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1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1
[난이도 수준-중2~고1]
‘띄어쓰기’ 작작 하자고 ‘떼쓰기’ 하고 싶다.
자랑스러운 한글이 못마땅할 때가 있다. 영어가, 일본어가, 중국어가, 타이어가, 베트남어가 한글보다 더 훌륭해 보이다니! 머리 아픈 띄어쓰기 탓이다. 대부분의 외국어는 단어와 단어를 아예 떨어뜨리지 않거나(중국어, 일본어, 타이어), 하더라도 복잡하지 않다.(알파벳을 쓰는 언어권. 가령 for와 you를 붙일지 말지 고민하지 않는다)
20여 년간 직업적으로 글을 썼지만, 아직도 띄어쓰기엔 젬병이다. 맞춤법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 경우의 수가 많아 법칙을 외운다고 되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기자들 중 상당수도 글을 쓰며 ‘띌지 말지’ 헷갈려한다. 가령 이런 경우를 보자. ‘다시한번’인가, ‘다시 한번’인가, ‘다시 한 번’인가. ‘해볼만하다’인가, ‘해볼 만하다’인가, ‘해 볼 만하다’인가, ‘해 볼 만 하다’인가. 틀리는 일이 하도 잦다 보니 편집국장이 극단적 처방을 내린 적도 있다. 매주 잘못 띄어 쓰는 기자들의 이름과 횟수를 공개했다. 교실에서 떠들다가 칠판에 이름 적힌 학생처럼 스트레스 뻗쳐 하던 후배 한 명이 생각난다.
먼저 198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한글맞춤법 제5장 띄어쓰기 편을 요약해보자.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한마디로 이렇다. “모든 낱말끼리는 떨어져 지낸다.” 여기엔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첫째 ‘접접조어’는 붙인다. ‘접접조어’는 내가 만든 말이다. 기왕이면 ‘쩝쩝조어’로 발음하고 싶다. 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미는 붙인다는 이야기다. 둘째, 아예 한 낱말이 된 것은 붙여 쓴다. 가령 ‘띄어쓰기’는 붙이지만 ‘띄어 쓴다’는 띈다. 전자는 하나의 낱말로 굳어졌고, 후자는 ‘띄어’와 ‘쓴다’라는 두 동사가 합쳐진 거라서다.
‘쩝쩝조어’는 ‘첩첩산중’이다.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접두사와 접미사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조사와 어미가 문제다. 띄어 써야 하는 의존명사가 조사·어미인 듯 보일 때가 많다. 가령 ‘졸업장을 따는 데 목적이 있다’에서 ‘데’는 의존명사인가 어미인가.(의존명사라서 띈다) ‘학부모의 고통이 큰데도’에서 ‘~ㄴ데’는 의존명사인가 어미인가.(어미라서 붙인단다) ‘하나로 굳어진 낱말은 붙인다’는 원칙도 정황을 잘 살펴야 한다. ‘잘되다’는 붙이지만 ‘잘 벌다’는 붙이지 않는다. 앞의 ‘잘되다’는 한 낱말이고 뒤의 ‘잘 벌다’는 부사와 동사의 결합이다. ‘독립된 낱말로 인정받는’ 기준도 모호하다. ‘사려깊다’, ‘굶어죽다’, ‘자리잡다’, ‘이름하여’, ‘쉼없이’, ‘속시원하다’는 한 낱말인가. 아니다. ‘사려 깊다’, ‘굶어 죽다’, ‘자리 잡다’, ‘이름 하여’, ‘쉼 없이’, ‘속 시원하다’로 띄어야 한다.
띄어쓰기 규정을 읽다 보면 낱말끼리의 짝짓기 중매 본능을 강하게 느낀다. ‘전 세계’를 ‘전세계’로 쓰고 싶다.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들도 본드를 발라 찰싹 붙이고 싶어 죽겠다.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 “육 개월 이십 일 체류했다.” 짜증난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고 울부짖을 것만 같은, 이산가족이 된 불쌍한 낱말들.
그 낱말들이 북한 체제를 동경할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남한보다 붙여 쓰는 경우를 훨씬 폭넓게 인정한다. ‘사회주의농촌건설속도’ ‘리순신훈장’처럼 명사들끼리 어울릴 때도 대개 붙여준다. ‘말할나위가 없다’ ‘회의중이었다’처럼 의존명사도 마찬가지다. 동사와 형용사도 찰싹 붙는다. 관형사와 부사도 외롭지 않다. 북한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띄어쓰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필요해 보인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그 낱말들이 북한 체제를 동경할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남한보다 붙여 쓰는 경우를 훨씬 폭넓게 인정한다. ‘사회주의농촌건설속도’ ‘리순신훈장’처럼 명사들끼리 어울릴 때도 대개 붙여준다. ‘말할나위가 없다’ ‘회의중이었다’처럼 의존명사도 마찬가지다. 동사와 형용사도 찰싹 붙는다. 관형사와 부사도 외롭지 않다. 북한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띄어쓰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필요해 보인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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