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6. 잡식동물의 딜레마 - “싸고 푸짐한 먹거리의 비밀”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조윤정 옮김/다른세상
거위 간으로 만든 푸아그라에는 지방이 가득하다. 삼중치즈는 또 어떤가. 콜레스테롤이 철철 넘친다. 먹고 나면 혈관이 꽉 막힐 듯싶다. 파스타는 기름기로 번들거린다. 프랑스인들은 여기에다 해롭다는 ‘술’까지 곁들인다. 식사 때마다 포도주를 한잔씩 걸치지 않던가.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건강하다. 칼로리 따지고 영양성분을 들이대는 미국인들보다 훨씬 날씬하고 병도 적다. 이른바 ‘프랑스인의 역설’이라 하는 현상이다. 이런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생선을 날로 먹는다. 그래도 그들의 장(腸)에 기생충이 득시글하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중남미 대륙에서는 옥수수를 입에 달고 산다. 우리는 쌀밥을 주로 먹는다. 영양학적으로는 대단히 불안한 모양새다. 편식에 가까운 식탁인 탓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별문제 없이 건강하다. 왜 그럴까?
마이클 폴란에 따르면, 튼실한 ‘음식문화’는 건강을 지켜주는 구실을 한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먹지 않는다. 적은 음식을 대화를 나누며 오래 먹는다. 그러니 높은 칼로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본인들은 생선회를 고추냉이에 곁들여 먹는다. 고추냉이는 생선살에 묻은 병균을 죽인다. 중남미 대륙에서는 옥수수에 라임을 섞어서 요리한다. 라임은 옥수수에 없는 영양을 채워준다. 우리가 쌀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콩을 발효시킨 된장 등은 쌀에 부족한 단백질을 넉넉하게 해준다.
어느 나라나 전통음식은 대개 ‘건강식’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전통은 음식에 어울리는 식탁 문화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지금의 식탁에서는 문화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치즈가 듬뿍 든 스파게티를 콜라와 함께 ‘패스트푸드’로 먹는다면 문제가 없을까? 스파게티, 피자 등은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건강한 식탁 문화까지 세계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에서 비만과 고혈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미국같이 나름의 음식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영양학이 음식 문화를 대신한다. 뭐가 해롭고 좋은지를 과학자들이 보여준다는 뜻이다. 이런 나라일수록 음식은 유행을 탄다. 100여 년 전 미국에서는 포도로만 세 끼를 채우는 식사법이 널리 퍼졌다. 포도를 먹은 뒤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장을 씻어 냈단다. 여기에는 물론 ‘과학적’인 이유가 따라붙었다. 비슷한 시기에 음식 한입을 먹을 때마다 백 번씩 씹는 ‘플레처 식사법’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황당해 보이지만, 지금의 상황도 별다르지 않다. 음식을 둘러싼 온갖 주장이 터져 나온다. 그때마다 식품 산업은 요동을 친다.
산업화되는 농업도 문제다. 질소(N), 인산(P), 칼륨(K)의 발견은 농업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어떤 땅이건, 이 세 가지만 충분하면 식물이 잘 자란다. 화학비료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럴수록 논과 밭은 하나의 작물로 가득 채워졌다. 규모가 클수록 경쟁력도 높아지는 법이다. 여러 식물을 키우기보다는, 하나만 많이 기르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는 하나의 식물이 벌판을 가득 채우는 법이 없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은 서로 얽히고설켜 균형을 이룬다. 농장도 마찬가지다. 닭은 보통 마당에서 키운다. 닭은 풀의 뿌리까지 쪼아 먹는다. 게다가 닭똥에는 ‘뜨거운’ 질소가 많다. 그래서 닭을 키우는 곳에서는 잡초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닭이 있는 안마당은 풀이 사라지고 땅이 딱딱하게 굳는다. 닭이 ‘천연제초제’ 노릇을 하는 셈이다.
뒷산에 자리잡은 큰 나무들은 땅 밑의 물을 끌어올린다. 펌프처럼 물길을 열어놓으니, 주변에 작물이 잘 자랄 수밖에 없다. 논밭을 가는 소는 풀을 먹고 푸짐하게 배설물을 내놓는다. 이는 다시 퇴비로 돌아온다. 퇴비를 담뿍 먹은 흙은 힘이 세다. 그러니 병충해도 좀처럼 자리잡지 못한다. 울창한 숲에서는 새가 날아와 논밭의 해충을 잡아먹는다. 농부는 농사짓는 땅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잘 자라는지 알아서, 곳곳에 적절한 작물을 키운다. 그럴수록 땅도, 가축들도, 이를 먹는 인간도 건강하다. 좁은 땅에 여러 동식물이 섞여 지내며 나름의 생태계를 꾸려가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어느덧 농장은 공장처럼 바뀌었다. 대량생산과 똑같은 품질은 농장에서도 똑같이 강조되고 있다. 공장에서 만든 비료와 사료를 써서, 너른 땅에 하나의 작물이나 가축만 기른다.
자연과 어긋나면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수백만 평의 밭에 밀만 가득하다고 해보라. 밀 몇 포기가 병에 걸리면 밀밭 전체가 골병을 앓게 되기란 시간문제다. 가축은 더 그렇다. 자연 상태에서 소나 돼지가 좁은 공간에서 우글거리며 사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한 마리만 아파도, 질병은 수백, 수천 마리에게 퍼져나갈 테다.
원래 돌림병과 해충도 자연에서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 병을 한차례 겪고 나면 약한 식물과 동물을 솎아진다. 하나의 식물과 동물이 한데 몰려 있지 않기에 떼죽음을 당할 일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농장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작물과 가축은 이미 농약과 약품에 길들여진 상태다. 질병이 퍼질수록 더 많은 농약과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겠다. 농장은 지킬지 모르겠지만, 작물과 가축은 더더욱 약해진다.
산업화된 농장과 목장은 식탁을 값싸고 질 좋은 먹거리로 가득 채워 주었다. 세계화는 싼값에 색다른 음식들을 먹는 즐거움을 안겼다. 반면, 값싼 가격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자연은 잘못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 풍성하고 다양한 먹거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다. 대재앙은 까닭 없이 닥치지 않는다.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 조윤정 옮김 / 다른 세상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