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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영업직원으로 위장해 ‘중국 답사’ 첫발 디뎌 /이이화

등록 2010-12-29 08:04수정 2010-12-29 11:02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56
나는 한길사·역사문제연구소·<역사비평>으로 이어진 역사기행을 이끌면서도 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한국사가 전개된 한반도 전역을 돌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사의 현장인 대동강 주변과 만주 일대를 가볼 수 없었고, 고려사에서도 개성 일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근현대 독립운동의 중심 무대였던 중국 땅에도 가볼 수가 없었으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문제들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88년 서울올림픽에 중국이 참가하면서 교류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나 남한과 정식 수교는 되지 않았던 무렵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여강출판사 이순동 사장이 중국이나 북한 관련 자료집을 낼 계획을 세우고 내게 자문을 해왔다. 그러다 나와 함께 중국을 답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시에는 안기부의 허가를 받아야 중국에 갈 수 있었고, 또 학자나 문인들은 허가를 내주지 않고 기업인이나 무역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서 여행허가를 내주었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여강출판사 영업부 직원으로 위장해서 가기로 했다. 이는 새로운 모험이요 탐구인 셈이었다.

드디어 90년 8월 초순, 우리 일행 5명은 ‘중국 장정길’에 나섰다. 50대 중반까지 ‘순수 토종’으로 불려온 나로서는 사실 첫 외국 나들이였다. 김포를 출발해 홍콩을 거쳐 중국 본토로 들어갔다. 베이징까지 직항이 없어서 돌고 돌아 서우두국제공항에 내렸을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들떠 있었다.

나는 천안문광장 한가운데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조선의 사신들이 남문을 통해 벌벌 기면서 자금성에 들어왔을 바로 그곳이었다. 왼쪽으로는 혁명박물관·역사박물관·마오쩌둥주석기념당, 오른쪽으로는 인민대회당이 거대하게 서 있었다. 북쪽을 향해 돌아서니 천안문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자금성(고궁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천안문 위의 한가운데에는 역시 거대한 마오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그 왼쪽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오른쪽에는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구호가 붉은 바탕에 흰 글씨체로 선명하게 보였다.

동방의 대제국이 오늘날 과연 세계 인민의 공화국이 됐을까?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일행은 감탄도 해보였으나 나는 “큰 것만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질투가 아니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금기둥을 세우고 대리석을 깐 화려한 궁궐을 지었다고 인민을 사랑하고 정치를 잘한 게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화원을 둘러볼 때는 ‘나라가 망해가는데 이런 화려한 황실 별장을 짓다니….’ 근대 초기 서구 제국주의 국가에 유린당한 게 마땅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만리장성은 그렇다 치고, 지하 50m 아래에 조성한 13릉의 하나인 정릉(만력황제릉)을 보고는 역사학자로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흔히 조-일 전쟁(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서 국력을 소모해 명나라가 망했다고들 했다는데 30년 동안 이 화려한 묘를 짓느라 엄청난 국력을 소모해 왕조가 자멸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문화유산은 될지언정 ‘인민을 위한 정치의 표상’은 아닐 것이다.

이순동 사장은 자기 나름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먼저 민족출판사를 방문했다. 국영이어서인지 거대한 규모였다. 이곳 조선어 출판 책임자인 한국선 선생을 만났다. 한 선생은 처음에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남쪽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출판에 대해서는 거의 물어보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가더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몽골어·티베트어·위구르어 등의 문자로 책을 찍는데 경비는 물론 중국 정부에서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부담한다고 했다.


조선어로 찍어낸 책들로는 <조선어 사전>이나 박지원의 저작선집, 야담집 등이 보였다. 50년대에 설립된 이 출판사에서는 그때까지 3000여종을 찍었는데 100만권을 찍은 책도 있다고 했다. 소수민족 출판물 중에서는 발행 종수와 부수로 따져볼 때 조선어 책이 가장 많다고 했다. 그 책의 내용을 훑어보니 우리말 문장이 매우 아름답고 구수한 맛을 깔고 있었다. 이 작업에는 조선족 동포 작가와 번역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베이징대학의 조선문화연구소를 찾아갔다. 활동은 미약해 보였지만 나름 조선어언문학 전공자들의 중심활동공간이었다. 다만 남쪽에서 보내준 책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여강출판사나 아세아문화사에서 보내준 자료들은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베이징대학 구내에는 서울의 대학들처럼 대자보가 곳곳에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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