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
[난이도 수준-중2~고1] “다음엔 ‘창문 뚫고 다이빙’이야.”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종영된 건 한 달 전의 일이다. 지훈과 세경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마지막 편에서 목도한 아이들의 눈은 글썽였다. 초딩 은서는 눈물을 닦은 뒤 말했다. “아빠, 다음엔 제목이 뭐야?” “무슨 제목?” “응, <거침없이 하이킥!> 끝난 뒤에 <지붕 뚫고 하이킥!>이었잖아. 다음엔 무슨 하이킥이야?” “두 번이나 하이킥을 했으니, 이번엔 다이빙을 해야지. <창문 뚫고 다이빙!>으로 한대.” 은서는 뭔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빠의 의뭉스런 표정을 읽었는지, 엄마와 오빠에게도 달려가 되물었다. 창문 뚫고 다이빙! 그럴 리가 있나. 농담이다. 투신자살을 부추기는 그런 반사회적 제목을 지을 리는 없다. ‘창문 뚫고 낙하산’이라면 모를까. ‘창문 뚫고 다이빙’은 내 어떤 마음의 병을 환기시켜주는 조어임을 고백한다. 6년 전 잡지에서 매주 시사풍자 칼럼을 쓸 때였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유머로 승부해야 하는 글이었다. 어찌 매주 재기 넘치는 글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오랴. 나의 모자람에 절망할 때마다 홀로 이렇게 울부짖어야 했다. ‘정말이지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 앞으로 이 연재물을 쓸 때도 그런 충동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두렵다. 증상이 심각해질 경우를 대비해 엉덩이에 본드라도 붙이고 자판을 두드려야 할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옛 직장 후배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수요일 밤만 되면 ‘건드리지 마시오’ 혹은 ‘누가 날 건드려 볼 테냐’ 모드가 된다. 여러분 글 쓰는 남자 사귀지 마요. 마감 날엔 사이코 혹은 미친개가 됩니다.” 글은 때로 변비 환자의 고통스런 똥 같은 것이다. 볼일 못 봐서 미친다. 이야기가 빗나갔다. 신세한탄의 요점은 다른 데 있다. 정작 요즘의 문제는 내 글쓰기가 아니다. 딸의 글이다. 황당하고 대책 없는 ‘무개념’ 문장들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복장이 터져 ‘창문 뚫고 다이빙’하고 싶을 지경이다. 지난주 이 칼럼에서 ‘일가족 글쓰기’의 장점을 찬양했다면, 오늘은 반대로 그 감춰진 그늘을 폭로하는 셈이다. “돌아가신 분이 무려 46명이나 됩니다. 46명이면 그 크고 무거운 오토바이를 들을 수 있는 수입니다. (중략) 나야 감동받아서 울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들의 가족들, 애인들, 친구들은 정말 너무 슬퍼서 울 것입니다.” 뭥미? 웬 오토바이? 천안함 침몰사고로 죽은 군인 아저씨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감동받아서 울지 않았다고? 뒤에 가선 울었다고 말을 바꾼다.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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