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쇠가죽으로 밥짓기 재현 등 안방 파고든 ‘농민전쟁’ / 이이화

등록 2011-01-30 20:34수정 2011-01-31 08:35

동학농민전쟁의 3대 주역인 전봉준(왼쪽부터)·손화중·김개남 장군의 초상. 필자는 1994년 동학 100돌을 앞두고 <한겨레>에 연재한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에서 이들 주역을 비롯한 30명의 동학 지도자들을 찾아내 소개했다.
동학농민전쟁의 3대 주역인 전봉준(왼쪽부터)·손화중·김개남 장군의 초상. 필자는 1994년 동학 100돌을 앞두고 <한겨레>에 연재한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에서 이들 주역을 비롯한 30명의 동학 지도자들을 찾아내 소개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79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백추위)에서는 학술 발표회와 연구 논문집 발간의 성과를 언론매체에 널리 알리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연구위원들은 농민전쟁의 의의와 실상을 알리는 글을 신문·잡지에 연재하고 좌담회 등에도 나섰다.

먼저 나는 <한겨레>에 1993년 2월부터 30회에 걸쳐 농민전쟁 관련 인물 30명을 골라 단독 집필로 연재했다.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3대 농민군 지도자는 물론이고 직간접으로 관련된 민초들을 발굴해 소개했다. 주무대였던 전라도를 비롯해 경상도·충청도·황해도·강원도까지 두루 살펴 전체 실상을 알리고자 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인물들이 여럿 있다.

민준호는 진주에 있던 경상우도 병사였는데 그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군을 토벌하기는커녕 은근히 도와주었다. 농민군 영호대접주인 김인배를 맞이해 소를 잡아 잔치를 벌여준 반면 일본군에게는 협조를 하지 않는 식이었다. 그는 끝내 파직이 되었는데 그 뒷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해주에서 아기접주로 명성을 떨친 김창수(백범 김구)는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투쟁해 임시정부의 수장이 되었다. 황해도 구월산 일대에서는 백낙희가 산포수로서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으며 차기석은 오대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이면서 끝까지 항거했다. 최맹순은 강원도 출신이었는데 예천에서 옹기장수를 하면서 농민군을 모으다 끝내 강릉교장에서 처형되었다.

차치구는 상놈 출신으로 흥덕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잡혀 처형됐는데 그의 어린 아들 차경석이 몰래 주검을 수습해 묻었다. 훗날 보천교를 창시해 교조가 된 차경석은 아버지 무덤을 일부러 초라하게 만들었는데, 그 현장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최달곤은 전봉준이 보낸 ‘염찰사’라며 탐학한 벼슬아치들 명단을 들고 고성 등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령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는데, 마지막 동래부사를 만나 비정을 성토하다가 일본 영사에 끌려가 문초를 받은 뒤 행적이 묘연하다. 이상옥(이용구로 개명)은 경상도 출신으로 경기도에 진출해 관청에 잡혀 있는 농민군을 풀어주는 등 활약하기도 했으나 나중엔 일진회를 조직하고 친일파로 변절했다.

광주의 <무등일보>에서는, 우리 답사기행팀의 경비까지 대주면서 전국에 걸친 답사글을 1년에 걸쳐 연재했으며 <전북일보>에서는 박맹수 교수를 중심으로 기행글을 1년 동안 연재해서 관심을 끌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짧게나마 연재글을 실었으나 이른바 ‘거대신문’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월간 <예향>에서는 호남 일대의 농민군 전개 과정, 월간 <새농민>에서는 전국에 걸친 전개 과정을 현장답사를 통해 재구성하는 글을 실었다.

방송매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전주 문화방송>에서는 1991년 7월 동학 답사 다큐멘터리 <가보세 가보세>(피디 김병헌)를 나를 리포터로 내세워 제작해서 방영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교통방송> <기독교방송> 등 주요 공중파 티브이와 라디오에서도 다큐 또는 강의 형식을 빌려 소개했다.

특히 <한국방송>에서는 100돌 특집으로 94년 5월 ‘동학농민전쟁 100년’을 4부작으로 제작, 방영해 관심을 끌었다. 나형수 보도제작국장의 지원과 남성우·장해랑·이상우 피디, 김옥영 작가가 팀을 이뤄 진행했고 나와 백추위 연구위원 우윤이 자문과 리포터로 도움을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사발통문’의 작성을 주도한 송두호·송대화 부자로 분장을 하고 짤막하게 출연도 해서 작은 화젯거리가 됐다.

이때 다큐 제작 과정에서 농민군이 했던 대로 쇠가죽을 이용해 밥을 짓는 장면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전봉준이 공주에서 후퇴해 남쪽으로 쫓겨가면서 마지막으로 김제 원평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노획한 쇠가죽을 밥 짓는 도구로 썼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우리는 공주전투의 격전지였던 경천 옆 골짜기에서 실험을 했다. 공주기념사업회에서 마련해온 쇠가죽을 네 개의 말뚝을 박아 펼친 다음 쌀 한말에 물을 적당하게 붓고 밑에서 불을 지폈는데 30분쯤 지나자 쌀은 익지 않고 가죽이 약간 터져 물이 샜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맨 위쪽 쌀만 익지 않았을 뿐 조금 혜쳐보니 밥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가 경험이 없어서 쌀 위에 솔가지도 덮지 않았고 첨부터 불을 너무 세게 지펴서 가죽이 탔던 것이다. 백추위 차원에서 모두 9차례 방송 프로에 나갔는데 이런 대중화 사업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농민전쟁의 실상이 안방을 파고들자 많은 시청자들은 ‘이럴 수가 있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농민전쟁에 대해 잘 몰랐던 대중들에게, 농민전쟁이 역사의 저편에 묻혔던 사실이 아니라 우리와 밀접한 사건이며 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현장임을 확인시켜 주는 효과를 얻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