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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정의의 원리’ 넘어 ‘사랑’ 역설

등록 2010-10-25 09:29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6. 인간중심철학원론 -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합니다”, 황장엽의 죽음

1997년, 황장엽의 망명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언론은 ‘레닌이 소련을 탈출한 격’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레닌은 소련을 떠받치던 사회주의 사상을 다잡은 이다. 황장엽은 10년 넘게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지냈다. 1996년에는 북한 권력 서열 13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학자로서, 권력자로서 황장엽은 북한을 이끄는 ‘주체사상’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북한에서 중요하기로 따지면, 그는 레닌보다 못할 게 없었다.

황장엽은 남쪽에 와서도 활발히 움직였다.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곳곳에서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정작 ‘철학자’로서 황장엽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탈북한 뒤에만 무려 30여권의 저서를 내놓았음에도 말이다.

<인간중심철학원론>은 황장엽 사상의 고갱이가 잘 담겨 있는 책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인간중심철학’이라 부른다. 왜 인간중심철학일까? 철학의 역할을 인간 운명이 흘러가야 할 방향을 밝히는 데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여물어 가는 과정을 역사라고 본다. 역사는 ‘원시공산사회’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류가 사냥과 주운 씨앗과 열매로 삶을 이어갔던 시기다. 이때는 모두가 평등하게 살았다. 모두들 가진 것이 너무 적었기에, 누군가가 이를 빼앗아 재산을 불릴 여지도 없었던 탓이다.

<인간중심철학원론> 황장엽 지음  시대정신
<인간중심철학원론> 황장엽 지음 시대정신

농사를 짓게 되면서 ‘노예제 사회’는 나타났다. 전쟁 등으로 생긴 노예를 통해 권력을 쥔 자들은 배를 불렸다. 노예는 많고 이를 부리는 주인은 적기 마련이다. 때문에, 노예와 주인들 사이에는 큰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이럴수록 주인들끼리는 ‘평등’이 중요했다. 주인들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힘을 합쳐 노예에 맞서지 않겠는가. ‘평등’이 노예제 사회에서 되레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유다. 노예가 많았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었던 까닭은 설명 안 해도 분명하겠다.


그러나 노예제 사회는 오래가기 어려웠다. 노예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노예의 수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게다가 반란도 끊이지 않았다. 봉건제(封建制) 사회는 그래서 출현했다. 가진 자들은 노예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안겨주었다. 노예들은 자기 가족과 재산을 꾸리며 세금과 일품만을 주인에게 바쳤다. 이때부터 노예는 농노(農奴)가 되었다.

황장엽은 노예제와 봉건제 사회는 별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힘으로 못사는 이들을 누른다는 점에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억눌리는 쪽은 언제나 꿈틀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배집단은 늘 군인들이었다. 힘이 있어야 반란을 가라앉히지 않겠는가.

나아가 봉건제는 노예제만도 못했다. 노예제에서도 지배층끼리는 서로 평등했다. 하지만 봉건제에서는 지배자들 사이에서도 분명한 위아래가 있었다. 왕과 귀족 등으로 말이다. 왕에게 신하들은 무조건 충성을 바쳐야 했다. 그래야 질서가 잡히는 탓이다. 심지어 왕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듯 절절하게 충성하라고 닦달하기까지 했다. 봉건제에서 충효(忠孝)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다. 군사집단이 되어버린 지도층과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이쯤 되면 독자는 황장엽이 ‘북쪽의 조국’을 안타깝게 여긴 까닭을 짐작하게 될 테다.

봉건제 다음에는 자본주의가 뒤를 잇는다. 장사로 힘을 키운 상인(商人)들은 스스로 공장을 세워 상품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들이 경제를 휘어잡자, 봉건제도의 지배층은 힘을 잃어갔다. 여기까지는 황장엽의 사상이 별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느 사회주의 사상가들도 비슷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역사는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순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황장엽의 사상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다음부터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다음에는 ‘공산주의’가 온다고 본다. 반면, 황장엽은 자본주의 이후에는 ‘세계민주주의’ 시대가 온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자본주의에서는 한 나라 안에서만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은 ‘정의의 원리’에 따라 굴러간다. 정의의 원리에 따르면, 한 사람의 지위와 대접은 국가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갈등이 있을 때도, 누가 더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게 했는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

민주주의가 더 무르익으면 정의의 원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때는 ‘사랑의 원리’가 필요하다. 정의의 원리는 사람들을 경쟁으로 이끌어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인류가 더 웃자라려면 이제는 패배자들까지도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발전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 인류’가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진리를 발견한 개인은 죽어도 과학적 진리는 인간 공동의 정신적 재부(財富)로 계속 남게 되며, (중략) 사회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죽어도 사회적 관계와 법적, 정치적 사회 제도는 (중략) 계속 남게 된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는 수준까지 높아져야 한다. 나라의 이익을 넘어, 인류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따라 대접과 평가가 달라진다고 해보라. 이때 개인과 국가, 인류의 이익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이럴 때 “인류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끝없이 높아지게 된다.”

2010년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묘하게도 황장엽은 이날 숨을 거두었다. 북쪽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황가 놈이 하늘의 저주를 받고 죽었다’며 북한식 육두문자를 쏟아내었다. 남쪽의 어떤 지식인은 황장엽을 ‘전향하지 않은 김일성주의자일 뿐’이라며 간단하게 깎아내리기도 했다. 평가가 어찌되었건, 황장엽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평생을 산 ‘사상가’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永生)합니다.” 황장엽이 생전에 줄곧 하던 말이다. 그가 사랑했던 ‘집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지 않다.

황장엽의 죽음

2010년 10월 10일, 김일성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황장엽이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그에게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하고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황장엽의 삶과 의미에 대한 논란은 이제 역사의 몫이 되었다.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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