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내부고발자’ 이문옥 총선 승리 도우려 광주로 / 이이화

등록 2010-12-28 09:00

1990년 5월 감사원의 재벌기업 감사 결과 은폐를 폭로해 구속됐다 풀려난 이문옥 감사관이 그해 7월22일 김대중 당시 민주당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김관석 통추회의 상임대표로부터 ‘용감한 공무원상’을 받고 있다.
1990년 5월 감사원의 재벌기업 감사 결과 은폐를 폭로해 구속됐다 풀려난 이문옥 감사관이 그해 7월22일 김대중 당시 민주당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김관석 통추회의 상임대표로부터 ‘용감한 공무원상’을 받고 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55
1990년 나를 슬프게 한 사건이 또 하나 일어났다. 그해 5월 11, 12일치 <한겨레신문> 머리기사로, 이문옥 감사관의 양심선언 사실이 실렸다. ‘재벌의 로비로 감사원 감사가 중단된 사실과 재벌기업의 부동산 보유 비율이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훨씬 높은 43.3%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속 보도의 제보자인 이문옥이 바로 재벌 감사 담당이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 땅투기를 일삼는 재벌기업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었고, 이문옥은 5월15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서 재벌의 압력으로 관련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고, 감사관에게 압력을 넣은 ‘윗선’은 바로 청와대라고도 추가 폭로를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이 감사관의 즉각 석방과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소유현황을 즉각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그를 옹호하는 여론도 들끓었다.

이문옥은 사실 나와 광주고 동기동창이다. 나는 그를 지지하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대회에도 참여했고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양심선언 20돌을 맞아 지난 5월11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념행사 자리에서 만난 이문옥이 ‘그때 친구들도 거의 외면하더라’고 말해서 나는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고 농담 아닌 진담을 하기도 했다.

이문옥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내부 고발자’라는 말이 유행어로 등장했다. 여론의 압력을 의식한 까닭인지, 다행히 이문옥은 구속된 지 한달 보름 만에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에도 그는 줄기차게 파면에 항의해 복직 투쟁을 벌였고 쉼없이 관계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용기 어린 행동이었다. 또 ‘공직신고자 보호법’을 국회에 내기도 했다. 나는 무엇보다 그에게 용기를 주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문옥이 이런 활동을 벌이는 와중인 92년 3월 14대 총선을 맞이했다. 앞서 13대 때 광주에서 당선된 야당 민주당의 신아무개 의원은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8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단일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정치현실을 목격했다. 그래서 14대에서는 다음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이었다. 광주의 인사들, 곧 기독교 여성운동가인 조아라 여사와 불교민주운동가인 지선 스님 등이 민주시민후보로 이문옥을 추대했다. 이문옥은 사양했으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응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선거기간 광주로 달려갔다. 그때 나는, 첫째 정치지형에 따른 지역감정을 깨야 한다는 것, 둘째 다음 대선의 승리를 위해 광주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한 이문옥과 부산의 민주당 후보인 노무현이 당선돼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결코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문옥 후보를 도우려 광주에 내려간다고 하자, 역문연 관계 인사들과 역사강좌에 출강하던 성심여대 교수들이 십시일반 후원회비를 모아 주었다. 나는 열심히 선거운동에 나섰다. 특히 계림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세에서 나는 찬조연설 연사로 나서, 공직사회의 청렴한 기풍을 불러일으키고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정치 편향을 지양하려면 광주에서 이문옥, 부산에서 노무현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때 광주 시민들의 여론은 아주 우호적이었고, 약이며 음료수며 후원금을 모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김대중 총재가 신아무개 후보 지지유세를 벌이자 분위기는 반전되고 말았다. 결과는 노무현·이문옥 모두 낙선이었다. 이문옥은 후일담으로 “부산에서는 김영삼 쪽으로 똘똘 뭉쳤다라는 지역감정 자극과 이문옥은 공무원 출신이어서 당선되면 민자당으로 간다는 따위 헛소문이 떠돌아 상심이 컸다”고 했다.(역문연 회보의 ‘시민운동가가 겪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 대목에서 이문옥을 포함해 ‘광고 7회 민주운동가 4인방’을 소개해야겠다. 박재승은 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가 당선되면 선거가 없는 총통제가 실시된다는 등의 유세 발언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되었을 때 담당 판사로 무죄를 선고해 미운털이 박혀 3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이후 변호사로 한겨레신문 감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내며 민권운동가로 헌신하고 있다. 오종렬은 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출범에 앞장선 이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가로 열정을 바치고 있다. 또 한 친구, 표명렬은 육군 정훈감 출신의 장성으로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의 비리를 알리고 평화재향군인회 대표로 사재를 털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성격이 온순하고 정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도 걸맞지 않게 왜 투사가 되었을까? 시대 탓일 게다.

이이화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