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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압록강 유람선서 북녘 바라보며 ‘눈물바람’

등록 2010-12-31 11:21

1990년 8월 첫번째 중국기행에서 북-중 경계인 단둥에서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만 봐야 했던 필자는 민족 이산의 아픔에 겨워 목놓아 울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폭파된 압록강 철교 사이를 지나는 유람선 건너가 북녘 땅 신의주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8월 첫번째 중국기행에서 북-중 경계인 단둥에서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만 봐야 했던 필자는 민족 이산의 아픔에 겨워 목놓아 울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폭파된 압록강 철교 사이를 지나는 유람선 건너가 북녘 땅 신의주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58
1990년 8월 북-중 경계인 압록강변 단둥의 해관 앞에서 발길을 돌린 우리 일행은 유람선 타는 곳으로 갔다. 유람선은 하류를 돌아 신의주 주변까지 다가갔다 위화도를 돌았다. 북한 땅을 바라보니 ‘묘향산각’이라 쓰인 큰 건물 앞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위대한 주체사상 만세’라거나 ‘조중친선만세’ 같은 붉은 글씨로 쓴 펼침막도 보였고, 한가로이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유람선에는 슬픈 사연이 많이 얽혀 있었다. 한 이산가족이 단둥에서 북한에 있는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몇날 몇시에 유람선을 타고 형은 노란 깃발, 누나는 빨간 깃발을 흔들 테니 북쪽의 어머니와 동생은 강 언덕으로 나와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서로 약속을 했단다. 마침내 약속한 날이 되자 한쪽은 유람선에서, 한쪽은 강 언덕에서 손수건을 흔들어댔다. 유람선이 차츰 멀어지자 강 언덕에 있던 친지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유람선에 있던 이들도 통곡으로 화답했다. 이 비슷한 얘기들은 수없이 널려 있었다.

내가 북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더니 더러 손을 흔들면서 대꾸를 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목이 자꾸 울컥거리는가 싶더니 끝내 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러다가 억제하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면서 서럽게 울고 말았다. 옆에 있던 중국 관광객들이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은 내 가족이 북한 땅에 있는 것으로 지레짐작한 것 같았다. 우리 민족이 무슨 업보를 졌다고 이렇게 오래 분단된 속에서 때로는 전쟁까지 벌이면서 혈육끼리 헤어져 살아야 한단 말인가?

훗날 두번째로 박완서 선생과 왔을 때에도 내 눈물병이 도져서 다시 서럽게 울었더니 박 선생은 돌아와 기행문에 “사내가 저처럼 서럽게 우는 걸 처음 보았다”고 써서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보고 ‘감상적 민족주의에 젖어 있다’고 말하지는 말라. 제아무리 그럴듯한 용어를 붙여본들 민족의 비극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쯤에서 압록강의 섬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62년 북한과 중국은 국경조약을 맺으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섬들에 대한 의정서도 교환했다. 모두 451개의 섬 중에서 북한 영유 264개, 중국 영유 187개로 확정했다. 압록강에는 205개의 섬이 있는데 그 3분의 2쯤이 북한 땅이 되었고, 압록강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입구의 비단섬과 위화도도 포함되었다.

아무튼 더는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우리는 선양공항에서 연길행 비행기를 탔다. 겨우 30명 남짓 태우는 구형 프로펠러 항공기여서 비행이 아니라 곡예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비행기가 아슬아슬 백두산 언저리를 돌아갈 때에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마침내 연길공항에 내려 밖으로 나오자 곳곳에 한글 간판과 초가가 반가웠다. 전발(電髮·파마), 단고기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유일한 호텔인 백산호텔은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남쪽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다. 연길은 당시 동북지대에만 180만명의 동포가 사는 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이니만큼 알아볼 것과 장사할 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참으로 바쁘게 연길 시내를 돌아다녔다. 모험에 나선 소년처럼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조선식당도 널려 있었다.

우리는 조선족의 가정집에도 가보았다. 동행한 최경환(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의 숙부인 최서준 선생의 초대를 받았다. 연길시 외곽에 있는 그의 집은 연립주택처럼 잇대 지은 단층집이었다. 살만한 것으로 보였지만 공용화장실은 우리를 질색하게 만들었다. 기르던 개를 잡아 개고기 요리를 푸짐하게 담아 내왔다. 조선족들은 모두들 아기자기하게 정이 넘치게 살고 있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연변대학에 가서 민족연구소의 박창욱 교수 등을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 또 연변대 도서관장인 최정국 선생을 만나 자료들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마침 북한에서 완간한 <이조실록>이 눈을 끌었다. 태항산지구에서 조선의용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가 다리를 다친 원로작가 김학철 선생과 <몽당치마>로 명성을 얻은 중견작가 임원춘 선생도 만났다.

해란강을 맴돌아 용정에 가서는 용두레우물과 대성학교를 둘러보면서 우리 동포의 이주역사와 민족교육의 현장에 서 있는 감회에 젖기도 했다. 또 용정에 있는 일본영사관의 옛 건물을 찾아보고 이곳까지 뻗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 지배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잡다한 얘기보다는 민족모순이 엉킨 현장 얘기가 좀더 실감이 날 것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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