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지방에서 자란 나는 초등 4학년 때, 친한 친구 3명과 서울로 올라가서 자취하며 사는 걸 꿈꾸었다. 얼마나 자유롭고 얼마나 신날까? 만화처럼 코믹하고 드라마같이 멋진 일들이 날마다 펼쳐질 것 같은 상상. 부모님은 물론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무렵 모이기만 하면 즐거운 상상을 펼치고 헛된 맹세를 하며 열을 내었다. 중학교 때는 친구 예닐곱이 늘 몰려다니며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다. 여중생들 아니랄까봐, 친구끼리 손발이 오그라드는 편지도 주고받고, 음악도 같이 듣고, 친구 사촌오빠를 동시에 짝사랑하다가 속상해 울기도 하고 그랬다. 얼마 전 그중 한 친구가 ‘너 이거 갖고 있니?’ 하면서 삼십 몇 년 전에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는데, 세상에나! 일곱 명의 친구가 교복도 아닌 사복을 잘 차려입고 사진관까지 가서 아주 제대로 찍었다. 사진 아래 쓰인 문구가 압권이다. ‘일곱송이 수선화’, 이 유치 찬란한 이름이 우리들의 클럽 이름으로 급조된 것이었다. 1976년이란 당시 연도와 날짜까지 사진사님의 필기체로 선명하게 쓰여 있는 그 사진은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 저편의 일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중 한 명은 고인이 되었고, 고인이 된 친구의 상가에서 친구와 너무 똑같이 생긴 중학생 딸 때문에 울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지금 그 무렵과 비슷한 중 3인데, 얘는 아침시간이 문제였다. 7시 반쯤 여유 있게 먹어도 될 아침밥을 일찍 출근하는 엄마와 고3 형 때문에 새벽에 먹어야 하는 게 불만인데, 밥 먹고 나서 등교 전까지 남는 시간에 도로 자는 버릇이 들어 심심찮게 부모의 잔소리를 듣는다. 아침 여유 시간에 책이나 신문을 보거나, 학교 갈 준비를 하거나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밥 먹자마자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 자버리는 녀석을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아침 시간에 뭘 하면 장기적으로 너한테 가장 유익할까?”라고 물으면, “자는 게 제일 유익하죠. 건강에 좋잖아요!”라고 염장 지르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1년이나 아들과 입씨름을 하게 했던 그 버릇을 하루아침에 뚝딱 고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둘째가 와서 그러는 거였다. “엄마, 저 내일 아침부터 수영 다닐래요.” “엥, 정말?” “네, 친구들이랑 다니기로 했어요. 새벽반 갔다가 학교에 바로 갈 거예요.” 그러더니 진짜 다음날부터 6시20분에 일어나서 밥 먹고 챙겨서 나갔다. 늦잠은커녕, 조금 늦게 깨웠다가는 왜 더 일찍 안 깨웠느냐고 불평을 한다.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달째 새벽 수영반을 다니고 있다. 물론 친구 때문이다. 문자에 전화질을 계속 해대며, 친구가 딱 우리 집 앞에 오고, 둘은 만나서 길 건너 또다른 친구와 5분 뒤에 접선하는 거다. 오, 위대한 우정이여! 친구와 함께라면 고행과도 같았던 아침잠 깨기가 저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거야? 부모가 그렇게 배우라고 설득해도 겨우 여름방학에 마지못해 다니고 그만두었던 종목이 바로 수영인데, 이제는 접영 배운다고 아주 신나게 말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그렇게 안면 싹 바꾸는 거니? 큰아이는 1학년 때 친구 서넛과 아직도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밥도 같이 먹는다. 아이들의 우정의 세계에 대해 어른들은 잘 모른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네 친구들은 왜 그 모양이니?”라는 게 있었다. 친구를 무시하면 자기가 무시당한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친구가 자기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고현숙한국리더십센터 대표 helenko@eklc.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