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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99%의 노력과 ‘1%의 재력’

등록 2010-02-07 19:09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0. 100년 뒤에 사람들은 무엇으로 돈을 벌까? - 소유의 사회학
21. 천재의 조건- 노력일까, 재능일까
22. 왕자와 거지, 가난의 두 얼굴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에게는 누구도 맞서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했다. 하지만 해리 포터는 달랐다. 그의 이마에는 영광의 상처가 있다. 볼드모트가 덤볐음에도 살아남았다는 흔적이다. 신비한 힘이 자신을 감싸고 있기에, 해리 포터는 어둠의 마법사와 싸워 이길 수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의 이야기다. <해리 포터>는 왕후장상의 씨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신분제 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다. ‘영광의 상처’가 없다면 제아무리 노력해봤자 볼드모트를 넘어설 수 있겠는가. 살아가는 데 ‘주제 파악’은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타고난 위치가 별 볼 일 없다면, 위대한 인물이 되려는 꿈은 접는 쪽이 맞다. 신분이 분명하게 갈렸던 세상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생각이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하다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노력하면 천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배운다. 심리학자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누구라도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면 한 분야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차르트도 처음부터 뛰어나지는 않았다. 걸작으로 통하는 협주곡 9번은 그가 스물한 살 때 쓴 작품이다. 협주곡을 짓기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후였다.

LPGA를 주름잡는 우리의 여자 프로골퍼들도 비슷하다. 박세리 선수가 우리나라 선수로는 처음으로 LPGA에서 우승했다. 그 후 많은 소녀들이 제2의 박세리를 꿈꿨다. 10년이 흐른 지금, 1만 시간을 채운 숱한 선수들이 LPGA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글래드웰은 연습량에 따라 천재의 수준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엘리트 가운데 1만 시간을 채우지 않는 이들은 거의 없다. 반면, 그냥 잘하는 사람들은 8천 시간 남짓을 연습한단다. 남들을 취미로 지도할 정도의 사람들은 대략 4천 시간 정도에서 그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타고난 재능이 없이도 피나게 노력해서 천재가 되리라는 꿈을 품어도 좋겠다.

교육학자 하워드 가드너 역시 ‘다중지능’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멘사(MENSA)는 전체 인구의 2% 안에 드는 지능을 가진 이들만 가입하는 모임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멘사 회원들이 늘 천재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수학, 과학 등 몇몇 분야를 뺀다면,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여느 사람들과 별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드너는 지능을 7개 이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등등. 학교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이 높다. 시험지의 문제는 언어로 되어 있다. 답을 고르려면 논리적으로 앞뒤를 잘 따져야 한다. 당연히 언어와 논리수학지능이 좋은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손재주가 뛰어난데 기술시험 성적은 형편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회비 계산은 척척 해내는데 산수 풀이는 시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신체운동지능, 인간친화지능이 높은 학생들을 위해 시험을 다르게 보면 어떨까? 실기 위주, 응용문제 등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에게 맞는 지능을 찾아내 걸맞은 방법으로 평가받는다면 누구나 뛰어난 사람으로 될 수 있다. 가드너의 말은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한다고 외치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을 뒤집어 보면 우리 마음은 금방 무거워질 테다. 능력을 기르기 위해 1만 시간을 쏟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있을까?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이 부치는 형편이라면 이만한 기간을 교육에만 쏟기는 힘들다.

살림살이 괜찮은 사람들은 집중양육(concerted cultivation)을 통해 아이들을 기른다. 부모가 온종일 매달려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길러준다는 뜻이다. 스케줄을 일일이 챙기며 학원에서 학원으로 아이를 나르는 우리네 학부모들을 떠올리면 되겠다. 반면, 쪼들리는 부모들은 ‘자연적인 성장을 통한 성취'(accomplishment of natural growth)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이러저러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스스로 능력을 길러가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글래드웰은 어느 쪽이 성공에 필요한 1만 시간을 채울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져 묻는다. 잘사는 동네의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많이 간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다중지능도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느 분야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지를 알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학원 거리에는 소질과 적성, 능력을 알려준다는 연구소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과연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재능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경험과 검사들을 필요한 만큼 할 수 있을까?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노력에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 말을 노력을 많이 하면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에디슨이 말하려 했던 바는 정반대였다. 그의 진심은 아무리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없다면 절대 천재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었단다. 문제는 1%가 재능보다는 재력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성공의 조건은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농담의 재미는 가려운 현실을 꼭 짚어 긁어주는 데 있다. 과연 우리는 해리 포터가 ‘타고난 영웅’이기에 위대했던 세상과 얼마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을까? 학력이 신분처럼 되어가는 세상, 자꾸만 이 물음을 되묻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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