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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반입에서 승소까지 ‘파란만장 실록 사건’

등록 2011-01-18 10:01

북한 사회과학원 산하 민족고전연구소에서 1975~91년에 걸쳐 ‘적상산본’을 토대로 한글로 완역해낸 <리조실록>(왼쪽). 92년 남쪽 여강출판사가 북한 민족고전연구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입수한 원본에 필자가 해제를 붙여 펴낸 복사본 <이조실록>(오른쪽). 북쪽의 원본은 410권이나 남쪽에서는 ‘김일성’ 편을 뺀 400권을 펴냈다.
북한 사회과학원 산하 민족고전연구소에서 1975~91년에 걸쳐 ‘적상산본’을 토대로 한글로 완역해낸 <리조실록>(왼쪽). 92년 남쪽 여강출판사가 북한 민족고전연구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입수한 원본에 필자가 해제를 붙여 펴낸 복사본 <이조실록>(오른쪽). 북쪽의 원본은 410권이나 남쪽에서는 ‘김일성’ 편을 뺀 400권을 펴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70
1990년과 91년, 두 차례 중국 답사를 마친 뒤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여강출판사의 이순동 사장은 귀띔도 없이 무슨 일을 꾸미고 다니는 듯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로서는 큰 모험을 하고 있었다. 북한 완역판 <리조실록>(전 401권)을 남쪽에서 펴내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답사를 하고 온 90년 겨울 어느날 이 사장은 <리조실록> 복사판 한 꾸러미를 전달하면서 ‘해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영인판 출간을 서둘면서 나에게 미리 해제 원고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자, 그러면 이 책은 북한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던가? 북한 사회과학원장 홍기문은, 산하 기구인 민족고전연구소의 학자들을 동원해 75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나누어 번역을 시작해 68년과 72년에 걸쳐 순차로 출판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북한에서 사용한 대본은 ‘적상산본’ 실록이었다. 그들은 이 대본을 어떻게 입수했던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부산으로 피난할 때 규장각에 있는 실록도 함께 옮겼다. 그런데 그때 미처 옮기지 못한 장서각의 소장본인 ‘적상산본’을 인민군이 실어갔던 것이다. 국편위원장을 지낸 신석호는 “1·4후퇴 때 이것(적상산본)을 부산으로 소개했는데 부산 화재 때 없어진 듯하다”(<한국의 고전백선>에 나옴)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알면서 일부러 감추려 했는지, 담당 공무원들의 잘못된 보고를 듣고 썼는지는 모를 일이다.

홍기문은 한학에도 밝았고 국어학자이기도 했다. 이 번역본은 문장이 아주 쉽고 우리 고유의 언어를 적절하게 구사했으며 어색한 제도 용어도 쉽게 바꾸어 놓았다. 남쪽의 번역 용어와 비교해 그 보기를 몇가지 들면, 조하(朝賀)를 신하들의 축하, 정단(正旦)을 새해, 전세(田稅)를 조세, 간전(墾田)을 경작지로 풀어 써놓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적용한 것이다. 그 대신 주를 달지 않아 연구자들에게 수고를 더하게 했다. 이와 달리 남쪽의 번역들은 너무 원전에 충실하려 해서 오늘날 쓰지 않는 사어와 경색된 한문투 용어들이 깔려 있었다. 아마 번역자들이 공동 토론을 거치지 않고 개별로 번역작업을 한 탓으로 문장과 용어에 일관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해제에서 이런 내용을 설명했다. 이 사장이 이 해제를 북한 담당자에게 보여 주었더니 만족스러워하더라고 전했다. 91년 초 북은 <리조실록> 완역본을 연변대학과 중국의 여러 관련 기관에 증정했으나 일반 판매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사장은 심양의 북한 영사관에 교섭을 벌여서 92년 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401권짜리 한 질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원이나 정보기관에서는 반입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1차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국내 반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사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책을 기증받은 기관과 어렵게 교섭을 벌여 원본을 복사해서 인천항으로 보냈다. 그 분량이 방대한 탓인지 인천세관에서도 반입을 보류했다. 2차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이 사장은 나에게 반입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래서 정보기관에도 연락을 하고 마침 인천세관에 간부로 일하던 친구 이아무개에게 ‘학술서적’ 또는 ‘고전번역’인 점을 들어, 정치적 말썽이나 ‘고무 찬양’과는 관련이 없으니 반입을 허가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겨우 반입에 성공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 사장은 내 해제와 북한 학자의 관련 논문을 담아 소개하는 글을 실은 작은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그즈음 김아무개가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일본의 북한 서적 수입을 맡은 관련 출판사와 교섭을 해서, 북한과 <리조실록>을 정식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공개했다. 이 기사가 한 신문에 머리기사로 보도되자 북한의 이중계약 문제가 불거졌다. 심양의 북한 영사관에서 이 사장에게 전화 연락이 왔고 뒤따라 남쪽 정보기관에서도 통화 사실을 확인하는 등 조사를 벌였다 한다. 확인한 결과, 이중계약 사실은 없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또다른 출판업자가 <리조실록>을 무단으로 복사를 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장은 내 소개를 받아 한승헌 변호사에게 부탁해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를 해서 자유롭게 판매하게 되었다. 한가지 밝혀둘 것은 이 사장은 결코 돈을 벌려고 이 일을 추진한 게 아니라 남북의 학술과 문화 교류에 뜻을 두었던 것이다. 한 변호사는 이 전말을 적어서, <인권과 정의>(197호)에 발표했다. 이게 ‘실록사건’의 실상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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