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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유시장’이라는 신화의 한계

등록 2010-12-13 09:33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3. 케인즈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한미 FTA,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케인즈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박종현 지음 / 김영사

196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세 가지 ‘48’이 주어졌다. 48년간 고용 보장, 연간 48주 근무, 주당 48시간 노동. 취업에 절절매는 지금 상황에 견주면 꿈같은 소리다. 경제학자들은 당시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golden age)라 부른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살림살이는 나날이 좋아졌다. 공장은 팽팽 돌아갔고 일손은 늘 달렸다. 일자리는 넘쳐났으며 봉급은 당연한 듯 올랐다. 근로자들 주머니가 넉넉하니 소비도 덩달아 늘었다. 그럴수록 다시 공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차대전 후 30년 세월만 같아라.” 경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관료들은 이렇게 한숨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의 넉넉한 상황은 거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는 ‘경제학자 케인스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의 이론은 세상 곳곳을 쥐락펴락했다. 여러 나라가 케인스의 주장에 따라 경제를 굴렸다는 뜻이다.

케인스는 자유시장을 마뜩지 않게 여겼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자들에게 상식처럼 통한다. 시장에서는 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이 가운데 수요와 공급은 알아서 균형을 맞추게 되어 있다. 그러니 경제는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겠다.

하지만 케인스의 생각은 달랐다. “이리 떼의 자유는 양 떼에게 죽음을 뜻한다.” 시장은 늘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경쟁에서 뒤처졌다간 나락으로 떨어질 테다. 게다가 앞날이 어떻게 될지 막막하기만 하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앞날을 꾸려나갈 정보도 부족한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탐욕, 무지, 공포, 모방. 인간은 이 네 가지 마음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이에 따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는 가격도 뒤틀리기 일쑤다.

증권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증권 가치는 기업이 튼실한지에 따라서만 정해지지 않는다. ‘~카더라’라는 소문은 시장 주위를 떠돈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면 증권 가격은 뚝 떨어진다. 앞으로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 가치가 급하게 뛰기도 한다. 그럴수록 수요와 공급은 어긋나기만 한다. 소문에 따라 생산과 소비가 널을 뛰는 탓이다.

<케인즈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박종현 지음 / 김영사
<케인즈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박종현 지음 / 김영사

사람들은 왜 소문에 끌려다닐까? 케인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잘라말한다. 만약 정부가 가격을 옥죄어 버리면 어떨까? 정부가 제대로 나서서 생산과 공급을 다스리려 한다면? 오히려 시장은 제대로 굴러갈 테다. 정부가 나서는 한, 경제가 널을 뛸 가능성은 줄어든다. 사람들은 안심하고 미래에 투자할 수 있겠다. 더 이상 뜬소문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는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어 낸다. 의료나 교육 등에 투자를 늘림으로써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빈부격차도 줄어든다. 한마디로 ‘큰 정부’를 통해 나라 경제를 굴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케인스식의 경제 논리는 1960년대 말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가 서서히 죽어갔던 탓이다. 올라가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 시장 경기는 그때부터 떨어지는 리듬을 탔다. 경제가 잘 돌아가 실업자가 적어지면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커진다. 사람을 쓰는 쪽이 아쉬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봉급이 오르고, 일터를 꾸리는 쪽의 이익은 줄어든다. 그러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설비에 투자를 늘린다. 치열한 경쟁은 설비 투자를 더욱 크게 만든다. 마침내 투자가 넘치는 지경이 되면 이익은 더 떨어진다.

기업이 얻는 이익이 줄어들자 정부도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보건, 의료, 교육, 연금 등등, 나랏돈이 들어가는 곳이 어디 한둘이던가. 정부도 적자를 줄이려고 주머니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시장은 움츠러든다. 시장이 얼어붙으니 봉급은 줄고, 그러면 소비도 준다. 물건 사는 사람이 없으니 다시 공장도 어려워진다.

영국은 1970년대부터 ‘영국병’(English disease)을 제대로 앓았다. 끊임없이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봉급을 올리면 물가만 뛰었다. 좀처럼 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칼을 뽑아든 것은 이 무렵이다. 그녀는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가르침을 따랐다. 완전고용 철폐, 공기업 민영화, 물가를 잡기 위한 디플레이션 정책 등등, 대처가 펼친 정책은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하이에크는 케인스처럼 경제를 굴려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외쳤다. 나라가 경제를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경제 ‘계획’은 시민들을 ‘노예의 길’로 이끌 뿐이다. 히틀러가 다스리던 독일과 옛소련도 그랬다. 그곳에서는 시장을 없애고 모든 것을 국가가 계획을 짜서 움직이려 했다. 그 결과 나라는 어떻게 되었는가? 시장이 없는 곳은 독재가 자리잡는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있을 수 없다는 소리다.

보건이나 의료 등등에 대한 정부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은 정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가 끼어드는 일이 점점 많아지다 보면, 나중에는 모든 것이 나라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릴 테다. 이러면 자유가 자리잡을 곳이 없다.

어느덧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는 경제의 주된 흐름이 되었다. 복지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정부도 군살만 늘었다. 다시 뛰게 하려면 근로자도,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테다. 정부는 다시 작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세금을 줄인다. 그럴수록 복지에 쏟는 나라의 씀씀이도 줄어든다. 세금도 줄고 임금에 들어가는 돈도 줄어드니, 기업은 돈을 더 많이 쥐게 된다. 그럴수록 기업은 투자를 늘린다. 이렇게 돈이 돌다 보면 경제가 살아나게 될 테다.

신자유주의는 이제 따라야 할 ‘운명’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하이에크가 소중하게 여겼던 우리의 ‘자유’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거의 결론에 이르렀나 보다. 규제와 장벽을 없애는 노력은 과연 풍요와 자유를 가지고 올까? 케인스가 살아있다면,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 뭐라고 충고를 해주었을까?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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