예컨대, 우리는 비타민이 가득 든 벼의 겨를 벗겨 버린다. 그러곤 흰쌀 위에 부족한 비타민을 ‘첨가’한다.

음식 먹는 장소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어두컴컴하게 커튼을 치고 흐릿한 불을 켜 놓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공기는 탁하다. 그 속에서 오래전 죽어서 얼려놓았던 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방부제가 잔뜩 든 통조림 속에 소스를 뿌려가면서 말이다. 탁 트인 벌판에서 밭에서 난 채소로 배를 채우는 식사보다 훨씬 못하게 끼니를 때우는 셈이다.

우리네 삶이 왜 신산스러운지는 식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넓은 집과 자동차, 사치스러운 취미 등등,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욕망 가운데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허기 채우기를 넘어 식탐을 부리는 순간, 건강은 망가진다. 생활도 마찬가지다.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는 끝이 있지만 욕망을 채우는 데는 끝이 없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헬렌 니어링은 이렇게 충고한다. 자연이 주는 재료 그대로, 조리는 적게 해서 먹을 것. 아예 그녀는 “가로 세로 15×9㎝ 카드에 적지 못할 조리법이라면 다 잊어버리”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우리의 생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욕심이 작고 소박하다면, 복잡한 문제들은 대부분 스러져버릴 테다.

한국 음식을 세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음식은 문화와 함께 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 요리는 궁정의 우아함과 기품을 느끼게 한다. 햄버거와 같은 미국 음식을 먹을 때는 젊음과 자유분방함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명성황후는 약고추장을 좋아했다. 약고추장을 만들려면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화톳불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은은하게 달아오르는 고추장에 꿀과 다진 쇠고기를 넣고, 고기가 녹아 모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노비들이 이런 일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요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서울의 양반집 음식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약고추장이 드물어진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정교하고 손품 많이 가는 음식, 이를 만들던 노비들이 사라지자 음식도 같이 스러져 버렸다. 맛깔스러운 음식 안에 힘겨운 노동과 고통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먹거리 가운데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가꾸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권과 평등, 조화로운 삶을 나타내는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때, 한국 음식은 세계의 사랑을 받는 요리로 거듭날 것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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