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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참공부’의 길로…대안학교, 제2도약 꿈꾼다

등록 2010-07-04 16:56

 대안학교인 ‘다산학교’ 학생들이 책을 읽고 와서 발표 및 토론수업을 하는 모습.
대안학교인 ‘다산학교’ 학생들이 책을 읽고 와서 발표 및 토론수업을 하는 모습.
‘문제 학생들 진학’은 옛말…공부로도 대안 모색 활발
‘왜 공부하나’ 문제서 출발…인문·철학 등 자기주도학습
배움 필요하면 대학도 진학…일부 입시에 매몰될라 우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야생동물이 무리지어 다니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어디 속해 있을 때 유리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은 ‘소속’의 안 좋은 예죠. 근데 이런 걸 없애버린 것도 어떤 집단이잖습니까.” 지난 6월28일,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대안학교인 ‘다산학교’의 한 교실에선 <파도>(이프)라는 책을 놓고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까?’라는 주제로 토론이 펼쳐졌다. 이 독서와 토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각자 찬반 의견에 따라 자리를 나눠 앉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짧게 말씀해 주세요.” 시간 초과를 알리는 사회자의 말에 토론자가 된 여섯명의 학생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개교한 지 5년째 접어든 이 학교는 말과 글, 수리, 인간과 삶, 과학과 생활, 열정과 희열 등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수업을 하면서도 ‘독서, 토론, 글쓰기’를 특화하고 있다. 매주 1권씩 1년에 40여권의 필독서를 읽게 돼 있어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고, 발표하고, 글로 쓰는 일은 학생들에게 꽤 익숙한 활동이었다. 이 학교가 읽고, 생각하고, 쓰는 활동을 중심축에 둔 이유는 이것이 ‘공부’의 기초체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박영규 교장은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게 학교의 본질적 목표”라며 “그걸 위해선 공부의 기초인 독서교육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인문적 토대가 있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토론, 발표를 자유롭게 해보면서 학생들은 학습의 주체가 되고, 공부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수업은 아이들을 자기주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양승원(고1)군은 “책을 무척 싫어했는데 읽을 환경이 주어지니까 자연스럽게 읽게 되고, 토론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더라”고 했다. 6개월 전, 자녀를 이 학교 1학년에 입학시킨 한 학부모는 “일반학교에 다닐 땐 학교 수업 듣고 끝나면 학원 가기 바빴던 아이가 고전뿐 아니라 요즘 나온 책들까지 다양하게 읽는 것 같아 그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비(미)인가 대안학교 고등학생의 진로 계획
비(미)인가 대안학교 고등학생의 진로 계획

이 학교 사례는 최근 들어 ‘공부’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으려는 대안학교의 한 흐름이기도 하다. 1997년 우리나라 대안학교 1호인 간디학교가 개교한 지 13년이 됐다. 그간 정보 부족이 낳은 대안학교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았다. ‘노는 애들이나 가는 곳’ 또는 ‘노작교육(학생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정신과 신체의 작업을 중심 원리로 하여 행하는 교육으로 주로 공작, 원예, 요리 등 손의 활동을 중심으로 함)만 하는 곳’이라는 낙인이다. 이런 오해가 풀린 상태에서 최근엔 ‘공부’를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김경옥 편집주간은 “그간 공부를 외면한 건 절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좀더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고,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맞는가’를 학교마다 고민하는 사례가 느는 것 같다”고 했다.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학생의 90.5%(해외유학 포함), 비(미)인가 대안학교 학생의 65.8%(해외유학 포함)(한국교육개발원, 2009.12 <대안학교 운영 실태 분석 연구>)가 대학 진학을 계획하는 상태다. 대안교육 특성화학교가 90% 공교육화하면서 ‘대안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비(미)인가 대안학교들의 ‘대안성’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철학과 목표, 방법론은 다르지만 인문학 등을 중심축으로 ‘공부’를 고민하는 대안학교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공부에 대한 학생의 자기주도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노력이다. 학생이 학습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은 본래 대안학교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 초 개교한 광주의 지혜학교는 ‘공부’의 본질을 고민하는 또다른 대안학교다. 이 학교는 전국 150여곳 대안학교 가운데 철학 교육을 특화한 첫 학교로 알려져 있다. 김창수 교장은 “‘철학학교’라고 소개가 됐는데 ‘철학하기, 인문하기를 가르치는 학교’라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했다. 철학적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철학하기, 즉 생각하기를 가르친다는 의미다. 김 교장은 “인간이란 무엇이고,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데 목표는 역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잘하는 학생’이란, 성실성에 기초해 자기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는 8월28일, 대안학교인 ‘고전학교 다산서원’ 개교를 준비중인 이양호씨도 ‘공부’에 대한 또다른 대안을 내놓으려고 한다. 다산서원은 “지성을 길러낸다”는 뜻에서 학문의 기초인 고전 교육을 심도 있게 진행하고, 흔히 도구학문이라고 불리는 수학·과학 등에서도 각각 이 학문의 기초 정신과 철학부터 기본적으로 가르칠 예정이다. 이씨는 “공부는 인성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반비례한다고 여기는 풍토가 그동안의 교육에서 있었지만, 우리는 각 학과목의 기본 정신을 알려주면서 모든 과목의 공부가 인성과 관계없는 교과목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며 “도덕적 인성을 가진, 공부 잘하는 학생을 배출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대안학교들은 대학 진학을 무조건 부정하지 않으면서 공부의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이씨는 “진학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진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남을 밟고 올라서는 식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진학을 하느냐와 공부를 깊이 있게 해서 자기 철학을 갖고 진학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교장은 “대안이 의미 있으려면 문제점을 보완해 실현 가능한 변화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며 “대학 진학을 꿈꾼다 해도 단순히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진로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가도록 돕고, 지성인이 되도록 풍부한 교양과 글쓰기 실력을 갖추도록 돕는 게 학교의 몫인 거 같다”고 했다.

일부에선 자칫 대안학교가 생각하는 ‘공부’나 ‘실력’의 의미가 변질돼 ‘입시에 맞춤한 실력 양성소’가 될까 우려하기도 한다. ‘인문학’을 문패로 건 한 대안학교에 입학한 학생 ㄱ군은 “입학설명회 때와 입학한 다음의 커리큘럼이 많이 바뀌었는데 어떤 과목은 학원처럼 수업을 해 실망했다”며 “학교를 세우기 전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더군다나 교육 주체인 부모들이 대놓고 ‘입시 교육’을 바라보고 대안학교를 찾는 일도 적지 않다. 다산학교 박 교장은 “우리 학교를 그만둔 학생의 학부모 가운데에는 왜 특목고처럼 못 가르치느냐, 공부를 왜 더 시키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김경옥 주간은 “대안교육의 스펙트럼은 참 넓고, 넓어지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대안교육에서 논의해야 할 ‘실력’이란 어떤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며 “남과 더불어 살아가자는 대안교육의 핵심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대안학교의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고, 이것이 공교육에 여러가지 상상과 영감을 주면서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지렛대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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