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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스포츠가 ‘공정’하다고?

등록 2010-11-22 09:37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0.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 아시안 게임, 열기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정준영 지음
책세상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엄청난 적자였다. 조직위원회(IOC)는 머리를 싸맸다. 계속 올림픽을 꾸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근대 올림픽을 만든 쿠베르탱은 스포츠가 순수하기를 바랐다. 돈 대신 명예, 승리보다 참가에 의미를 두는 아마추어 정신. 쿠베르탱이 품었던 꿈이다.

세상살이가 어디 뜻대로 되던가. 절박한 현실 앞에서 아마추어 정신은 흐릿해졌다. 조직위원회는 방송중계권료로 돈을 벌었다. 후원 기업한테 올림픽 로고를 쓸 권리를 팔아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어느덧 올림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뀌어 갔다.

돈벌이는 월드컵 같은 국제 경기에서 더 하다. 이제는 텔레비전 중계에 맞추어 경기 시간을 짜는 일도 버젓이 벌어진다. 심지어 관객을 모으려고 경기 규칙을 바꾸기까지 한다. 미식축구 경기에서는 시합이 2분 남았을 때 작전시간이 억지로 주어진단다. ‘타임!’을 외치는 순간, 티브이 광고를 끼어 넣기 위해서다. 반면, 미국에서 축구는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되었다. 90분 내내 경기가 이어지니 광고가 끼어들 틈이 없는 탓이다. 이제 돈이 안 되는 스포츠는 한데로 밀려나는 세상이 되었다.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정준영 지음 /책세상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정준영 지음 /책세상

쿠베르탱은 올림픽이 정치와도 거리를 두기 바랐다. 올림픽 개최지가 국가가 아닌 ‘도시’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예컨대, 1988년 올림픽은 ‘서울’ 올림픽이지, ‘코리아’ 올림픽은 아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에서 메달을 모아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경쟁보다는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스포츠가 치열한 정치대결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정치 광고판’으로 삼았다. 나치가 얼마나 강한지, 독일 민족이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는 무대로 올림픽을 요긴하게 써먹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독재국가들은 메달 수와 국제 경기 순위를 높이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러곤 훌륭한 결과를 마치 나라 자체가 우수해진 것처럼 선전해댄다. 이런 나라일수록 관객석은 텅텅 비어도 메달은 꽤 따 모은다. ‘엘리트 체육’으로 선수들만 관리하는 탓이다.

영리한 정치인들은 스포츠를 제대로 써먹을 줄도 안다. 중요한 시합은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그때는 서로에게 품고 있던 미움과 갈등이 잦아든다. 눈앞에 힘을 합쳐 싸워야 할 상대가 나타난 까닭이다. 실제로 1969년에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시합이 나라 사이의 전쟁을 부르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권력자의 권위는 한껏 높아지는 법이다 권력자에게 스포츠는 매력적인 통치수단인 셈이다.

스포츠와 돈, 정치가 깊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사회학자 정준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는 우리 삶의 더 깊은 부분까지 좌지우지한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사회가 공정하다는 환상을 준다. 2003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봉은 무려 2200만달러였다. 가장 적은 돈을 받는 선수의 수입은 한 해 3만달러였단다. 무려 700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 정도의 차이는 일상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최고 경영자 연봉은 근로자 평균 소득보다 400배나 많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에 놀라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여기에는 이미 스포츠를 통해 봉급 격차에 익숙해진 탓도 있다. 미국 근로자 사이의 봉급 차이는 1970년대부터 크게 벌어졌단다. 이 시기는 프로 스포츠가 꽃피고 선수들 사이의 수입이 눈에 띄게 갈리던 때이기도 하다.

게다가 경기의 승패는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지에 따라 바뀌곤 한다. 투자를 많이 하면 좋은 선수를 데려올뿐더러 훈련도 제대로 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스포츠는 공정하다고 여긴다. ‘돈의 힘’을 이겨내는 경우 드물지 않은 덕분이다. ‘헝그리 정신’으로 승리한 선수에게는 박수가 쏟아진다. 그러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돈의 힘을 노력으로 이겨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국제 경기를 보라.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들은 대개 경제도 튼실하다. 못사는 국가 선수들은 훈련을 제대로 못했기에 성적이 나쁜 것일까?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스포츠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된다. 살 만한 집의 자녀들은 좀처럼 스포츠 선수를 꿈꾸지 않는다. 운동 아니고서도 좋은 직업을 가질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를 꿈꾸는 아이들 중 일부는 성공할 테다. 그러나 나머지는 어떻게 될까? “많은 흑인이나 하층 계급의 어린이가 공부보다는 스포츠를 택했다가, 경쟁에서 탈락해 다시 하층 계급으로 쓸쓸히 전락하는 악순환이 심각한 논의의 주제가 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갈채를 보내는 사회에 사회학자 정준영이 한숨을 내쉬는 이유다.

스포츠의 경기 규칙은 끊임없이 바뀐다. 새로운 룰은 약한 편이 더 유리하도록 짜여진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게임은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시합에 흥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어느덧 선수도, 관중도 떨어져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경기를 치르기도 어려울 만큼 스포츠가 움츠러들 테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신자유주의들은 똑같이 기회를 주면 평등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똑같이 수능을 볼 기회를 줬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은 약자가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핸디캡을 보듬어줄 때 이루어진다.

아시안 게임의 열기가 한창이다. 한·중·일 3국의 메달 수는 다른 모든 나라가 합친 메달 수보다 훨씬 많다.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왜일까.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0년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45개국, 1만2000명이 참가하여 42종목에 253경기가 치러지는 큰 대회다. 우리나라에서도 41종목, 795명의 선수가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많은 메달을 거머쥐며 2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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