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베이징·선양·단둥서 ‘역사의 흔적’을 좇다 / 이이화

등록 2010-12-30 09:12

1990년 여름 중국 기행에 나선 필자가 랴오닝성 선양에서 가장 먼저 가보았던 조선족 밀집지역인 서탑거리의 2001년 풍경. 당시에도 조선어 간판으로 가득 찼던 이 거리는 92년 한-중 수교 이후 교역의 중심지로 떠올라 화려하게 번창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여름 중국 기행에 나선 필자가 랴오닝성 선양에서 가장 먼저 가보았던 조선족 밀집지역인 서탑거리의 2001년 풍경. 당시에도 조선어 간판으로 가득 찼던 이 거리는 92년 한-중 수교 이후 교역의 중심지로 떠올라 화려하게 번창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57
1990년 여름 중국 기행에 나선 일행은 도착 첫날 베이징도서관에서 조선족 출신인 김국현 교수를 만나 조선어 자료나 우리의 역사 사료들을 알아보았다. 우리나라 옛 책의 선본 50여종이 보존되어 있고 청일전쟁 관련 자료들이 아주 많았다. 김 교수의 주선으로 어렵게 도서목록을 구입했다. 여강출판사 이순동 사장은 아주 진지해서 자료 수집이나 출판 관련 일에 내가 지루해할 정도로 열중했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사정도 궁금했다. 베이징 시내에는 조선족 500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거주 이동만 허락하는 중국법에 따라 호적은 옮길 수 없었다. 그래도 조선족은 다른 소수민족들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편이었다. 교육열이 높아서 조남기 같은 고위 장성 또는 장관급도 여럿 배출했다. 1년에 두차례, 곧 설이나 추석날이면 700~800명이 모여 윷놀이·널뛰기·그네놀이 등 우리 전통 풍습을 즐긴다고 했다.

일행은 베이징에 그렇게 점만 찍은 채 선양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요동반도를 거쳐 끝도 없는 옥수수밭 위를 날았다. 선조들이 말 달리던 고구려 땅이 아닌가? 선양에서는 요녕민족출판사의 전정환 등이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북릉과 고궁박물관과 심양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북릉은 조청전쟁(병자호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해 남한산성 아래에서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침략자, 태종의 무덤이지만 청나라를 세운 여진들은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우리 왕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해마다 6월이면 인근 조선족 5000여명이 모여 민족축제를 벌이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다음, 고궁박물관은 바로 청조의 궁궐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물론 경복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규모가 컸지만 우리 궁궐이 자연미를 살린 데 비해 인공적이어서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연거푸 안내원이나 전정환 등에게, 조청전쟁 뒤 인질로 잡혀온 소현세자와 척화파-주화파로 갈라져 갈등을 일으키다가 잡혀온 김상헌·최명길 등이 살거나 갇혀 있던 감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다행히 훗날 두 곳 다 발굴돼 요즘엔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선양박물관에는 만주 일대에서 일어난 왕조들, 곧 고구려·발해·요·청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공간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아직은 ‘동북공정’이 시작되지 않아서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작 내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시내 외곽에 있는 서탑거리였다. 이곳은 조선 후기부터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하지만 일정에 쫓겨 밤이 돼서야 서탑에 가보니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훗날을 기약하고 돌아서야 했다. 두번째 답사 때는 현지 시장과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조선족은 아파트에서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단골처럼 이곳을 찾았는데 요즈음에는 화려한 거리로 바뀌었다.

우리 일행은 화평구 북마일로에 있는 요녕민족출판사를 방문했다. 이곳 주변에는 일제 때 건물이 즐비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출판사 관계자들의 초대를 받았는데 장소는 북대가에 있는 천지(天池) 대주점이었다. 이 주점은 중국과 북한이 합작해서 경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흥겹게 떠들고 마시고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아리따운 조선족 출신 여성인 김영 사장이 나와 환영 인사를 했고 조선족 출신 종업원 아가씨의 간드러진 노래도 들었다. 전정환은 당시 북한의 최신 유행가 ‘휘파람’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다시 봉천참에서 단둥행 기차를 탔다. 애초 압록강 일대는 답사 일정에서 빠져 있었는데 내가 강요하다시피 해서 간 것이다. ‘단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옛 이름인 ‘안동’(동쪽을 편안케 한다는 뜻)을 ‘동쪽을 붉게 한다’는 뜻으로 바꾼 것으로, 중국의 저의가 엿보이는 개명이었다.


북-중 국경을 가로지르는 압록강에는 다리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1911년 일제가 대륙 침략의 가교로 만들었는데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이를 복구하지 않고 ‘미제 침략’을 상기시키는 전쟁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었다. 또다른 다리는 43년 완공됐는데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았으나 보수해서 통행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다리 입구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해관이 있다. 해관 앞까지 가보니 북한의 보따리장수들이 긴 줄을 이루고 짐 검사와 도강증을 확인받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방관자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나를 의식하지 않은 듯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역사학자

<한겨레 인기기사>

연평도 주민 도운 찜질방 ‘경영난’
“중 대함 미사일 수년내 실전 배치”
돌아온 영구 '라스트 갓파더', 예매사이트 석권 ‘1위’
“북 도발 부른 연평도 포격훈련, 통상훈련 아니었다”
용산참사 합의 1년…빈대떡 장사나선 권명숙씨
MB “6자회담 통해 북핵폐기”…‘북핵 협상서 고립될라’ 우려 반영
대법 “국정원 급여는 배우자에게도 비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