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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문학소녀 말고 저널소녀

등록 2010-08-22 15:29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17 /
[난이도 수준-중2~고1]

그 많던 문학소년·소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문득 그들을 떠올렸다. 교내 백일장에서 수상을 도맡아 하던 학교 친구들, 문학의 밤 무대에 나와 수려한 문장과 차분한 음성으로 수필을 낭독하던 교회 친구들, 긴 생머리에 센티멘털한 표정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따위를 품에 안고 다니던 이웃 여학교 친구들. 그들은 지금도 가슴속의 작은 불꽃을 간직하고 있을까. 여전히 어딘가에 글을 끼적거릴까.

문학소년과 문학소녀는 글 쓰는 이들의 어린 시절을 상징한다. 그 길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동경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꿈을 키웠다. 오늘은 이를 대체할 만한 새 시대의 글쓰기 소년·소녀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널소년, 저널소녀!

문학소년이 환상에 탐닉하다면, 저널소년은 실상에 탐닉한다. 문학소녀가 감상에 젖는다면 저널소녀는 팩트에 젖는다. 농담이다. 과장된 이분법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어린 친구들에게 다른 길도 있음을 알려주고자 할 뿐이다. 저널소년은 다른 말로 시사소년이다. 중딩 준석과 초딩 은서에게 그 기초훈련을 시켜보았다.

훈련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에게 8월9~13일의 한 주치 신문과 인터넷매체를 뒤져보게 했다. ‘이주의 10대 뉴스’를 중요도 순서대로 선정한 뒤 그 이유를 적도록 했다. ‘10대 뉴스’라는 말을 던지자 은서는 “아하! 10대들의 뉴스?”라고 반문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준석과 은서 모두 10대다. 10대 눈높이에서 본 10가지 뉴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첫 결과물은 엉터리였다. 둘 다 신문 섹션에서 흥미 위주로 다룬 ‘여름 공포이야기’를 톱뉴스로 선정했다. 각각 미국과 한국의 귀신 소동이었다. “뉴스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객관적이고 의미 있는 사건이나 사실을 일컫는 거야.” 아빠의 지적에 준석과 은서는 다시 움직였다.

준석이 최종적으로 뽑은 톱뉴스는 ‘시내버스 폭발’이었다. 이유는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였다. 무난해서 탈이다. 이에 비해 은서는 파격적이었다. ‘페라리 458 이탈리아’의 사고 소식이 톱이었다. 왜 하필 ‘페라리’냐고 따졌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페라리 사고가 넘 신기해서 미치겠단다. 은서가 뽑은 나머지 아홉 가지 뉴스의 선정 근거들도 웃겼다. “과자에서 벌레가 그렇게 많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새우깡’ 쥐벌레) “엄마가 아이를 방치해 놨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다.”(일본 엄마 아이 방치)


유치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시사문제와 친숙한 관계를 맺는다. 조금씩 현실세계에 관한 호기심을 키워간다. “왜 꼭 이게 10대 뉴스여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뉴스의 흐름과 배경,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논리적 글쓰기의 토대다.

초·중·고교 교장선생님들껜 ‘10대 뉴스’를 특별활동에 응용해보길 권한다. ‘신문반’을 형식적으로 운영할 바엔 ‘10대 뉴스반’을 신설하는 쪽이 낫다. 매주 또는 매월, 학생들 각자만의 10대 뉴스를 발표한 뒤 난상토론을 거쳐 종합 10대 뉴스를 결정하는 거다. ‘가장 웃기는 뉴스 10’으로 범위를 좁혀도 상관없다. ‘내 맘대로 톱 10 놀이’로 명명하고 즐기듯이 하면 더 좋다. 매회 이 내용을 재료 삼아 에세이나 논술을 써본다면, 마침내 저널소년·소녀의 꿈은 익어간다.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1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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