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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의미있는 ‘인공언어’ 만들기

등록 2010-08-01 16:05수정 2010-08-01 16:08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44. 내가 이 땅에서 고생하는 이유는-지정학자의 눈에 비친 세상

45. 영어는 왜 공용어가 되었을까?-정글 속 언어들의 생존게임

46. 잡식 동물의 딜레마, 튼실한 영혼을 만드는 건강한 식사법

일본어로는 낯선 이의 이름을 부르기가 조심스럽다. 일본어에서는 이름의 한자가 그때그때 다르게 소리 나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Reagan)은 한동안 한국 내에서 ‘리건’이라고 불렸다. 처음 이름을 본 사람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사회가 별 탈 없이 돌아가니 신기할 뿐이다.

프랑스 말은 더욱 놀랍다. 프랑스어로 ‘91’을 말하려면 ‘4×20+11’이라고 해야 한다. ‘90’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프랑스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어느 나라 말에나 안타까운 모습들이 몇 개씩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언어는 수식(數式)에 견주면 어설프기만 하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식으로는 간단하게 표현된다. “빗변의 길이를 c, 다른 두 변의 길이를 각각 a, b라고 하면, a²+ b² =c²이다.” 이를 문장으로 풀어주면 어떨까?

“중간 항들의 곱셈(그것은 바로 첫째 직사각형에 포함되는 변의 제곱이다)에 의해 긴 변과 짧은 변으로 이루어지는 직사각형과 같은 두 개의 값이 나오며, 그 합은 방정식에 의해 빗변의 제곱과 같고….”

곱셈, 덧셈 등을 나타내는 기호가 없던 시절, 여느 수학자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설명한 구절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감 잡기조차 어렵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언어에 대한 불만은 커졌다. 수식처럼 간단하면서도 오해 없이 생각을 나타낼 방법은 없을까?

언어학자들이 궁싯거리며 내놓은 인공 언어(Artificial Language)들은 무려 700여개에 이른단다. 인공 언어의 기본틀은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에 잘 나타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교통사고 재판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재판에서는 설명을 위해 모형 차와 인형이 쓰였다. 모형을 가지고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형 차와 인형이 실제 차와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문장 하나하나가 실제 사실(The Facts)을 일대일로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문장과 사실은 똑같은 논리 구조로 되어 있다. 때문에 언어는 그림처럼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오류 없는 정확한 문장은 어떤 것인지, 세상과 언어를 이루는 논리구조를 어떻게 나타낼지 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많은 언어학자, 과학자들은 정확하게 세상을 그려낼 언어를 만드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로지반(Logjiban)은 이런 노력으로 태어난 언어이다.

이상적인 언어를 만드는 작업은 세계 평화와도 맞닿아 있다. 19세기 말, 사람들은 언어를 중심으로 제각각 뭉치기 시작했다. 독일어를 쓰는 이들은 ‘독일 민족’,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프랑스 민족’으로 여겨졌다. 언어는 민족을 가리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언어로 갈린 사람들끼리는 끊임없이 다툼을 벌였다. 세상이 편안해지려면 모두가 같은 말을 쓰면 되지 않을까? 서로 같은 말을 쓰면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게 될 테다. 에스페란토 등 지금도 쓰이는 인공언어는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 언어에는 영어, 프랑스어 같은 ‘국제어’보다 나은 점이 있다. “한국인, 브라질인, 스웨덴 사람이 영어로 대화를 한다 해보자.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어를 아주 잘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신이 앵글로색슨족이 된다는 느낌은 없다. 그러나 에스페란토를 쓰는 이들끼리는 다르다. 한국인, 브라질인과 함께 에스페란토를 말하는 스웨덴인은, 세 사람 모두 특별한 문화 집단을 이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언어학자 에리카 오크런트의 설명이다. 이를 듣고 나면,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언어가 어떻게 세상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인공언어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직까지 없다. 새로운 말이 뿌리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지반 같은 언어는 정교하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복잡해서 이 말로 대화를 나누기는 무척 어렵다. 에스페란토는 또 어떤가. 에스페란토의 상징인 녹색별은 ‘괴짜’ 표시처럼 여겨진다. 너무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등 세상의 대부분의 말은 누가 만들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절로 생겨났을 뿐이다. 언어는 ‘자연’에 가깝다. 자연에는 손을 댈수록 문제만 많아진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언어는 디엔에이(DNA)를 조작해서 만든 인공 생명체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1997년, 한국의 여객기가 괌 공항에 추락했다. 심리학자들은 한국어도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장과 부기장은 누구라도 먼저 위험을 느끼면 상대의 일에 끼어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높임말이 있다.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누가 위인지가 가려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테다. 이 사건 다음부터, 항공사는 비행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게 했다. 영어로 나누는 일상의 대화에서는 서열이 드러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자신들의 모국어를 더 낫게 만들 수는 있다. 우리말에 없는 좋은 점이 다른 나라 말에는 있을 수 있다. 새로운 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숱한 언어들의 장단점을 살피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말의 단점은 무엇일까? 말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바뀌면 내용의 모양새도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꾸는 문제보다 언어에 담긴 가치관을 점검하는 일이 더 급하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이상한 나라의 언어씨 이야기> <논리철학논고>
<이상한 나라의 언어씨 이야기> <논리철학논고>
<이상한 나라의 언어씨 이야기>
에리카 오크런트 지음, 박인용 옮김 함께 읽는 책

<논리철학논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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